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쓰레기통 속 계급사회
"버려졌다고 다 같은 쓰레기가 아니었다. 여기에도 서열이 있었다."
청소부 아저씨의 손에 들린 채 나는 공공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회색 플라스틱으로 된, '일반쓰레기'라고 적힌 그곳.
"들어가라."
무심한 손길이 나를 던졌다. 나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쿵. 무언가 부드러운 것 위에 착지했다.
"아야! 누구야!"
"죄, 죄송합니다!"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둠에 눈이 익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떨어진 곳은 검은색 비닐봉지 위였다. 찢어진 부분에서 음식물 냄새가 났다.
"조심 좀 하시지. 여기 처음이세요?"
비닐봉지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 방금 막..."
"그럼 일단 구석으로 비켜요. 여긴 낙하 지점이거든요. 계속 여기 있으면 맞아요."
나는 황급히 옆으로 굴렀다. 그 순간 위에서 페트병 하나가 떨어졌다. 쾅. 비닐봉지가 한숨을 쉬었다.
"봐요. 말했죠?"
주변을 둘러보니 쓰레기통은 생각보다 복잡한 공간이었다.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고, 각 층마다 다른 쓰레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기...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상하긴요. 여기도 사회예요. 쓰레기통 사회."
비닐봉지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저기, 맨 위층 보이죠?"
비닐봉지가 고개를 들어 위를 가리켰다. 쓰레기통 입구 바로 아래, 상대적으로 깨끗한 영역.
"저기가 1등급 구역이에요. 명품 쇼핑백, 깨끗한 종이컵, 새 제품 포장지. 그런 것들이 모이는 곳이죠."
과연 그곳에는 한때 고급스러웠을 것들이 모여 있었다. 루이비통 로고가 찍힌 쇼핑백이 보였다. 비록 찢어지고 구겨졌지만, 여전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난... 루이비통이었어."
쇼핑백이 중얼거렸다. 과거형으로.
"누구나 다 아는 명품 매장에서 나왔지. 500만 원짜리 가방을 담았던 나야. 그런데 지금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쓰레기통 속 종이 조각일 뿐이었다.
"혹시 모르잖아요. 누가 주워갈지도."
내가 위로 삼아 말했다.
"주워가? 하!" 쇼핑백이 비웃었다.
"찢어진 쇼핑백을 누가 주워가. 하지만 난 끝까지 여기 있을 거야. 맨 위에. 저 아래 것들이랑은 달라."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자부심과 절망이 섞여 있었다.
"저 밑에 보이는 게 2등급."
비닐봉지가 설명을 이어갔다.
"일반 플라스틱, 캔, 종이컵. 우리 같은 것들이죠. 한때 쓸모 있었지만 이제는 그냥... 중간층?"
나는 내 위치를 확인했다. 정확히 2등급 구역에 있었다. 주변에는 콜라캔, 생수병, 과자 봉지들이 있었다.
"그럼 저 아래는요?"
내가 물었다. 쓰레기통 바닥, 어둡고 축축한 곳.
"3등급. 음식물 쓰레기, 젖은 휴지, 담배꽁초... 말하기도 싫어요."
비닐봉지의 목소리에 묘한 경멸이 섞여 있었다.
그때였다.
"야, 거기 새로 온 캔!"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맥주캔이 나를 보고 있었다. 몸통이 찌그러지고, 곳곳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너 뭔데? 프리미엄? 커피?" "네... 프리미엄 콜드브루요." "프리미엄? 하!"
맥주캔이 비웃었다.
"여기선 다 똑같아. 알루미늄은 알루미늄이야." "하지만 저는 2,800원짜리..."
"가격? 그게 여기서 무슨 소용이야? 봐, 저기 저 금색 포장지. 수입 초콜릿이래.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여기 온 건 마찬가지잖아."
나는 맥주캔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모두 버려졌다.
순간 위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반짝이는 금색 포장지였다. 초콜릿 포장지 같았다.
"어머, 실례합니다!"
금색 포장지는 공손하게 인사하며 1등급 구역으로 올라갔다. 명품 쇼핑백 옆에 자리를 잡았다.
"저기요, 당신 뭔데 거기 올라가요?"
2등급 구역의 플라스틱 컵이 따졌다.
"전 페레로로쉐 포장지예요. 프리미엄 초콜릿이죠."
"초콜릿 포장지 주제에!"
"주제? 전 수입 제품이에요. 당신들과는 달라요."
순간 쓰레기통 안이 술렁였다.
"뭐가 달라?" "다 버려진 건 똑같잖아!" "수입이면 뭐해, 여기 온 건 마찬가지인데!"
하지만 금색 포장지는 꿋꿋했다. 그는 자신이 속한 곳은 위라고 믿었고, 실제로 그곳에 머물렀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버려진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열을 나누고 있었다. 출신을, 가격을, 브랜드를 따지며.
"웃기지?"
맥주캔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다 쓰레기인데 말이야. 명품이든, 프리미엄이든, 수입품이든. 결국 여기 있잖아."
"그럼... 우리는 다 똑같은 건가요?"
내가 물었다.
"당연하지. 버려진 순간 다 똑같아. 아, 근데."
맥주캔이 아래를 가리켰다.
"저기만 빼고. 저긴 진짜 다르지."
바닥에는 음식물 쓰레기들이 뭉쳐있었다. 썩어가는 과일 껍질, 젖은 휴지, 담배꽁초. 그들은 말이 없었다. 아니, 말할 기력도 없어 보였다.
"저들은... 재활용도 안 돼요."
생수병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그래도 다시 태어날 수 있지만, 저들은 그냥 썩어서 사라지는 거죠. 진짜 끝."
순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명품 쇼핑백이 다시 중얼거렸다.
"난 루이비통이었는데..."
금색 포장지가 자신의 빛나는 표면을 쓰다듬었다.
"난 아직 반짝거리는데..."
플라스틱 컵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2등급이지만 그래도..."
모두가 아래를 보며 안도했다. 적어도 저것보단 낫다고. 적어도 우리는 재활용될 수 있다고.그때 쓰레기통 뚜껑이 열렸다.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누군가 컵라면 용기를 던져 넣었다. 그것은 공중에서 빙글 돌며 떨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2등급과 3등급 사이에 걸쳐 놓였다.
"저기... 전 어디로 가야 하죠?"
컵라면 용기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플라스틱이었지만 안에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있었다. 재활용 가능한 물건이었지만 제대로 씻기지 않았다. 2등급인가, 3등급인가.
"씻고 왔어야죠."
생수병이 차갑게 말했다.
"더러운 재활용품은... 그냥 쓰레기예요."
컵라면 용기는 천천히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3등급 구역으로.
"안 돼! 저 플라스틱인데요! 재활용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아니, 듣고도 모른 척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우리는 버려진 후에도 여전히 구분되고 있었다. 깨끗한가, 더러운가. 재활용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브랜드가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각자 자기가 속한 등급을 정당화했다. 아래를 보며 안도하고, 위를 보며 부러워했다.
"이상하지 않아요?"
내가 맥주캔에게 물었다.
"우리 다 버려진 건데, 왜 아직도 서열을 나누는 거죠?"
"그게 습관이니까."
맥주캔이 대답했다.
"채워져 있을 때 배운 거지. 더 비싸고, 더 고급스럽고, 더 깨끗해야 한다고. 비워진 후에도 그 습관은 남아."
"그럼 진짜 우리는 다른 건가요?" "몰라. 근데 한 가지는 확실해."
맥주캔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여기서 나가는 방법은 하나야. 수거 트럭. 그때는 아무도 등급 안 따져. 그냥 다 같이 실려가거든."
"수거 트럭이요?"
"응. 보통 저녁때 와. 쓰레기통을 통째로 뒤집어서 트럭에 쏟아붓지. 그때는 루이비통도, 컵라면도, 담배꽁초도 전부 뒤섞여."
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뚜껑 틈으로 하늘이 보였다. 파란 하늘.
"근데 말이야."
맥주캔이 다시 말했다.
"그게 오히려 공평한 것 같아. 트럭에 실릴 때만큼은 진짜 평등하거든. 누가 위에 있었든, 누가 깨끗했든, 전부 한데 섞여서 같이 가는 거지."
그 순간 나는 이해했다.
이 계급사회는 우리가 만든 환상이었다. 조금이라도 의미를 붙잡고 싶어서, 완전히 쓸모없어지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만든,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트럭에 실릴 것이다. 모두 같은 공장으로 갈 것이다. 모두 같은 용광로에서 녹을 것이다.
그때는 루이비통도, 프리미엄도, 수입품도 없다. 그저 알루미늄, 플라스틱, 종이, 그게 우리의 진짜 정체성이었다.
"그나저나."
비닐봉지가 말했다.
"오늘 수거일인가 봐요. 저기 위에 햇빛 각도 보니까 저녁 때가 다 됐네요."
"진짜요?" "응. 곧 수거 트럭 올 거예요. 그럼 우리 다 같이 나가는 거지."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좁고 어두운 쓰레기통은 벗어나는 것이다.
"무서워요?"
맥주캔이 물었다.
"조금요. 모르는 곳으로 가는 거잖아요."
"뭐, 어차피 우리한테 선택권은 없어. 하지만 말이야."
맥주캔이 웃었다.
"그게 오히려 편해. 고민할 필요가 없거든."
그 순간 멀리서 트럭 소리가 들렸다. 명품 쇼핑백이 긴장했다.
"벌써? 이렇게 빨리?"
금색 포장지가 떨었다.
"저, 전 아직 준비가..."
하지만 트럭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덜컹, 쓰레기통이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우리는 모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1등급도, 2등급도, 3등급도, 루이비통도, 프리미엄 커피도, 컵라면도, 담배꽁초도, 모두가 뒤섞여 트럭 적재함에 쏟아졌다.
나는 공중에서 돌면서 생각했다.
'이게 평등이구나.'
우리는 버려진 후에도 서열을 만듭니다. 출신 학교, 직장 이름, 연봉, 거주 지역으로 서로를 재단하죠. 쓰레기통 속 명품 쇼핑백처럼 "난 달랐어"라고 과거를 붙들며 현재의 위치를 부정합니다. 하지만 본질을 가리는 이 모든 라벨들, 정말 여러분 자신인가요? 빈 깡통이 쓰레기통에서 본 것은 허상이었습니다. 프리미엄이든 저가형이든, 결국 같은 수거 트럭에 실립니다. 중요한 건 브랜드가 아니라 재질이었죠. 여러분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요? 타인이 붙인 라벨인가요, 아니면 여러분이라는 존재 자체인가요? 모든 껍데기를 벗겨낸 후에도 남는 것, 그것이 진짜 자신입니다.
다음 화 예고: 제3화 '재활용의 환상 - 분리수거 혼돈기' - 제대로 버려지는 것도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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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에도 연재를 쉬지 않으시는 열정넘치는 작가님 덕분에, 글 읽다 말고 오래 묵힌 집안 살림들 휘리릭 뒤집어 급!리사이클링 중ㅋㅋ..한참을 치워도 제자리ㅎ 이거 언제 치우고 정리하나, 현타 오네요ㅎㄷㄷ
모카가 좋아요님 안녕하세요? 저는 명절인지 뭔지 걍 어제와 같은 오늘이지요!^^ 대청소 하시나부넹!, 나는 재활용도 안되는데 ㅋㅋ 그쪽은 재활용할게 많으신갑다. 쉬엄쉬엄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휴가 길게 남았으니 을~마나 좋아요ㅎㅎ 작가님, 독자님들, 모두모두 남은 연휴 행복하소서^^
네 감사!!^^ 모카가 좋아요님도 여러분도 모두모두 행복한 연휴 보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