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달린 엄마표 벙어리 털장갑(1~5화) - (3화) 가장 추운 밤의 온기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3화) 빨간 딱지와 빨간 장갑(가장 추운 밤의 온기)

"우리 집에는 두 가지 종류의 '빨강'이 있었다. 하나는 엄마가 떠준 나(장갑)였고, 다른 하나는 낯선 아저씨들이 붙이고 간 '압류 딱지'였다. 두 번째 빨강이 나타난 순간, 우리의 겨울은 진짜 시작되었다."

 

그날은 유난히 집안 공기가 무거웠다. 아버지는 며칠째 귀가하지 않으셨고, 엄마는 연탄 가스를 마신 사람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엌만 서성였다.

쿵, 쿵, 쿵.

예고 없는 방문객들이 들이닥쳤다. 검은 잠바를 입은 낯선 사내 세 명이었다. 그들은 신성한 우리 집 안방에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왔다. 흙 묻은 군홧발이 엄마가 매일 쓸고 닦는 노란 장판을 짓이겼다.

나는 철수가 벗어둔 잠바 소매 끝에 매달려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방구석에 웅크린 철수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끈으로 연결된 나(오른이)와 왼손이도 덩달아 달달 떨렸다.

"김 씨! 있는 거 다 알아. 나와!"

사내들은 거칠게 장롱 문을 열어젖히고, 이불을 발로 찼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새빨간 종이딱지였다.

척. 척. 척.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들은 마치 저승사자의 부적처럼 집안의 모든 살림살이에 그 붉은색 네모를 붙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해왔다는 자개장롱 한가운데에도, 온 가족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금성사 흑백 텔레비전 브라운관 위에도, 심지어 부엌에 있는 쌀통과 낡은 냉장고 문짝에도 그 붉은 낙인이 찍혔다.

"어... 엄마, 저 아저씨들이 왜 우리 테레비에 스티커 붙여? 저거 선물이야?"

철수가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물었다. 엄마는 철수의 눈을 가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철수의 소매에 매달린 우리의 줄도 처량하게 흔들렸다.

나는 내 몸의 색깔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빨간색인데. 엄마가 철수 손 시리지 말라고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떠준 따뜻한 빨간색인데. 저들이 붙이고 간 저 빨간 종이는 왜 저토록 차갑고 무서운 기운을 뿜어내는 걸까.

같은 붉은색이었지만, 그것은 명백히 다른 온도였다. 하나는 생명을 지키는 불씨였고, 다른 하나는 삶을 태워버리는 화마(火魔)였다.

사내들이 돌아가고 난 뒤, 아버지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셨다. "여보... 미안하오. 짐 쌉시다."

그날 밤, 우리는 '야반도주'를 했다. 동네 사람들 눈을 피해 달빛조차 없는 캄캄한 새벽을 틈타 이삿짐을 날랐다. 이삿짐센터 트럭?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아버지의 지게와 엄마의 머리에 인 보따리, 그리고 철수의 양손에 들린 작은 보따리가 전부였다.

밖은 영하 15도. 그해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밤이었다. 철수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나와 왼손이를 손에 끼지도 못했다. 우리는 철수의 낡은 파란색 잠바 소매 밖으로 길게 늘어진 채, 찬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덜렁거렸다.

추워... 너무 추워, 형.’ 왼손이가 덜덜 떨며 내게 신호를 보냈다. ‘참아. 지금 주인이 더 추워. 마음이 얼어버렸다고.’

철수는 울먹이며 걸었다. 철수의 걸음이 빨라질 때마다 우리는 시계추처럼 격렬하게 흔들리며 철수의 허벅지를 때렸다. 끈이 꼬여 서로 부딪히기도 했다. 내 엄지 부분에 덧대진 초록색 땜빵 자국이 욱신거렸다.

앞서가던 아버지의 등이 휘청거렸다. 산동네 비탈길은 빙판이었다. 아버지가 미끄러질 뻔하자, 엄마가 황급히 아버지의 지게를 받쳤다. "조심해요. 당신 다치면 우리 다 죽어요."

엄마의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그 속에 담긴 절박함이 칼바람보다 더 날카롭게 내 털실 조직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그 밤, 가장 무거운 침묵을 지고 언덕을 넘었다.

새로 이사한 곳은 산동네 꼭대기에 있는, 창고를 개조한 듯한 단칸방이었다. 문풍지도 제대로 없는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방바닥은 냉골이었다. 입김이 하얗게 서렸다.

짐을 풀 기력도 없이 네 식구는 아랫목(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연탄불 기운이 겨우 닿는 곳)에 모여 앉았다. 얇은 이불 하나를 네 명이서 뒤집어썼다.

아버지가 구석에 앉아 마른세수를 하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 못났다... 내가 못나서 처자식을 이 고생을 시키고..." 가장의 무너진 어깨가 들썩였다. 그 강인했던 아버지가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그때였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철수가 주섬주섬 잠바 소매 끝에 매달린 우리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언 손에 나(오른이)와 왼손이를 끼웠다.

철수는 우리를 낀, 투박하고 거대한 손을 들어 아버지의 얼굴로 가져갔다. 차가운 눈물로 얼룩진 아버지의 뺨에 털장갑이 닿았다.

"아빠... 울지 마. 내가 안아줄게."

나는 내 안의 모든 공기층을 부풀려 열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엄마가 초록색 실로 두툼하게 기워주신 내 엄지손가락 부분. 흉하다고 놀림받았던 그 두꺼운 땜질 자국이 아버지의 가장 차가운 눈물 자국을 덮었다.

기워진 자리는 두꺼웠다. 두꺼운 만큼 더 많은 온기를 품고 있었다. 나의 거칠고 투박한 털실이 아버지의 언 뺨을 비볐다. 왼손이도 아버지의 반대쪽 뺨을 감쌌다.

줄로 연결된 우리는 철수의 작은 품을 통해 아버지와 엄마를 하나로 묶었다. 빨간 딱지가 붙은 가구들은 다 두고 왔지만, 빨간 장갑으로 이어진 이 온기만큼은 압류당하지 않았다.

냉골 바닥에서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잠이 들던 그 밤. 

나는 비로소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것은 보일러가 아니라,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끌어안는 사람의 체온이라는 것을. 그날 밤 우리는 비로소 진짜 '한 덩어리'가 되었다.



나의 생각!

"당신의 삶에도 '빨간 딱지'가 붙었던 순간이 있나요?"

그 차가운 절망의 색깔 옆에는 늘, 어머니가 떠준 털장갑 같은 따뜻한 '빨강'이 있었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긴 가장 추운 밤, 마지막까지 우리를 지탱해 준 것은 결국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족의 투박한 사랑이었습니다.

지금 혹시 인생의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계신가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빨간 딱지 옆에, 당신의 언 손을 잡아줄 투박한 빨간 장갑이 반드시 놓여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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