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일대기 "나의 하루 "(1~3화) - (1화) 고3 수험생의 어떤 하루

 

 의자 일대기 "나의하루" (1~3화)

 (1화) 고3 수험생의 어떤 하루 



나는 '좌식-3000', 평범한 학습용 의자다. 내 이름이 왜 좌식-3000이냐고?  뭐, 딱히 지을게 업어서 써봤어 불만은 없다. 어차피 나의 존재 이유는 앉혀지는 것뿐이니까.

내 주인은 올해로 열아홉 살, 흔히들 고삼이라 부르는 존재다. 키는 멀대같이 크고, 얼굴엔 아직 여드름 자국이 선명하다. 잠이 부족해서 늘 눈 밑에 거무튀튀한 그림자를 달고 다니는 녀석. 이름은 성규라고 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도 많은 엉덩이가 나를 스쳐 갔으니 말이다.

성규의 하루는 언제나 똑같다.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흐읍, 졸려…" 하는 한숨과 함께 내 위에 몸을 싣는다. 그 작은 엉덩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내가 온전히 받아내야 할 몫이다. 처음엔 좀 간지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아니, 오히려 그 온기가 없으면 허전할 지경이다.

그는 내 위에서 수학 문제와 씨름하고, 영어 단어를 외우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은 너무 졸린 나머지 내 등받이에 기대어 잠깐 잠이 들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의 머리카락이 내 까슬한 천에 닿는 느낌은 묘하다. 부드럽다고 해야 할까, 아련하다고 해야 할까. 녀석의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는 "…대학 가야 하는데…" 같은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조금이라도 더 굳건하게 그를 지탱해주고 싶어서.

성규는 식사를 할 때 잠깐 나를 떠난다. 그때 나는 비로소 숨을 돌린다. 하지만 이내 녀석은 다시 돌아와 나를 짓누른다. 저녁이 되면 성규는 표정은 더 어두워진다. 문제 하나 풀 때마다 튀어나오는 한숨 소리는 마치 작은 폭발음 같다. 내가 미처 흡수하지 못한 스트레스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소리. 나도 답답하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묵묵히 앉아있는 것뿐이니.

밤이 깊어지고, 창밖으로 마지막 가로등 불빛마저 희미해질 때쯤, 성규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난다. "끄응… 허리 아파." 늘어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떠나면 나는 해방감과 함께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낀다. 그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는 차갑고 쓸쓸하다.

오늘도 그의 하루가 끝났다. 그리고 나의 하루도 끝났다. 내일, 성규는 또 다시 내 위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의 무게를 버텨낼 것이다. 묵묵히, 아무 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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