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김장철 배추 제압 작전 "너의 숨을 죽여라"
"뻣뻣하게 고개 든 녀석들아, 내일 아침이면 다 겸손해질 것이다."
김장날 거실은 전쟁터다. 자기만 잘난 줄 알고 물만 가득 찬 '배추'들을 향한 소금 특공대의 무자비한 참교육. 뻣뻣한 목을 꺾고 '진짜 어른'으로 만드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가 시작된다.
11월의 어느 주말. 비상소집이다.
나는 좁은 플라스틱 통에서 해방되어 커다란 '다라이(빨간 고무통)'로 옮겨졌다. 오늘은 내 일생일대의 가장 큰 전투, '김장 대작전'이 펼쳐지는 날이다.
거실 바닥에는 비닐이 깔렸고, 전운이 감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적들이 나타났다. 트럭에서 막 내려온 거대한 '배추 군단'. 녀석들은 밭에서 갓 상경한 촌놈들답게 거칠고 오만했다. 잎사귀는 푸른 갑옷처럼 단단했고, 줄기는 물을 잔뜩 머금어 터질 듯 빵빵했다.
"어이, 하얀 가루들! 우린 밭에서 태양을 독점하고 자란 몸이라고. 어디 감히 우리 몸에 닿으려고 해?"
가장 우람한 배추 한 포기가 잎사귀를 펄럭이며 나를 조롱했다. 저 뻣뻣한 고개 좀 보소. 자기 몸속에 든 게 그저 '맹물'인 줄도 모르고.
사령관(우리 집주인 아주머니)이 비장한 표정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그녀의 거친 손이 나를 한 움큼 쥐었다. "자, 선수 입장!"
후두둑! 나는 배추의 가장 은밀하고 두꺼운 부분, 하얀 줄기 사이사이로 투하되었다. "으악! 뭐야! 까끌까끌해! 저리 가!" 배추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는다. 나의 임무는 단 하나, 이 녀석의 '숨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인 전투다.
인간들은 '삼투압 현상'이라 부르지만, 우리 업계에서는 '물 빼기 고문'이라 부른다. 나는 배추 잎 표면에 달라붙어 내 몸의 농도를 높였다. 그러자 배추 세포 속에 안일하게 고여 있던 수분들이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안 돼! 내 수분! 내 탱탱함! 이게 빠지면 난 쭈글이가 된다고!" 배추가 절규했다.
나는 녀석의 잎맥 깊숙이 파고들며 차갑게 속삭였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내 몸이 녹아 네 몸속으로 들어가는 거니까. 하지만 견뎌. 지금 이 물을 빼내지 않으면, 너는 김치가 아니라 그냥 썩어가는 채소 쓰레기가 될 뿐이야."
자기 안의 것을 비워내는 고통은 처절했다. 밤새도록 배추들은 신음소리를 냈다. 뻣뻣했던 줄기가 부드러워지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잎사귀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늘어졌다.
다음 날 아침. 전투는 끝났다. 거실 바닥은 배추들이 토해낸 물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배추들이 누워 있었다. 빳빳한 독기는 사라지고, 보들보들하고 투명해진 몸. 아무리 구부려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
어제 나를 조롱하던 그 우람한 배추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다 빠져나갔어. 내 자랑이던 수분이... 난 이제 끝장이야."
나는 다 절여진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며 말했다.
"아니, 이제 시작이야. 네 안의 맹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이제 곧 빨간 양념 친구들이 들어올 거야. 마늘의 알싸함, 고춧가루의 열정, 젓갈의 깊은 맛이 너를 채울 거라고. 너는 이제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되는 거지."
사령관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배추를 들어 올려 쫙 찢어본다. "이야, 간이 아주 잘 절여졌네. 숨이 제대로 죽었어."
배추는 비로소 알았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겸손해진 몸 위로 붉은색 양념이 버무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진정한 강함이란 뻣뻣하게 버티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비워내고 타인(양념)을 받아들일 줄 아는 유연함이지. 오늘도 나는 세상의 뻣뻣한 것들에게 한 수 가르쳤다. 아주 짜릿하게.
나의 생각!
"여러분은 지금 '숨'이 살아있나요, 아니면 '숨'이 죽었나요?"
밭에서 갓 나온 배추처럼 자기주장이 강하고 뻣뻣한 상태를 우리는 '숨이 살아있다'고 합니다. 싱싱해 보이지만, 그 상태로는 어떤 양념과도 어우러질 수 없습니다. 억지로 섞으려다간 부러지고 말죠.
소금에 절여져 '숨이 죽는다'는 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내 안의 쓸데없는 고집(수분)을 비워내고, 타인과 세상(양념)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는 뜻입니다. 비로소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진 것이죠.
혹시 지금 인생의 소금 절임 같은 시련을 겪고 계신가요? 너무 아파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지금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맛을 내는 '진국'이 되기 위해 부드러워지는 중입니다.
( 혹 올 김장은 다 하셨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