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깡통의 "나의 하루"(1~5화)
(3화) 재활용의 환상 - 분리수거 혼돈기
"분리수거? 그건 인간들의 환상이었다. 여긴 그냥 '다시 섞기 현장'이었다."
쿵!.
트럭 적재함에 떨어진 나는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온갖 쓰레기들과 뒤엉켜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도 몰랐다.
"괜찮아?"
맥주캔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내 옆에서 찌그러진 채 누워있었다.
"네... 근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분리수거장. 거기서 다시 분류되지."
트럭은 덜컹거리며 달렸다. 10분쯤 지났을까. 트럭이 멈췄다.다시 쓰레기통이 기울어졌고, 우리는 모두 쏟아져 나왔다.
쾅! 쿵! 철컥!
나는 딱딱한 바닥에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니, 넓은 공터 같은 곳이었다. 여러 개의 큰 철제 박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여기가 분리수거장이구나."
맥주캔이 말했다. 각 박스에는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캔류', '플라스틱', '유리병', '종이', '비닐'.
"와, 제대로 나눠져 있네요!"
내가 감탄했다.
"표지판은 그렇지. 근데 속은..."
맥주캔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한 주민이 검은 봉투를 들고 왔다. 봉투를 풀더니 안에 있는 것들을 무심하게 던지기 시작했다.
페트병 - 플라스틱 박스에. 캔 - 플라스틱 박스에. 종이 - 플라스틱 박스에.
"어? 저기요! 캔은 저쪽인데요!"
내가 소리쳤지만 주민은 듣지 못했다. 아니, 신경 쓰지 않았다.
"뭐야, 다 플라스틱 박스에 넣잖아?"
"그러게 말이야." 맥주캔이 한숨을 쉬었다.
"여기 처음이지? 여긴 원래 이래. 분리수거장이 아니라 '다시 섞기 현장'이야."
또 다른 주민이 왔다. 이번엔 좀 더 신중해 보였다.
"이건 플라스틱이니까... 플라스틱." 트병을 플라스틱 박스에 넣었다. 좋았다.
"이건 캔이니까... 어? 라벨이 붙어있네. 그럼 플라스틱인가?"
캔을 플라스틱 박스에 넣었다.
"야, 라벨 때면 캔인데!"
옆에 있던 콜라캔이 소리쳤다.
"비닐도 안 떼고 뚜껑도 안 분리하고... 저게 분리수거래."
세 번째 주민. 젊은 남자였다. 휴대폰을 보며 걷더니 손에 든 플라스틱 컵을 휙 던졌다.
캔 박스에 들어갔다.
"어이!"
내가 소리쳤다.
"저기요! 여기 캔 박스예요! 플라스틱은 저쪽!"
하지만 그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이어폰을 낀 채.
"이게 뭐야... 표지판이 멀쩡히 있는데 왜 안 보는 거야?"
"보긴 봐. 근데 귀찮은 거지." 맥주캔이 설명했다.
"정확히 분리하려면 라벨도 떼야 하고, 뚜껑도 분리해야 하고, 씻어야 하고... 번거롭잖아. 그러니까 그냥 대충 던지는 거야. '어차피 거기서 또 분류하겠지' 하면서."
"그럼 여기 온 의미가 없잖아요!"
"그게 바로 환상이야. 분리수거라는."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캔 박스 안에는 플라스틱 컵, 비닐봉지, 종이컵까지 섞여있었다. 플라스틱 박스는 더 심했다. 온갖 것들이 다 들어있었다.
"그나마 우린 나은 편이야."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페트병이었다. 깨끗하게 라벨도 떼고 뚜껑도 분리된 모범생 같은 모습.
"전 제대로 분리됐거든요. 라벨도 뗐고, 물로 헹궜고, 뚜껑도 따로 뺐어요. 그런데..."
페트병이 주변을 가리켰다.
"보세요. 저기 있는 것들."
멀지 않은 곳에 다른 페트병들이 있었다. 라벨이 붙은 채, 뚜껑도 그대로, 심지어 음료수가 남아있는 것도 있었다.
"우린 같은 페트병인데, 저렇게 다르게 버려졌어요. 누가 더 재활용될까요?" "당연히 당신이죠." "맞아요. 근데 알아요? 여기서 다시 섞이면... 똑같아져요. 제대로 된 것도, 잘못된 것도, 다 같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게 말이 돼요? 저는 제대로 했는데!"
페트병이 울분을 토했다.
"주인이 귀찮다고 라벨도 안 떼고 버린 것들 때문에, 전부 다 오염됐다고 판정받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돼요?"
내가 물었다.
"최악의 경우, 다 소각. 재활용 안 되고 태워지는 거죠."
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때 관리인 아저씨가 나타났다. 작업복을 입고 장갑을 낀 채, 쓰레기 박스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이고, 또 엉망이네."
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캔 박스를 열었다.
"플라스틱이 왜 여기 있어. 종이는 또 뭐고."
아저씨는 플라스틱들을 꺼내 플라스틱 박스로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많았다.
"에이, 하나하나 다 못 하겠네."
결국 아저씨는 대충 큰 것들만 골라내고 갔다.
"저기요! 아저씨! 저도 빼주세요!"
플라스틱 컵이 캔 박스에서 소리쳤지만, 아저씨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보셨죠? 저게 현실이에요." 페트병이 말했다.
"관리인도 사람이에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오는데. 일일이 다 분류할 수 있겠어요? 결국 대충 섞여서 가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
"운이 좋으면 재활용되고, 운이 나쁘면...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거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분리수거를 하면 당연히 재활용될 줄 알았는데.
"근데 말이야."
맥주캔이 끼어들었다.
"더 웃긴 건,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분리수거 잘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무슨 뜻이에요?" "봐. 다들 분리수거장에 가져오잖아. 그러면서 '나 환경 지킴'이라고 뿌듯해하는 거지. 근데 라벨은 안 떼고, 안 씻고, 뚜껑도 안 분리하고 그냥 던져. 형식만 갖춘 거야."
"나 하나쯤이야..."
생수병이 흉내를 냈다.
"대충 버려도 어차피 거기서 분류하겠지... 바쁘니까... 이번 한 번만..." "그게 모이면?"
맥주캔이 주변을 가리켰다.
"이렇게 돼."
분리수거장은 말 그대로 혼돈이었다. 제대로 분류된 것보다 잘못 버려진 것이 훨씬 많았다.
"저기 좀 봐요."
페트병이 한쪽을 가리켰다. 비닐 박스에 누군가 쓰레기 봉투를 통째로 던져놓았다. 봉투 안에는 온갖 것들이 섞여있었다.
"저건... 완전히 일반쓰레기잖아요."
"맞아요. 근데 여기 버린 거예요. 분리수거장에. 왜? 집 앞 쓰레기통이 멀어서. 여기가 더 가까우니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인간들은 참 신기해."
맥주캔이 말했다.
"환경 보호를 외치면서, 정작 자기 손이 더러워지는 건 싫어하지.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해. 그러면서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하지." "하지만 정말 시스템도 문제 아닌가요?"
내가 반문했다.
"맞아. 시스템도 문제야. 분리수거 기준도 복잡하고, 재활용 업체도 부족하고, 관리 인력도 모자라지. 근데..."
맥주캔이 나를 똑바로 봤다.
"시스템만 탓하면, 아무것도 안 바뀌어. 누군가는 제대로 해야 하거든."
순간 페트병이 끼어들었다.
"맞아요! 저처럼요! 전 제대로 분리됐어요! 그게 자랑스러워요!" "근데 그게 소용없다면서요?"
내가 물었다.
"소용없는 게 아니에요. 어려운 거예요."
페트병이 말했다.
"전 제대로 됐어요. 만약 저 같은 페트병이 100개 모이면? 재활용돼요. 확실히. 문제는 저 같은 게 너무 적다는 거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분리수거는 환상이 아니었다. 다만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 것뿐이었다. "여러분." 내가 말했다.
"우리가 여기 온 건 인간들 때문이잖아요. 근데 인간들도 나름대로는 노력하는 것 같은데...""노력?"
맥주캔이 비웃었다.
"라벨 하나 떼는 게 노력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적어도 분리수거장까지는 가져오잖아요. 그냥 버릴 수도 있는데." "그건 법 때문이지. 양심 때문이 아니야." "그래도요. 시작은 했잖아요. 완벽하진 않아도."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엉망이었다. 제대로 된 것보다 잘못된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려질 수도 있었는데.
"이봐요, 프리미엄."
맥주캔이 말했다.
"너무 긍정적으로 보지 마. 현실은 냉혹해. 우리 대부분은 재활용 안 돼." "알아요. 근데 그게 분리수거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인간들이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거지."
"그럼 뭐 어쩌라고?" "제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너... 참 순진하구나."
맥주캔이 웃었다. 하지만 이번엔 냉소가 아니었다. 묘하게 따뜻한 웃음이었다.
"근데 말이야. 그런 순진함이 때론 필요해. 냉소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바뀌거든."
그때 트럭 소리가 들렸다.수거 트럭이었다. 관리인 아저씨가 박스들을 하나씩 들어 트럭에 싣기 시작했다.
"자, 우리 출발한다." "어디로요?"
"재활용 센터. 거기서 진짜 분류가 시작돼. 기계로, 사람 손으로.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는 긴장했다.
"저는... 쓸 수 있는 걸까요?""글쎄. 네가 얼마나 깨끗한지, 제대로 비워졌는지에 달렸지."
나는 나 자신을 돌아봤다. 완전히 비워졌다. 찌그러지진 않았다. 라벨도 붙어있지 않았다.
'나는 준비됐어.' 트럭이 출발했다. 흔들리는 트럭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분리수거는 환상이 아니었다. 제대로만 하면. 인간들이, 우리가, 시스템이. 모두가 조금씩만 더 신경 쓴다면.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게 아닐까.
나의 생각!
우리는 종종 "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합니다. 분리수거 라벨 하나 안 떼도, 뚜껑 하나 안 분리해도, 대충 던져도 괜찮을 거라고 믿죠. 어차피 거기서 누군가 처리하겠지. 시스템이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빈 깡통이 분리수거장에서 본 것은 그 "나 하나쯤"이 모여 만든 거대한 혼돈이었습니다. 제대로 분리된 페트병조차 잘못 버려진 것들 때문에 오염됐다고 판정받는 당신의 "나 하나쯤"은 정말 하나일까요? 아니면 그것이 천 개, 만 개 모여서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리는 건 아닐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대충"과 "최선"은 다릅니다. 오늘 당신이 버리는 그것, 정말 제대로 버렸나요?
다음 화 예고: 제4화 '수거 트럭에서 만난 인생 선배들' - 인생은 한 번 찌그러지면 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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