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담은 호수 "나의 하루" (1~5화)
(3화) 오후의 소나기, 숨겨진 진실
"때로는 거친 소나기가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내듯, 진실은 가장 격렬한 순간에 드러납니다. 예측할수 없는 오후!
한낮의 활기 넘치던 시간도 잠시, 오후가 깊어지자 하늘은 갑작스러운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회색빛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나는 거울처럼 맑았던 내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천둥소리는 마치 세상의 분노처럼 쩌렁거렸다. 사람들은 황급히 짐을 챙겨 달아났고, 한가로이 뱃놀이를 즐기던 오리들도 서둘러 뭍으로 올라왔다. 나는 홀로 남겨졌다.
“흥, 이 녀석들. 내가 잠시 성질 좀 부리면 다들 도망가기 바쁘군.”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서운했다. 늘 나의 맑고 고요한 모습만 좋아하고, 거칠고 솔직한 모습은 외면하는 것 같아서.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내 몸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던 빗방울들이 이내 거대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 빗방울 하나하나를 온몸으로 맞았다.
어떤 빗방울은 차가운 슬픔을, 어떤 빗방울은 뜨거운 분노를, 또 어떤 빗방울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싣고 나에게로 왔다. 나는 격렬하게 요동쳤다. 거대한 물결이 일었고, 내 안에 비쳤던 세상의 모습들은 모두 찌그러지고 흐릿해졌다. 푸른 산은 춤을 추듯 흔들렸고, 단단했던 돌멩이의 모습은 형체 없이 흩어졌다.
그때였다. 빗속을 뚫고 웬 어린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이의 손에는 낡고 작은 종이배가 들려 있었다. 아이는 종이배를 나에게 띄우려 했지만, 거친 일렁임에 번번이 실패했다. 아이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내 거친 모습이 저 아이의 순수한 꿈마저 짓밟는 것 같아서.
나는 애써 요동치는 파도를 잠재우려 노력했다. 내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함을 끌어올려, 파도가 덜 치도록 애썼다. 나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일까. 나의 물결은 서서히 잔잔해졌고, 아이는 종이배를 띄울 수 있게 되었다.
종이배는 물결을 따라 흔들리며 미끄러져 나갔다.
아이는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종이배를 따라 달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의 거친 모습 속에서도, 누군가의 작은 꿈을 지켜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비가 그치자 세상은 한층 더 맑고 깨끗해졌다. 흙먼지가 씻겨 나간 나뭇잎은 더욱 푸르게 빛났고, 먼지가 가라앉은 도시는 반짝거렸다. 내 안에 비친 세상의 모습도 한층 더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격렬한 소나기는 나를 힘들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정화시키고, 나에게 새로운 모습을 선물해주었다는 것을.
나는 비가 내리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들을 발견했다. 풀잎에 매달린 투명한 물방울, 흙냄새가 가득한 상쾌한 공기, 그리고 무지개. 무지개는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나는 하늘과 함께 무지개를 만들었다. 오색찬란한 빛깔이 내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오늘 하루, 나는 거울이 되기를 포기하고 솔직한 나의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나를 외면했지만, 나는 새로운 진실을 만났다. 나의 거친 모습 또한 나이며, 그 모습 속에서 나는 더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의생각!
인생은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소나기처럼 격렬하고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우리가 숨겨왔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기회가 될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더 맑고 깨끗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용기는 순수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거친 폭풍우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내 안의 진실을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