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사색(思索), 사각거리는 독백
프롤로그
당신은 나의 ‘속’이 비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빈 공간으로 온 세상을 품는다.
나는 갈대다.
나의 이름 앞에는 늘 '지조 없는', '흔들리는' 따위의 수식어가 붙는다.
인간들은 나를 보며 변하기 쉬운 마음을 떠올리고, 이리저리 귀가 얇은 사람을 빗댄다. 흥미로운 관찰이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는 흔들린다.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나의 텅 빈 속, 나의 유연한 허리는 세상의 모든 목소리와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최적의 구조다.
뻣뻣한 것들은 부러지기 마련이다. 저기 저 잘난 척하는 참나무를 보라. 그는 늘 자신의 굳건함을 자랑했지만, 지난 태풍에 허리가 동강 나고 말았다. 나는 그 태풍 속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지금 이렇게 멀쩡히 서서 그의 잔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세상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바람의 속삭임으로, 햇살의 뜨거움으로, 새들의 지저귐으로. 나는 그 모든 것을 나의 텅 빈 속으로 통과시키고, 나만의 사각거림으로 세상에 답한다. 이 이야기는 나의 사각거림에 대한 기록이다. 부러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들에 대한 고찰이자, 텅 비었기에 충만할 수 있는 역설에 대한 찬가다.
(1화) 바람, 나의 첫 번째 대화 상대
세상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나는 춤으로 답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람'이라는 이름의 수다쟁이 철학자가 찾아왔다. 그는 정해진 형태도 없이 온 세상을 떠돌며 보고 들은 것들을 내게 속삭여준다. 오늘은 서쪽 산 너머 떡갈나무의 오만한 푸념과, 동쪽 강 하구 물고기들의 소소한 사랑 이야기를 한 아름 가져와 풀어놓는다.
"이봐, 갈대. 오늘은 북쪽에서 아주 차가운 소식을 가져왔어. 곧 된서리가 내릴 거라더군. 자네처럼 빼빼 마른 녀석들은 조심해야 할걸?"
바람은 짓궂게 내 허리를 간질이며 웃었다. 나는 그의 말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저 그의 힘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길 뿐. 내가 오른쪽으로 흔들리면, 내 옆의 동료들도 오른쪽으로 흔들린다. 우리는 수만, 수억의 '나'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우리'가 된다. 바람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우리는 거대한 물결, 장엄한 춤으로 답한다.
인간들은 이것을 '줏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것을 '공감'이라 부른다.
바람의 슬픔에 우리는 함께 흐느끼고, 바람의 기쁨에 우리는 함께 노래한다. 각자 뻣뻣하게 서서 제 목소리만 내려는 저 숲의 나무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바람이 불면 서로의 잎을 부딪치며 불협화음을 만들어내지만, 우리는 하나의 소리, '사아아-' 하는 평화로운 화음을 만들어낸다.
바람이 내게 묻는다.
"너는 왜 너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지?" 나는 사각거리며 답한다. "이것이 나의 목소리다.
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너와 함께 움직이는 것. 수많은 우리와 함께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 이것이 나, 갈대의 방식이다." 바람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훌쩍 떠나간다. 더 현명한 대답을 들을 때까지, 그는 영원히 세상을 떠돌 것이다.
나의 생각!
진정한 소통은 내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에 기꺼이 흔들려주는(공감) 것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의 몸을 낮추고 귀를 기울일(경청) 때, 당신은 세상의 더 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기꺼이 흔들려주는 것이라~독거놀인의 알쏭달쏭 이야기 요지경 속에 흠뻑 취해 보는 가을입니다^^
안녕하세요? 가을인가 봅니다!.
제가 좀 붕~ 떠있습니다.
ㅎㅎ 모카가 좋아요 님도 제 이야기에 기꺼이 흔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