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달린 엄마표 벙어리 털장갑(1~5화) - (2화) 흉터가 아니라 무늬란다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2화) 기워 입은 사랑 (흉터가 아니라 무늬란다)



"내 몸에 파란색 살점이 이식되었다. 주인은 창피하다고 울었지만, 나는 알았다. 이 투박한 땜질이야말로 엄마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질긴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영광의 상처, 혹은 비극의 시작 - 사단은 그날 오후에 났다.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지던 날이었다. 학교 뒷산 비탈길은 동네 꼬마들의 천연 눈썰매장이었다. 물론 번듯한 플라스틱 썰매 같은 건 없었다. 최고의 장비는 바로 쌀 포대나,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주워 온 질긴 '비료 포대'였다.

"비켜라! 김철수 나가신다!"

내 주인 철수는 비료 포대 안에 짚단을 두둑이 넣고 그 위에 올라탔다. 나는 철수의 손을 감싼 채 포대 자루의 양 끝을 생명줄처럼 움켜쥐었다. 

‘철수야, 꽉 잡아! 놓치면 우린 끝장이야!’

슈우웅-!

비료 포대는 총알처럼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차가운 눈보라가 내 붉은 털실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짜릿했다. 내 몸의 털들이 곤두서며 철수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과 뜨거운 열기를 만끽했다.

문제는 브레이크였다. 속도 조절에 실패한 철수가 돌부리를 피하려다 균형을 잃었다. 철수는 본능적으로 땅을 짚어 속도를 줄이려 했다. 하필이면 나(오른손)였다.

지이익-! 투둑!

거친 얼음 바닥과 내 엄지 부분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끔찍한 마찰음이 들렸다. 엄마가 밤새 떴던 털실 조직이 비명을 질렀다. 올이 튀고, 실이 끊어졌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밀려왔다.

"아싸! 1등이다!"

철수는 신나서 환호성을 질렀지만, 나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철수가 손을 털며 일어났을 때, 나는 내 몸에 생긴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했다. 나의 가장 큰 자랑이자 콤플렉스였던 거대한 엄지 부분에, 십 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뻥 뚫려버린 것이다.

그 구멍 사이로 철수의 벌건 엄지손가락 살이 적나라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터진 김밥 옆구리로 튀어나온 단무지처럼.

"어? 뭐야, 구멍 났잖아!" 철수가 울상을 지었다. 


찬 바람이 구멍으로 숭숭 들어왔다. 나는 철수의 손가락이 시릴까 봐 남은 털실을 최대한 부풀려 구멍 주위를 감쌌지만 역부족이었다.

집에 돌아온 철수는 현관 들어서기가 무섭게 투정을 부렸다.

"엄마! 장갑 다 터졌어! 애들이 거지 같다고 놀린단 말이야. 새 거 사줘, 나이키로!"

부엌에서 연탄 불을 갈던 엄마가 부지깽이를 든 채 뛰어나왔다. 엄마의 눈이 내 엄지에 난 구멍을 스캔했다. 순간 엄마의 미간에 깊은 내 천(川) 자가 그려졌다.

"아이고, 이 화상아! 내가 못 살아. 이게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구멍을 내? 네 손은 갈퀴냐?"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작렬했다. 철수는 억울하다는 듯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그런 거 아니야! 넘어져서 그런 거라고! 아, 몰라. 창피해서 안 껴. 새 거 사내!"

"시끄러! 돈이 썩어나냐? 이리 내놔!"

엄마는 철수의 손목에서 나와 왼손이를 거칠게 벗겨냈다. 우리는 다시 그 어두컴컴한 단칸방의 아랫목으로 소환되었다. 엄마는 장롱 깊숙한 곳에서 반짇고리를 꺼냈다. '긴급 수술'이 시작될 참이었다.

나는 긴장했다. 과연 엄마에게 나랑 똑같은 색깔의 붉은색 털실이 남아 있을까? 그게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엄마는 반짇고리를 뒤적이다가, 짧게 혀를 찼다. "쯧, 빨간색이 다 떨어졌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엄마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아버지 양말을 기워주고 남은 '국방색 털실' 뭉치였다. 빨간색과 국방색이라니. 이건 패션 테러를 넘어선, 시각적 폭력이었다.

‘엄마... 설마 그걸로... 아니죠?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요!’

나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돗바늘에 국방색 실을 꿰었다. 그리고 돋보기를 고쳐 쓰고는 내 상처 부위(구멍)를 노려보았다.

푹!

차가운 바늘이 구멍 난 내 살갗 주변을 뚫고 들어왔다. 엄마는 '감침질'과 '직조' 기술을 섞어가며 구멍을 메우기 시작했다. 빨간색 털실 위에 이질적인 국방색 실이 얼기설기 엮였다. 마치 내 붉은 피부 위에 전혀 다른 인종의 살점을 이식하는 기분이었다.

엄마의 바느질은 투박했다. 예쁘게 기우는 건 사치였다. 그저 찬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막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바늘이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내 몸은 당겨지고 조여졌다.

한참의 수술 끝에, 엄마는 실 끝을 이빨로 끊어냈다. "자, 됐다. 아주 튼튼하네."

나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참담했다. 새빨간 벙어리장갑의 엄지손가락 부분에만 시퍼런 멍 자국처럼, 아니면 거머리가 달라붙은 것처럼 국방색 털실 뭉치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이제 '그냥 못난이'에서 '프랑켄슈타인 장갑'으로 진화했다.

다음 날 아침, 철수는 내 꼬라지를 보고 경악했다.

"악! 이게 뭐야! 더 이상해졌잖아! 나 이거 절대 안 껴!" 철수는 장갑을 방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줄에 묶인 나와 왼손이가 바닥을 뒹굴었다.

엄마가 무서운 얼굴로 다가와 철수의 꿀밤을 먹였다. "이 녀석이 배가 불렀네. 없는 살림에 기워 입는 게 당연하지, 뭐가 창피해?"

"애들이 똥 묻은 거 같다고 그럴 거란 말이야!"

철수의 반항에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엄마의 거친 손이 내 엄지 부분의 국방색 땜빵 자국을 쓰다듬었다. 까슬까슬한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철수야. 이거 흉터 아니야." "그럼 뭔데?" "이건... 무늬야. 우리 식구 열심히 살았다는 무늬."

엄마는 나를 집어 들어 철수의 언 손에 강제로 끼웠다. "그리고 만져봐라. 기운 데가 더 도톰하니 따뜻하지? 원래 상처 난 자리에 새살이 돋으면 더 단단해지는 법이야. 너도 나가서 기죽지 말고 이 장갑처럼 단단하게 살아. 알았어?"

철수는 입이 댓 발 나왔지만, 엄마의 기세에 눌려 결국 나를 끼고 집을 나섰다. 밖은 여전히 영하의 강추위였다.

철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다 말고,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빨간색 바탕에 선명한 국방색 엄지. 누가 봐도 가난의 증거였다. 철수는 부끄러운 듯 손을 등 뒤로 감췄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덧대어준 그 투박한 국방색 실 뭉치가, 다른 어떤 부위보다 훨씬 더 두껍고 따뜻하다는 것을. 찬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그 땜빵 자국만큼은 절대 뚫리지 않았다.

그것은 엄마가 밤새 바늘로 꾹꾹 눌러 담은 사랑의 두께였다. 

비록 색깔은 맞지 않고 모양새는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날 철수의 언 손을 가장 뜨겁게 감싸 안은 것은 바로 그 '흉측한 무늬'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덧대어주며 그 겨울을 건너고 있었다.



나의 생각!

"당신의 마음에도 기워 입은 자국이 있나요?"

요즘은 물건이 조금만 해져도 쉽게 버리고 새것을 삽니다. '수선'보다는 '교체'가 익숙한 시대죠. 하지만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은 구멍 난 양말, 해진 무릎팍을 그냥 버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색깔이 맞지 않는 실로라도 덧대고 기워서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죠.

어쩌면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요? 상처받고 구멍 난 마음에, 완벽한 새살이 돋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서로의 온기로 그 구멍을 덧대어주는 것.

기워 입은 자리는 처음보다 더 두껍고 단단해집니다. 당신이 가진 마음의 흉터도, 누군가의 사랑으로 덧대어져 더 단단한 '삶의 무늬'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음 화 예고] "야, 너네 집 쫄딱 망했다며?" 철수의 아버지가 하시던 작은 사업이 결국 부도를 맞고 맙니다. 집안에는 빨간 딱지가 붙고, 철수의 가족은 야반도주하듯 더 작은 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한 철수 가족과, 그 곁을 지키는 누더기 장갑 형제의 이야기. 제3화 <빨간 딱지와 빨간 장갑: 가장 추운 밤의 온기>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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