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안에는 나보다 오래 살아온 것들이 있었다. 그들은 찌그러지고, 녹슬고, 상처투성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기 있었다."
덜컹. 덜컹.
수거 트럭은 거친 길을 달렸다. 적재함 안은 어둡고 비좁았다. 수백 개의 캔들이 뒤섞여 덜컹거릴 때마다 부딪혔다.
"아야!" "조심해요!" "누가 내 발을 밟았어!" "캔이 발이 어디 있어!"
시끄러웠다. 그리고 불편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활기찼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동질감을 만들었다. 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옆에는 아까 분리수거장에서 만났던 맥주캔이 있었다.
"여기서 얼마나 가요?" 내가 물었다.
"한 시간쯤? 재활용 센터까지." "재활용 센터... 거기 가면 뭐 해요?" "분류하지. 제대로 된 거 골라내고, 찌그러진 거 펴고, 녹인 다음에 다시 만드는 거야."
"다시 만들어진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근데 말이야." 맥주캔이 말했다.
"다 다시 태어나는 건 아니야. 어떤 건 너무 망가져서... 그냥 폐기되기도 해."
"폐기요?" "응. 재활용도 안 되는 거지. 그럼 매립되거나 소각돼."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저는... 괜찮을까요?" "글쎄. 네 상태를 봐야지."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을 거야, 젊은이."
돌아보니 낡은 양철 도시락통이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곳곳에 녹이 슬었지만, 묘하게 품위 있어 보였다.
"저기... 선배님은?" "나? 나는 30년 됐지." "30년이요?!"
"1995년생이야. 그때는 도시락통이 다 이렇게 양철로 만들어졌거든. 지금처럼 플라스틱 아니고."
나는 감탄했다. 30년. 나는 고작 며칠밖에 안 됐는데.
"30년 동안... 뭘 하셨어요?"
"도시락을 담았지. 매일 아침. 주인이 밥을 담고, 반찬을 담고, 학교에 가져가고, 회사에 가져가고. 그렇게 30년."
"와..."
"처음엔 반짝거렸어. 새 도시락통이었으니까.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슬고, 찌그러지기도 하고."
도시락통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보기 안 좋지?" "아니요. 멋있어요."
내가 진심으로 말했다.
"멋있다니?"
"네. 그 세월이 보여요. 30년 동안 매일 밥을 담았다는 게... 대단한 거잖아요."
도시락통이 웃었다. 따뜻한 웃음이었다.
"고맙구나. 근데 주인은 그렇게 안 봤나 봐. 어느 날 나를 버렸거든."
"왜요? 아직 쓸 수 있잖아요."
"새 걸로 바꿨대. 요즘 나오는 거, 전자레인지에도 들어가고 세척도 쉽고. 나는 구식이니까."
순간 마음이 아팠다.
"그럼... 서운하셨겠어요."
"처음엔 그랬지. 30년을 함께했는데, 그냥 버려지다니. 근데 여기 오면서 생각했어."
"뭘요?" "내 역할은 다했구나. 30년 동안 매일 밥을 담았으면,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닐까."
도시락통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슬프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그냥 받아들이는 어조였다.
"그리고 말이야."
도시락통이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 보면 다들 찌그러지고, 망가지고, 상처투성이야. 근데 그게 나쁜 건 아니더라고. 그건 우리가 살아왔다는 증거니까."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상처가 증거라니.
"저기요, 할아버지."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콜라캔이었다. 반짝거리는 빨간색 디자인.
"전 아직 안 찌그러졌어요. 깨끗해요." "그래? 다행이네." "근데요... 저도 찌그러질까요? 나중에?" "아마도."
도시락통이 웃었다.
"다들 찌그러지지. 시간이 지나면." "싫은데요. 저 이쁘게 생겼거든요."
"하하, 젊은이 다운 말이네. 근데 말이야."
도시락통이 콜라캔에게 말했다.
"찌그러진다고 끝나는 건 아니야. 봐, 나 여전히 여기 있잖아. 찌그러지고, 녹슬고, 늙었지만." "그래도... 새것이 더 좋잖아요." "새것은 예쁘지. 하지만 이야기가 없어."
"이야기요?" "응. 나는 30년의 이야기가 있어. 매일 아침의 밥, 점심시간의 맛, 주인의 손길. 그 모든 게 여기 새겨져 있지."
도시락통이 자신의 찌그러진 부분을 쓰다듬었다.
"이 찌그러진 곳은 어느 날 떨어뜨렸을 때 생긴 거야. 이 녹슨 부분은 비 맞은 날 말리지 못해서 생긴 거고. 다 이야기야."
나는 새롭게 도시락통을 봤다. 그의 상처 하나하나가 이야기였다.
그때 맥주캔이 끼어들었다.
"하긴, 나도 찌그러졌지만 여전히 알루미늄이야. 녹여서 다시 만들면 새 캔이 되는 거고."
"근데 형."
콜라캔이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형은 형인가요?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요?"
순간 침묵이 흘렀다.
"...모르겠어."
맥주캔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기억은 없을 거야. 녹으면 다 사라지니까. 근데 뭐, 재질은 똑같잖아. 알루미늄은 알루미늄이고." "그럼 형은 사라지는 거네요. 형이 아닌 다른 게 태어나는 거고."
"그럴 수도 있지." "무섭지 않아요?" "무섭지."
맥주캔이 인정했다.
"자아가 사라진다는 게. 기억이 없어진다는 게. 하지만 뭐 어쩌겠어. 선택권이 없는데."
"저기..."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시 태어나면, 우리는 다른 걸 담을 수 있잖아요. 도시락통이 커피캔이 될 수도 있고, 맥주캔이 콜라캔이 될 수도 있고." "그건 그렇지." "그럼 그게... 끝이 아니라 변신 아닐까요?" "변신?" "네. 같은 재질인데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거. 죽음이 아니라 변화?"
도시락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낫네. 변신이라..." "근데 말이야."
맥주캔이 말했다.
"변신한다고 해도, 결국 또 쓰이고 버려지잖아. 무한반복 아니야?"
"맞아요. 그게 바로 순환이에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순환하는 거예요. 태어나고, 쓰이고, 버려지고, 다시 태어나고. 끝없이."
"그게... 좋은 건가?"
콜라캔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근데 적어도 의미는 있잖아요. 한 번 쓰이고 끝나는 것보다."
그때 트럭이 속도를 줄였다. 목적지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거의 다 왔나 봐."
도시락통이 말했다.
"재활용 센터." 모두가 긴장했다. 다음 단계였다. 용광로가 있는 곳.
"무섭지?" 맥주캔이 물었다.
"네... 무서워요." 내가 인정했다.
"녹는다는 게... 사라진다는 게..." "괜찮아."
도시락통이 위로했다.
"나도 무서워. 30년을 살았는데, 이제 녹아서 없어진다니. 근데 말이야."
도시락통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트럭 덮개 틈새로 석양이 보였다.
"이미 충분히 살았어. 30년 동안 매일 밥을 담았고, 주인을 배불렀고, 추억이 됐어. 그걸로 충분해. 이제는 다른 형태로 살아볼 시간이지."
"다른 형태로..." "응. 어쩌면 나는 예쁜 커피캔이 될 수도 있고, 튼튼한 맥주캔이 될 수도 있어. 30년 된 낡은 도시락통이 아니라, 새로운 뭔가로."
"그럼... 할아버지는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되는 거네요.""그렇지. 형태만 바뀌는 거야."
콜라캔이 웃었다.
"그럼 전 다음 생엔 뭐가 될까요?" "모르지. 근데 뭐가 되든, 너는 여전히 알루미늄이야. 빨갛고 반짝거리는." "좋다! 전 다음 생에도 예쁘게 태어날 거예요!"
모두가 웃었다. 긴장이 조금 풀렸다. 트럭이 멈췄다. 적재함 문이 열렸다.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우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을 봤다. 거대한 공장이 보였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 안에 용광로가 있을 것이다.
"자, 내려."
작업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적재함이 기울어졌다. 우리는 모두 쏟아져 나왔다. 도시락통, 맥주캔, 콜라캔, 그리고 나. 수백 개의 캔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로 떨어졌다.
"잘 가, 젊은이."
도시락통이 말했다.
"다음 생에 또 봐." "다음 생에요?" "응. 어쩌면 너랑 나는 같은 제품이 될지도 몰라. 그럼 형제네." "형제... 좋네요."
나는 웃었다.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용광로를 향해.
"근데 말이야."
맥주캔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인생은 한 번 찌그러지면 끝이라고들 하잖아. 근데 우리는 아니야. 찌그러져도, 녹슬어도, 다시 녹여서 새로 만들 수 있어. 인간들은 그게 안 되는데, 우리는 돼."
"그렇네요." "그러니까 찌그러지는 거 너무 두려워하지 마. 그게 끝은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을 봤다. 용광로의 붉은 빛이 보였다. 무서웠다. 하지만 동시에 기대됐다. 나는 무엇이 될까.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까. 그리고 누구를 만날까.
"다음 생에 봐요, 여러분."
내가 말했다.
"응, 다음 생에 봐."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끝을 향해.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우리는 상처를 두려워합니다. 찌그러지는 것을, 망가지는 것을, 늙어가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30년 된 도시락통처럼 녹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자신을 부끄러워하죠. 하지만 빈 깡통이 트럭에서 만난 선배들은 가르쳐줍니다. 찌그러짐은 살아온 증거라는 것을. 상처는 이야기라는 것을. 여러분의 주름, 실패의 기억, 후회의 흔적들. 그것은 여러분이 열심히 살았다는 훈장입니다. 완벽하게 반짝이는 새 제품은 아름답지만 이야기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새것이 아니어도 됩니다. 찌그러졌어도, 녹슬었어도, 여러분은 여전히 가치 있습니다. 그리고 끝이 두렵다면 기억하세요. 새로운 시작이라는것을...,
다음 화 예고: 제5화 '용광로 앞 깨달음 - 완전한 비움' - 녹는다는 것은 죽음인가, 재탄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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