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청소부의 빗자루 왈츠 (The Janitor's Broom Waltz)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심판관이 나타났다.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를 한곳으로 쓸어 담았다."
비 개인 아침 햇살은 야속할 정도로 눈부셨다. 지난밤의 사투 덕분에 우리 셋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로열 레드'였던 내 붉은 몸체는 흙투성이가 되어 '빈티지 브라운'이 되어버렸고, 깔끔쟁이 '은행잎'의 노란 잎맥 사이사이엔 모래가 끼어 있었다.
"어허... 삭신이야. 어제 그 물난리 통에 허리를 삐끗한 것 같아." '갈잎'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그는 화단 턱에 걸터앉아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남았잖아. 이 햇살을 보라고. '광합성'은 못 해도 일광욕은 공짜야." '은행잎'이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로 대꾸했지만, 그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어젯밤 우리를 구해준 '화단파' 녀석들은 아침 이슬을 머금고 꽤나 싱그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 당신들. 운이 좋았어. 어제 같은 비에는 십중팔구 하수구행인데 말이야." 화단파의 우두머리 격인 펑퍼짐한 목련 잎이 거드름을 피웠다.
우리가 서로 감사의 인사를 나누며 잠시 평화를 만끽하던 그때였다. 저 멀리서, 규칙적이고도 섬뜩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쓱- 싹. 쓱- 싹.
그것은 바람 소리도, 빗소리도 아니었다. 마치 거친 짐승이 마른땅을 긁어대는 듯한 소리.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저... 저게 무슨 소리지?" 내가 불안하게 물었다. 그러자 화단파 목련 잎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왔다... '그'가 왔어!" "'그'라니?" "이 구역의 지배자! '형광 조끼의 거인'!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파괴자!"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골목 어귀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형광 연두색 조끼를 입은 거인. 그의 손에는 전설의 무기, '대나무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젠장! '청소부'다! 다들 튀어!" '갈'이 소리쳤다. 하지만 어디로 튄단 말인가? 다리는 없고, 날개도 잃어버린 우리에게 도망칠 곳은 없었다.
거인은 무자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너무나 '성실'했다. 그는 마치 왈츠를 추듯 리듬을 타며 빗자루를 휘둘렀다.
쓱- 싹. (원 투) 쓱- 싹. (차 차 차)
그의 빗자루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담배꽁초, 과자 봉지, 그리고 우리의 동료들까지. 모든 것이 평등하게 빗자루의 춤사위에 휘말려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모여들었다.
"으악! 안 돼!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은행잎'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거친 대나무 가지가 그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그는 빙글빙글 돌며 빗자루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이거 놔! 난 참나무라고! 무겁단 말이야!" '갈잎'이 바닥의 돌 틈을 붙잡고 버텼지만, 거인의 손목 스냅 한 번에 그는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그리고 내 차례였다. 거대한 빗자루가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촤르륵-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어제 바람에 날릴 때와는 달랐다. 이것은 강제 집행이었다. 나는 수많은 낯선 낙엽들, 그리고 정체 모를 쓰레기들과 뒤엉켜 어딘가로 굴러떨어졌다.
"아이고... 허리야."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길가에 모아진 거대한 낙엽 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다. 옆에는 반쯤 피우다 만 꽁초가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그 옆에는 꼬깃꼬깃한 영수증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길... 로열 레드의 체면이 말이 아니군. 꽁초 따위와 합방이라니." 내가 투덜거렸다.
"조용히 해, 단풍.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쓰레기 더미 구석에서 '은행잎'이 흙투성이가 된 채 속삭였다.
거인은 잠시 땀을 닦더니, 허리춤에서 무시무시한 것을 꺼내 들었다. 새하얗고, 펄럭이며,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어둠을 품은 그것. 바로 '종량제 봉투'였다.
거인은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받기'로 우리를 한움큼씩 퍼 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올라간다! 올라간다!" 우리는 거대한 롤러코스터를 탄 듯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투둑. 바스락.
우리는 하얀 감옥 속으로 던져졌다. 봉투 안은 생각보다 아늑했지만, 숨이 막힐 듯 답답했다. 사방이 막혀 있었고, 밖에서 들어오는 빛은 반투명한 비닐을 통해 흐릿하게만 보였다.
"끝났군... 이제 진짜 끝이야." '갈'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사실 잎자루가 꺾인 것이지만).
봉투 안에는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아까 거드름을 피우던 '화단파' 목련 잎도, 어제 우리를 비웃던 보도블록파 녀석들도 모두 이곳에 있었다. '스카이 캐슬' 출신이든, 바닥 출신이든, 붉은색이든 노란색이든, 이곳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그저 '50리터짜리 폐기물'일 뿐이었다.
"허... 참 공평하구먼." '은행잎'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늘에 있을 땐 서로 햇볕 좀 더 받겠다고 아귀다툼을 했는데, 결국 종착역은 다 똑같은 봉투 속이라니."
거인의 거친 손길이 봉투의 입구를 단단히 묶었다. 마지막 한 줄기 빛이 사라지고, 봉투 안에는 어둠과 적막, 그리고 서로의 바스락거리는 숨소리만이 남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옆에 있는 누군가의 잎사귀를 잡았다. 그것이 '은행잎'인지 '갈잎'인지, 아니면 냄새나는 꽁초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온기가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소각장? 매립지? 확실한 건, 이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의 생각!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로의 다름을 비교하고, 높낮이를 재며 경쟁합니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거대한 빗자루 앞에서는 그 모든 계급장과 자존심이 무의미해지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가는 존재들이 아닐까요? 꽉 묶인 봉투 속처럼 답답한 현실일지라도, 옆에 있는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면 그 어둠도 견딜 만할지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와 함께 '봉투' 속에 담겨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