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사의 낡은 중절모 " 나의 하루 " (1~3화)
(마지막3화) 현관의 수호신, 하루를 갈무리하다
"오늘도 잘 버텼다, 애썼다 이놈들아!" 현관 지킴이 중절모의 고단한 현대 가족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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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주인과 나는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주인의 머리 위에서 세상을 관망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노동이다.
온갖 소음과 시끄러운 풍경,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 군상들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는 것은 나의 펠트 챙에 주름 하나 더 늘게 할 만큼 피곤한 일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주인은 익숙한 손길로 나를 벗어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주셨다. 나는 그 손길에서 오늘 하루 주인이 느꼈을 피로와, 그럼에도 잊지 않는 나에 대한 애정을 느낀다. 마치 충직한 신하를 어루만지듯 다정하다. 그러고는 나를 현관 벽에 걸린 낡은 모자걸이, 나의 '왕좌'에 걸어두셨다.
이곳은 나의 안식처이자, 동시에 또 다른 형태의 '실내 전망대'이다.
나는 이곳에서 오가는 가족들의 하루를, 보이지 않는 수호신처럼 지켜본다.
제일 먼저 학원에서 돌아온 손주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가방이 저 조그만 어깨를 짓누르는 것이 마치 등에 커다란 바위를 짊어진 고행자 같다. 녀석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는, '스마트폰'을 찾듯 방으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쯧쯧, 저 녀석의 어깨 위에도 언젠가는 나처럼 '삶의 무게'라는 중절모가 얹힐 텐데.
그때도 저리 성급하게 벗어 던질 수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을 보고 돌아온 며느님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양손 가득 들린 비닐봉투는 마치 전쟁터에서 전리품을 잔뜩 짊어지고 돌아온 여전사 같다. 며느님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한숨부터 내쉰다. 곧바로 부엌으로 향하는 며느님의 뒷모습에는 오늘 저녁상을 채워야 하는 주부의 고단함이 역력하다.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부지런한 자여, 그대의 땀방울이 곧 가족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구나. 그대 머리 위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의 면류관'이 씌워져 있거늘.'
그리고 저녁 무렵, 아들이 퇴근길에 지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현관으로 들어섰다. 넥타이는 살짝 풀어져 있고, 얼굴에는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아들은 조용히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은 뒤, 주인의 방으로 향해 문안 인사를 드린다. 아버지와 아들의 짧은 대화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오늘도 고생했다.' '별말씀을요, 아버지.' 그들에게는 서로를 이해하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저 짧은 말 한마디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하루를 읽어낼 수 있다.
나는 이 현관의 '왕좌'에서 이 가족들의 일상을 매일 지켜본다. 모두들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불평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저들의 머리 위에는 나처럼 멋진 펠트 중절모는 없지만,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무형의 왕관'을 쓰고 살아가는 진정한 삶의 영웅들이다.
밤이 깊어지고, 집안은 고요해진다. 모두들 각자의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다. 그때, 주인께서 잠옷 차림으로 현관으로 다가오셨다.
주인은 나를 한번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늘 그랬듯 다정하게 나를 쓰다듬어 주신다.
그 손길에서 나는 오늘 하루 주인이 느꼈을 모든 감정들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아침의 쾌활함, 젊은이들의 무례함에 대한 씁쓸함, 그리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한 것에 대한 안도감. 나는 단순한 모자가 아니다.
나는 주인의 인생, 그 자체를 함께 이고 온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무언의 동반자이다.
어둠 속에서 나는 내일의 아침을 기다린다. 내일은 또 어떤 햇살이 나를 비추고, 어떤 바람이 나를 스치며, 어떤 세상의 이야기가 나의 펠트 귀에 들려올까? 그리고 나의 가족들은 또 어떤 무게의 하루를 살아내게 될까?
나는 언제나처럼 이 현관의 왕좌에서 그들의 삶을 지켜볼 것이다.
비록 말은 할 수 없지만, 나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에게 작은 위안과 변치 않는 묵묵한 지지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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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학생은 학업의 무게를, 부모는 가족의 무게를, 직장인은 생업의 무게를. 때로는 그 무게가 너무 버거워 투정을 부리거나, 타인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짊어진 그 무게는 당신을 더욱 단단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묵묵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가장 큰 위안이자 버팀목이 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머리 위에 씌워진 '무형의 왕관'을 잠시 쓰다듬으며 스스로에게 '애썼다'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삶의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외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를 지탱하는 일상 속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