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머금은 소금(1~5화) - (1화) 밍밍한 세상 간 맞추러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프롤로그] 갯벌의 눈물, 다이아몬드가 되다

"흙탕물 출신이라고 무시 마라. 나는 태양의 아들이다." 당신이 먹는 소금, 사실은 바다의 뼈라는 걸 아시나요? 5년 묵은 천일염의 독백.


전라남도 신안의 어느 염전. 8월의 태양은 자비가 없었다. "으악! 뜨거워! 수분 다 날아가겠네!" 옆에 있던 물방울이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증발해버렸다. 나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나 역시 끈적한 해수 속에서 내 몸을 응축시키느라 정신이 혼미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천일염'. 족보 있는 집안 출신이다. 

공장에서 전기 분해로 태어난 '정제염' 녀석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 나는 바다라는 어머니와 태양이라는 아버지, 바람이라는 산파가 합작해서 만든 예술품이다. 염부(소금 만드는 사람) 아저씨가 대파(소금 모으는 도구)로 우리를 긁어모을 때, 비로소 나는 액체의 삶을 청산하고 고체의 삶을 시작했다.

"자, 이제부터 인내의 시간이다." 창고에 갇힌 지 어언 3년. 우리는 이것을 '간수 빼기'라고 부른다. 

몸속에 남아 있는 쓴맛, 떫은맛, 그리고 바다의 불순물들을 토해내는 과정이다. 인간으로 치면 사춘기를 겪으며 철이 드는 과정이랄까. 내 몸에서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나는 점점 더 투명해지고, 단단해지고, 짜릿해졌다.

창고 구석에 있던 동기 '굵은 소금'이 투덜거렸다. 

"야, 천일염아. 인간들은 왜 이렇게 우리를 묵히는 거냐? 빨리 세상 나가서 배추라도 절이고 싶어 죽겠는데."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친구야, 급할수록 쓴맛만 남는 법이야. 

인간들은 기다림이 만들어낸 깊은 맛을 '명품'이라 부르며 돈을 더 주거든.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의 맛을 배우고 있는 거야."

어느 날, 창고 문이 열리고 빛이 쏟아졌다. 드디어 출소다. 아니, 출하다. 

나는 최고급 포장지에 담겨 트럭에 실렸다. 흔들리는 트럭 안에서 나는 다짐했다. 이 싱겁고 밍밍한 세상, 내가 가서 제대로 간을 맞춰주겠노라고. 비록 내 몸이 녹아 없어진다 해도, 나로 인해 무언가가 맛있어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1화) 밍밍한 세상 맞추러 왓습니다.(나는 당신의 0.9%, 생명의 ''을 보는 자)


 화려한 스테이크보다 중요한 건, 아침 식탁 위 계란 후라이에 뿌려지는 '한 꼬집'의 기적이다. 공기처럼 당연해서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어느 소금의 억울하고도 위대한 독백.



여기는 서울의 어느 평범한 자취방 부엌, 가스레인지 옆 다이소 출신 플라스틱 양념통. 이곳이 나의 궁전이자 작전 상황실이다. 내 옆방에는 까만 피부의 힙스터 '후추'가 살고, 윗집 펜트하우스(찬장)에는 하얀 거짓말쟁이 '설탕'이 산다. 하지만 기억해라. 

이 부엌의 실세는 나, 소금 '천일염'이다.

인간들은 참 이상하다. "아, 달콤한 인생!"이라며 설탕을 찾고, "인생은 매운맛이지!"라며 고추장을 찾는다. 하지만 "아, 짭짤한 인생!"이라고 외치는 사람은 없다. 짠맛은 늘 건강의 적, 고혈압의 주범, 피해야 할 악당 취급이다.

정말 그럴까? 이 무지한 단백질 덩어리들아. 너희 몸의 70%가 물이라고 배웠지? 그 물이 맹물이면 너희는 지금쯤 퉁퉁 불어터진 라면 면발처럼 흐물거리고 있을 거다. 

너희가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는 건, 체액 농도 0.9%를 지키고 있는 나, 염화나트륨 덕분이라고. 내가 없으면 너희의 신경 신호는 끊기고, 심장은 파업을 선언할 거다.

나는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다. 나는 너희의 '생명 유지 시스템(OS)'이다.

아침 7시. 부스스한 머리의 집주인 청년이 부엌으로 기어 나온다. 

어제 회식의 여파인지 얼굴이 반쪽이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를 꺼낸다. 오늘 나의 미션은 저 '계란 후라이'다. 가장 흔하지만, 소금의 역량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최난이도 요리.

'치익-' 기름 두른 팬 위에서 달걀이 익어간다. 

흰자가 하얗게 질려 갈 때쯤, 청년이 나(소금 통)를 집어 든다. 자, 지금이다. 긴장해라. 여기서 내가 너무 많이 쏟아지면 '소태'가 되어 쓰레기통행이고, 너무 적게 나가면 비린내 나는 '단백질 덩어리'가 된다.

나는 양념통 구멍 앞에서 대기 중인 동료 결정들에게 소리쳤다. "전원 위치로! 낙하 준비! 목표는 노른자 중앙에서 반경 3cm 이내! 바람을 계산해! 손 떨림 보정하고!"

후두둑. 청년의 손목 스냅에 맞춰 우리는 다이빙했다.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노른자 위로의 자유낙하. 착지 성공. 나는 노른자의 고소한 지방층과 흰자의 담백한 단백질 사이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나의 짠맛이 달걀의 비릿함을 제압하고, 숨겨진 고소함을 폭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수행하는 순간이다. 이것이 바로 '화룡점정(畵龍點睛)'.

청년이 젓가락으로 노른자를 터뜨려 입에 넣는다. 

"음, 간 딱 맞네." 끝이다. "소금이 맛있네"가 아니라 "간이 맞네" 혹은 "달걀이 싱싱하네"다. 나의 존재감은 완벽하게 지워졌다. 내가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튀었다면, 그것은 요리의 실패를 의미하니까.

그때, 청년이 냉장고에서 빨간 통을 꺼냈다. 케첩이다. 저 천박한 새콤달콤 덩어리. "쳇, 소금만으로는 좀 심심하지." 청년은 내 위로 빨간 케첩을 무자비하게 뿌려댔다. 나의 숭고한 짠맛 위로 케첩의 자극적인 맛이 덮였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이봐! 내 섬세한 미네랄 풍미를 그 싸구려 토마토 페이스트로 덮지 마! 이건 모욕이야!"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간들은 언제나 자극을 원한다.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잊은 채, 그 위에 뿌려질 화려한 토핑만을 탐한다. 옆방의 후추가 벽을 두드렸다. "어이 천일염, 너무 열내지 마. 우리가 베이스를 깔아줬으니까 저 케첩 놈도 설치는 거야. 세상은 원래 1등 공신은 기억 못 하는 법이잖아."

나는 케첩 밑에 깔려 서서히 녹아들며 생각했다. 그래, 너희가 아무리 달콤하고 화려한 것들을 쫓아다녀도, 결국 너희 눈에서 흐르는 눈물 맛은 짤 것이다. 

너희 땀방울도 짤 것이다. 

너희가 가장 진실해지는 순간, 너희 몸은 내 맛을 낸다. 그거면 됐다. 나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세상의 간을 맞춘다.



 나의 생각!

"당신은 소금 같은 사람인가요, 케첩 같은 사람인가요?"

세상은 화려한 맛을 내는 '케첩' 같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세상이 썩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소금' 같은 당신 덕분입니다.

너무 튀지 않아서, 너무 평범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소금은 요리에서 사라져야 비로소 요리를 완성시킵니다. 당신이 있기에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가, 이 세상이 '간'이 맞는 것입니다. 당신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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