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깡통의 "나의 하루"(1~5화) - (1화) 채워짐의 끝, 비움의 시작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깡통의 "나의 하루"(1~5화)

프롤로그

존재의 아이러니

우리는 모두 무언가로 채워지기 위해 태어납니다. 빈 깡통이 커피로 채워 졌 듯이, 우리는 꿈으로, 욕망으로, 목표로, 관계로 채워집니다.

하지만 역설은 여기 있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채워졌을 때가 아니라, 비워질 때 시작된다는 것.

공장에서 나온 지 72시간, 채워져 있던 시간은 단지 '대기' 상태였습니다. 진열대에서 빛나던 그 시간은 '가능성'의 시간이었을 뿐. 진짜 삶은 입구가 열리고, 내용물이 흘러나가고, 텅 비워지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이 연재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비워진다는 것은 끝인가, 시작인가?"

빈 깡통은 24시간 동안 다섯 개의 장소를 거칩니다. 편의점 벤치, 쓰레기통, 분리수거장, 수거 트럭, 그리고 재활용 공장. 각각의 장소에서 빈 깡통은 새로운 존재들을 만나고, 새로운 진실을 깨닫습니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이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내용물이 아니라, 그것을 담았던 '형태' 그 자체라는 것.

당신도 그렇습니다.

당신을 정의하는 것은 당신 안에 무엇이 들었는가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그릇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그릇은 비워졌을 때만 진짜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 이제 빈 깡통을 따라가볼까요?

한 개의 빈깡통이 하루 동안 경험하는 비움의 여정. 그 안에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완전히 비워져야, 완전히 새로워질 수 있다."



(1화) 채워짐의 끝, 비움의 시작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비워지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비워지는 게 이렇게 두려울까?"


새벽 5시.

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태어났다.

정확히는 '제조'되었다고 해야겠지. 거대한 공장의 자동화 라인, 초당 50개씩 생산되는 알루미늄 캔들 사이에서 나는 세상에 나왔다. 뜨거운 열로 성형되고, 차가운 물로 냉각되고, 프리미엄 콜드브루 커피로 채워지는 순간까지.

그 과정은 정확히 8.3초였다.

"일련번호 2025-10-05-KS-239, 이상 무."

기계음이 나를 확인했다. 이상 무. 완벽한 형태, 완벽한 밀봉, 완벽한 용량 175ml. 나는 합격품이었다.

그리고 나는 채워졌다.

진한 갈색 액체가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무게가 느껴졌다. 존재감이 느껴졌다. '아, 나는 쓸모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채워진 순간부터 나는 가치를 갖게 되었으니까.

트럭에 실려 도시로 향하는 8시간 동안, 나는 옆 깡통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편의점. 우리의 첫 번째 집이지."

"그 다음엔요?"

"누군가의 손에 들려서... 비워지는 거야."

"비워진다고요?"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비워진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채워진 지 아직 9시간밖에 안 됐는데, 벌써 비워진다는 얘기를 듣다니.

"무서워하지 마. 그게 우리의 운명이니까."

선배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채워지기 위해 태어났는데, 왜 비워져야 하는 걸까?

편의점 냉장고는 차갑고 밝았다.

형광등과 LED 조명이 나를 비췄다. 유리문 너머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어떤 이는 나를 힐끗 보고 지나쳤고, 어떤 이는 가격표를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고, 어떤 이는 나를 집어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3일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진열대에 있었다. 앞줄의 깡통들은 하나둘씩 손님들 손에 들려 나갔지만, 뒷줄에 있던 나는 계속 밀려났다.

'나는 언제 선택받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한 손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3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 피곤한 얼굴, 구겨진 와이셔츠, 약간 풀린 넥타이. 그의 손이 망설이다가 나를 집어들었다.

"이거 괜찮으려나."

그는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의 손 안에서 차가움을 느꼈다. 아니, 그의 손이 나보다 더 차가웠다.

바코드를 찍는 소리. 삑.

"2,800원입니다." " 카드, 여기 꽂아주세요"

기계음과 함께 나는 비닐봉지에 담겼다. 밖은 따뜻했다. 아니, 냉장고가 너무 추웠던 거였다. 나는 처음으로 외부 공기를 느꼈다.

이제 시작이구나.

남자는 나를 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내렸다. 책상에 나를 내려놓고, 그는 컴퓨터를 켰다. 이메일을 확인했다. 전화를 받았다. 회의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30분 뒤, 그가 나를 열었다.

띠~꺽 꾹!.

탭을 따는 소리.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바깥 세상과 연결되었다. 밀봉되었던 입이 열리고, 공기가 들어왔다.

"으, 쓰다."

남자는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계속 마셨다.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나는 점점 가벼워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이게 비워지는 거구나.'


이상했다.

분명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는데, 왜인지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성취감 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쓰이고 있어. 나의 목적을 다하고 있어.'

채워져 있을 때는 잠재적 가치였다. 하지만 비워지는 순간, 나는 실제 가치가 되었다. 누군가의 아침을 깨우고, 누군가의 월요일을 버티게 하고, 누군가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것.

하지만 남자는 끝까지 마시지 않았다.

약 5ml 정도 남았을 때, 그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집어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편의점 앞 벤치에 나를 놓고는 뛰어갔다.

"잠깐, 저 아직..."

하지만 그는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벤치 위에 홀로 남겨졌다.

98% 비워진 채로.

햇빛이 따가웠다.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나는... 무엇이지?'

커피캔인가, 쓰레기인가, 아니면 그 사이의 무언가인가.

채워져 있을 때는 명확했다. 나는 프리미엄 콜드브루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순간부터였다.

나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 건.



다음 화 예고 2화 ' 쓰레기통 속 계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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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우리는 평생 무언가로 채워지려고 애씁니다. 성공으로, 돈으로, 사랑으로, 인정으로. 하지만 빈 깡통은 보여줍니다. 

진짜 가치는 채워져 있을 때가 아니라, 제 역할을 다해 비워질 때 발생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무언가를 내려놓았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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