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사색(思索), 사각거리는 독백 (1~5화)
(마지막 5화) 뿌리, 보이지 않는 연대
우리는 홀로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땅 밑에서는 모두 손을 잡고 있다.
새벽이 오기 전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나는 나의 의식을 가장 깊은 곳, 나의 시작이자 끝인 뿌리에게로 집중한다.
땅 위의 내 모습은 한낱 가늘고 연약한 줄기에 불과하다.
바람에 흔들리고, 새의 무게에 휘어지며, 폭우에 쓰러지는 가냘픈 존재. 하지만 나의 진짜 본질, 나의 부러지지 않는 힘의 원천은 이 차갑고 축축한 진흙 속에 있다.
이곳에는 빛도, 소리도 없다. 바람의 노래도, 달의 위로도 닿지 않는 침묵의 세계다. 하지만 이곳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 뜨거운 연대가 있다.
나의 뿌리는 옆 동료의 뿌리와, 그 동료의 뿌리는 또 다른 동료의 뿌리와 실핏줄처럼 단단히 얽혀 있다. 땅 위에서 우리는 수만 개의 '나'로 흩어져 있지만, 땅 밑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우리'로 존재한다. 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나를 지탱하고, 우리 모두를 살게 한다.
이곳에서의 대화는 소리가 아닌 진동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갈대 하나가 영양분을 넉넉히 빨아들이면, 그 풍요의 기운은 뿌리를 통해 곁의 가난한 동료에게로 흘러간다. 어떤 갈대 하나가 위험한 해충의 공격을 감지하면, 그 위기의 신호는 순식간에 우리 모두에게 전달되어 함께 방어할 태세를 갖춘다.
우리는 경쟁하지 않는다. 그저 연결될 뿐이다.
이곳에서는 더 높이 솟아오른 줄기도, 더 화려한 이삭도 무의미하다. 오직 서로를 얼마나 단단히 붙잡고 있는지가 존재의 유일한 척도가 된다.
인간들은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며 끊임없이 비교하고 싸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옆 사람을 짓밟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서로를 속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두 같은 땅에 발을 딛고 선 존재라는 사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계와 역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그들이 서로에게 뻗어야 할 것은 칼이 아니라, 뿌리인데 말이다.
나는 이 깊은 땅속에서 진정한 안정감을 느낀다.
세상의 어떤 폭풍우도 우리의 이 단단한 연대를 끊어낼 수는 없다. 흔들리는 것은 지상의 나약한 나의 줄기일 뿐, 지하의 강인한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어제의 폭우를 견뎌내고, 오늘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동이 터 오고, 나는 다시 땅 위로 의식을 끌어올린다. 이제 곧 바람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기에, 두렵지 않다. 나는 홀로 서 있는 갈대가 아니라, 거대한 숲의 일부이므로. 나의 흔들림은 외로운 몸부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가 보내는 거대한 연대의 춤이다.
에필로그
나의 모든 것을 비워낸 계절, 나는 비로소 영원을 꿈꾼다.
나의 푸른 잎들은 모두 빛을 잃고, 몸속의 모든 물기는 바람에게 돌려주었다. 이제 나는 텅 빈 껍데기, 바스락거리는 마른 줄기만으로 혹독한 겨울을 맞는다. 사람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죽었다'고 말한다. 생명의 불꽃이 꺼지고, 존재의 흔적마저 희미해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것은 죽음이 아니라, 가장 깊은 명상에 든 상태라는 것을.
나는 모든 것을 비워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탐욕스럽게 물을 빨아들이던 생명의 욕심도, 더 높이 솟아오르려 했던 성장의 미련도 없이, 오직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만으로 서 있다. 이 앙상한 모습이야말로 나, 갈대의 가장 정직하고 순수한 모습이다. 모든 것을 벗어던진 후에야 비로소 나는 진정한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모습으로 혹독한 겨울의 침묵을 견뎌낼 것이다. 매서운 눈보라와 얼어붙은 땅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나의 뿌리는 땅속에서 여전히 다른 뿌리들과 단단히 얽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봄이 오면, 나의 가장 깊은 곳, 보이지 않는 뿌리로부터 다시 새로운 싹을 틔울 것이다. 흔들리고, 비워내고,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는 이 덧없어 보이는 순환이야말로 영원에 이르는 나의 길이다.
그러니 나를 보고 더 이상 지조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의 흔들림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겸손한 춤이었고, 나의 텅 빔은 온 우주를 품는 가장 위대한 그릇이었다. 나는 오늘도 이곳에 서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있다. 그리고 나만의 언어, 사각거림으로 여러분에게 조용히 위로를 건넨다.
괜찮다고, 흔들려도 괜찮다고. 부러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그리고 언젠가, 모든 것을 비워내고 나면 가장 아름다운 '새로운 시작'이 여러분을 찾아올 것이라고.
나의 생각!
여러분이 외롭고 연약하게 느껴질 때, 여러분의 발밑을 느껴보십시오.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뿌리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족, 친구, 그리고 당신을 스쳐 간 모든 인연과 역사. 그 보이지 않는 연대가 여러분을 결코 쓰러지지 않게 지켜주는 가장 큰 힘입니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셨나요? 모든 것을 잃고 공허함만이 남았다고 생각되나요? 그것은 끝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여러분! 자신과 마주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비워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뿌리에는 이미 새로운 싹이 움트고 있으며, 여러분의 빈 공간은 더 큰 사랑을 담을 그릇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