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폐에서 불어오는 100년의 풍랑
박 의사의 손가락이 내 차가운 몸체를 움켜잡고 김 영감님의 등 뒤로 자리를 옮겼다. 심장이 생의 엔진이라면, 폐는 그 엔진을 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바깥세상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거대한 벨로즈(Bellows, 풀무)'다.
"영감님, 이제 등으로 숨을 쉰다고 생각하시고... 크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으세요. 자, 시작!"
박 의사의 지시에 영감님의 갈비뼈가 앙상한 새의 날개처럼 들썩였다. 나는 그의 견갑골 사이, 폐의 가장 깊숙한 골짜기에 내 차가운 금속판을 밀착시켰다.
'스으으... 바스락. 후우우... 쌕.'
내 귀에 가장 먼저 잡힌 소리는 맑은 냇물 흐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가을날 바싹 마른 낙엽을 밟는 듯한 '바스락'거리는 마찰음이었다. 의사들은 이를 '수포음'이나 '건성 수포음'이라 부르며 염증의 지표로 삼겠지만, 100년의 소리를 수집해온 나 실비에게 이 소리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그것은 영감님이 평생 마셔온 '역사의 퇴적물'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비명이었다.
"영감님, 가래가 좀 끓으시네요. 담배는 끊으신 지 오래되셨죠?" 박 의사가 묻자, 영감님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허허, 담배야 한 30년 됐지. 근데 이놈의 폐가 기억력이 나빠서 말이야. 아직도 옛날 연기를 품고 사나 봐."
영감님의 농담은 뼈아픈 진실이었다. 나는 그의 폐포 구석구석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기억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1950년대, 포탄이 터질 때마다 솟구치던 그 매캐한 화약 연기와 무너진 건물더미의 석회 가루들. 1970년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사막의 모래폭풍을 뚫고 들이켰던 중동의 건설 먼지. 그리고 90년대, 서울의 급격한 팽창 속에 매일같이 마셨던 디젤 트럭의 검은 매연까지. 영감님의 폐는 단순한 호흡기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모든 분진을 걸러낸 '거대한 공기청정기'였던 셈이다.
현대인들은 미세먼지 수치가 조금만 '나쁨'으로 표시되어도 마스크를 겹겹이 쓰고 공기청정기를 최고 단계로 돌린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내뱉는 '독한 말'과 '냉소적인 한숨'이 타인의 폐를 어떻게 오염시키는지는 관심이 없다.
나는 영감님의 숨소리 사이에서 아주 미세하게 섞인 '한숨의 진동'을 포착했다. 그것은 환경 오염보다 더 무서운 '마음의 미세먼지'였다. 자식들이 사업에 실패했을 때 삼켰던 눈물 섞인 공기,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날 때마다 내뱉었던 허망한 탄식. 그 무거운 공기들이 영감님의 폐포를 딱딱하게 굳히고(FIBROSIS), 숨길을 좁게 만들었다.
"흡- 하-."
다시 한번 숨을 내뱉는 순간, 좁아진 기도를 통과하는 공기가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냈다. '쌕-' 하는 그 소리는 마치 삶이라는 거친 파도를 넘나들던 낡은 돛배의 돛줄이 바람에 떨리는 소리 같았다.
"영감님, 숨쉬기 많이 답답하시죠?" 박 의사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영감님은 창밖의 뿌연 하늘을 보며 말했다. "아니야, 박 의사. 세상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그래. 다들 너무 빽빽하게 숨을 쉬니까, 나 같은 늙은이가 마실 공기가 좀 부족한 게지."
나는 이 대목에서 우리 시대의 단면을 보았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공기를 선점하려 들고, 남보다 더 많은 산소를 소비하려 경쟁하는 세상. 정작 타인에게 '숨 쉴 틈'을 내어주는 이는 드물다. 100세 노인의 좁아진 숨길은 어쩌면 이 비좁고 각박한 세상에 대한 육체적 저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몸체에 전해지는 진동을 통해 영감님께 속삭였다. '영감님, 괜찮아요. 당신이 걸러낸 그 탁한 공기 덕분에 누군가는 맑은 숨을 쉬었을 거예요. 당신의 한숨은 약한 게 아니라, 세상을 정화하느라 지친 거니까요.'
진료가 끝나고 박 의사가 나를 알코올 솜으로 닦아냈다. 차가운 소독액이 내 금속판에 닿자, 방금 전 영감님의 폐에서 들려오던 그 눅눅하고 뜨거운 세월의 냄새가 씻겨 나갔다. 하지만 내 실리콘 튜브 안에는 여전히 그 '바스락'거리는 기억의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우리는 깨끗한 공기를 갈망하지만, 정작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타인의 고단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김 영감님의 거친 폐음은 병적인 징후가 아니라, 100년이라는 풍랑을 온몸으로 받아낸 항해자의 거친 숨고르기였다.
서랍장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작은 바람 소리를 들었다. 세상은 오늘도 분주하게 숨을 헐떡이며 달려간다. 내일은 영감님의 심장 깊은 곳, 그 낡은 문(판막)이 내는 소리를 들으러 가야 한다. 그 문이 닫힐 때마다 무엇이 뒤로 역류하고 있는지, 무엇을 붙잡으려 하는지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떨려온다.
오늘 밤, 당신의 숨소리는 어떤 풍경을 그리고 있나요? 혹시 누군가에게 내어줄 작은 '숨 쉴 공간' 하나쯤은 품고 있나요?
[다음 화 예고] 제3화: 판막의 비명, 그리움의 역류 의학적으로는 '판막 부전'이라 부르는 증상을 통해, 노인이 평생 가슴에 묻어둔 '그리움'과 '후회'가 어떻게 심장 소리로 변해 역류하는지를 위트와 감동으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