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사의 낡은 중절모 " 나의 하루 " (1~3화)
(2화) 벤치의 철학자, 인연을 만나다
"요즘 연애, 참 피곤하구먼!" 반세기 중절모, 젊은 커플의 사랑 싸움에 등골 브레이크?
아침 산책길에 만난 '스마트폰'과 '에어팟'인지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 주인과 나는 언제나처럼 공원 안 벤치에 몸을 맡겼다.
벤치는 마치 세상만사를 관조하는 철학자의 자리와도 같다.
나는 주인의 머리 위에서 한층 더 높은 '사색의 고도'에 도달하며, 평소보다 더욱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굽어살핀다.
오후의 공원은 아침과는 또 다른 풍경으로 북적인다. 아침의 부산스러움 대신, 한가로운 여유와 함께 온갖 인간 군상들이 펼치는 소소한 드라마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저기 저 꼬마는 아이스크림을 흘리고 대성통곡이고, 저 청년은 벤치에 앉아 열심히 '손가락 노동' 중이다. 쯧쯧, 저러다 손가락에 관절염이라도 오면 어쩌려나.
그때였다. 맞은편 벤치에 앉아 계신 백발의 숙녀 분 머리 위에 익숙한 실루엣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와 같은 시절을 보냈을 법한, 비록 세월의 흔적은 역력하지만 여전히 단아한 자태를 뽐내는 '숙녀용 모자'였다. 부드러운 레이스와 작약꽃 한 송이로 장식된 그 우아함이라니! 나는 주인의 머리 위에서 정중하게 '목례'를 보냈다.'부인, 오늘도 바람이 제법이군요. 당신의 그 우아한 챙이 자칫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나의 무언의 인사에, 숙녀용 모자 또한 미묘하게 흔들리며 화답하는 듯했다.
'호호, 신사 분이야말로 단단히 중심을 잡으셔야지요. 저기, 비둘기들이 당신의 머리 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답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랄까.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반세기 넘는 세월의 회포를 풀고,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위로했다. 굳이 목소리를 낼 필요도 없었다. 모자는 원래 주인의 말을 들어야 하는 존재이지, 제 목소리를 내는 존재가 아니니까. 우리는 묵묵히 서로의 존재를 통해 위안을 얻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멀리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류를 풍기며 걸어오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요즘 것들 커플'이었다. 그들은 벤치에 털썩 주저앉기가 무섭게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서로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오빤 내 맘을 너무 몰라줘!" 여자의 목소리가 공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넌 너무 쪼잔해! 맨날 똑같은 걸로 트집 잡고!" 남자는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주인의 머리 위에서 한숨을 쉬었다. 아아, 젊은 시절의 연애란 원래 저리도 시끄러운 것이었나? 내가 기억하는 주인의 연애는 저렇게 격정적이지 않았다. 주인은 그저 숙녀분의 말에 귀 기울이고, 숙녀분은 주인의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읽어내곤 했었지.
'어리석은 젊은이들 같으니라고. 사랑이란 상대의 마음을 백 퍼센트 아는 것이 아니라, 다 알 수 없기에 더욱 귀 기울여주고 헤아리려 노력하는 것이거늘.
저들은 서로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고 제 목소리만 높이는구나. 저들의 귀에 꽂힌 '에어팟'인지는 혹시 저들의 마음속에도 박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요즘 사람들은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는다. 그저 손 안의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가짜 세상과, 에어팟인지가 들려주는 소음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다. 저 연인들 또한 각자의 '스마트폰'이 보내는 메시지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눈앞의 사랑하는 이의 진심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 아닐까?
주인과 나는 그저 묵묵히 그들의 격정적인 드라마를 관람했다. 주인은 한 번도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셨지만, 나는 주인께서 그들의 대화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벤치 아래로 떨어진 여자의 작은 손수건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여자는 격양된 목소리로 연인의 탓만 하고 있었고, 손수건의 존재는 이미 잊은 듯했다.
주인은 조용히 벤치에서 일어나셨다. 나는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살짝 흔들렸다. 주인은 허리를 굽혀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 젊은이에게 건네셨다.
"아가씨, 손수건이 떨어졌구려." 주인의 목소리는 낮고 온화했지만, 그 어떤 싸움의 소리보다도 크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
주인의 작은 친절에, 마치 마법이라도 걸린 듯 시끄럽게 다투던 커플은 일순 정지했다. 여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받아 들었고, 남자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벤치에 앉으셨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말없이 자리를 떴다.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졌다.
백 마디의 논쟁보다, 한 번의 따뜻한 행동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펠트 신사'인 내가 반세기 동안 주인의 머리 위에서 보고 배운 삶의 진리였다.
진정한 관계는 상대방의 말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침묵 속에서 진심을 헤아려주는 데서 시작되는 법이다.
우리는 그렇게 평화로운 공원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을 재촉했다. 벤치에 남겨진 젊은 연인들이 주인의 작은 친절 덕분에 잠시나마 자신들의 소란스러움을 멈추고 서로를 돌아볼 수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그렇게 한 뼘 더 '벤치의 철학자'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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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침묵 속에 담긴 진심이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하고, 백 마디 말보다 작은 행동 하나가 관계의 물꼬를 트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혹은 스쳐 가는 인연에게 여러분의 '에어팟'을 잠시 빼고,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고, 그의 침묵을 들어주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진정한 소통은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