시골 동네 큰 느티나무의 " 나의 하루 "(1~3화) - (2화) 한낮의 뜨거운 감자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시골 동네 큰 느티나무의 " 나의 하루 "(1~3화)

(2화) 한낮의 뜨거운 감자, 동네 어르신들의 지혜


"내 그늘 아래선 나랏일도, 쌈박질도, 김칫국물도 다 시원하게 해결된다네!"


따가운 햇살이 논바닥을 달구고, 매미들이 '맴맴' 하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한낮. 이때가 되면 나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내 굵은 가지와 풍성한 잎사귀들이 만들어내는 그늘은, 이 시골 동네의 여름철 '강남 아파트'나 다름없으니까요. 에어컨이 뭐 별겁니까? 

자연이 주는 가장 시원하고 정겨운 바람이 바로 내 그늘 아래서 솔솔 불어오는 것을!

점심을 배불리 먹고 나면, 동네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내 그늘 아래 평상으로 모여듭니다. 밭일로 구부러진 허리를 펴고, 주름진 손으로 부채를 부치며 앉는 모습은 마치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노련한 전사들 같다고나 할까요. 이곳은 단순한 쉼터가 아닙니다. 

이곳은 동네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시골판 국정원'이자, 삶의 지혜가 담긴 '철학 교실'이며, 때로는 '웃음 치료 센터'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고, 김 노인네! 벌써 왔능가? 어제 영감이 밤새 코를 골아서 잠을 한숨도 못 잤더니, 아주 죽겄네!" 평상의 터줏대감, 박 씨 할머니의 우렁찬 목소리가 수다의 시작을 알립니다. 

"ㅎㅎㅎ 박 씨 할매는 복에 겨운 소리! 우리 집 영감은 코는 안 고는데, 그냥 두질 않고 귀찮게 해대서 더 힘들어!" 

이 씨 할머니의 맞받아침에 평상은 금세 웃음바다가 됩니다. 나는 할머니들의 시원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내 잎사귀들을 흔들어 화답합니다. 

'ㅋㅋ  역시 이 맛에 사는 거지!'

오늘의 '뜨거운 감자'는 다름 아닌 '마을회관 에어컨 교체 문제'인 듯합니다. "아니, 읍내 이장이란 양반이 에어컨을 바꾸는 데 왜 우리 의견은 한마디도 안 묻는겨?" "맞아! 그 양반, 맨날 저 잘났다고 허세만 부리지, 정작 우리들 추울까 더울까는 신경도 안 쓴다니까!" 

어르신들의 불만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소박한 시골 마을에도 나름의 정치와 권력 다툼이 있음을 500년 넘게 지켜봐 온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저만치서 지팡이를 짚고 다가오는 최 씨 할아버지가 보입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어른인데,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뼈가 있고, 젊은이들도 귀 기울이게 하는 지혜가 담겨 있지요. 

"허허허 자네들. 그리 핏대 세워봤자 에어컨이 바뀌나? 

에어컨은 에어컨대로 두시고, 우리는 우리대로 여기서 시원하게 노닥거리는 게 상수여." 할아버지의 말씀에 모두들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그려, 맞는 말이여. 굳이 싸워서 뭐 한담. 여기가 천국인데!" 박 씨 할머니의 동의에 평상은 다시 화기애애해집니다. 

나는 최 씨 할아버지의 지혜에 감탄하며, 가장 영롱한 햇살 한 줄기를 그의 머리 위로 살며시 내려줍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동네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옵니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할머니! 할아버지! 저 재밌는 얘기 해주세요!" 하며 졸라댑니다. 어르신들은 쭈글쭈글한 손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부터, 도깨비가 나타났던 무서운 이야기, 그리고 젊었을 적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까지.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지고,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주름 가득한 미소가 번집니다. 

세대를 잇는 이야기의 힘은 언제나 나를 감동시킵니다.

가끔은 동네 청년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형님, 요즘 농사가 영 시원찮네요. 올해도 빚만 더 늘 것 같아요." 한 청년의 깊은 한숨에 다른 청년이 어깨를 다독여줍니다. 

"괜찮아 임마. 우리가 누군데? 다 이겨낼 수 있지. 

500년 된 느티나무도 저렇게 굳건히 서 있는데, 우리라고 못 버틸까!" 나는 그들의 패기와 좌절, 그리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 힘을 얻습니다. 내 굵은 뿌리처럼, 그들의 꿈도 이 땅에 단단히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내 그늘 아래서는 매일매일이 축소판 세상입니다. 

삶의 고단함과 기쁨, 다툼과 화해, 지혜와 어리석음이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내지요. 나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 때로는 바람으로 위로하고, 때로는 시원한 그늘로 품어주며, 이 마을의 한낮을 채워갑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참으로 값지고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시골에 인구가 감소하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 나 홀로 버티고 서있는 시간이 많아짐이 쓸쓸하고 아쉽습니다. 


나의 생각!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최신 뉴스와 트렌드를 쫓아가기 바쁘고,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곤 합니다. 그러나 느티나무 아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때로 가장 중요한 지혜가 가장 평범하고 오래된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가장 큰 지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말과 삶의 경험 속에, 그리고 자연의 섭리 속에 조용히 숨 쉬고 있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여러분 주변의 '느티나무 그늘'을 찾아보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삶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분명 여러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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