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머금은 소금(1~5화) - (마지막 5화) 태양의 품으로"짠내 나는 귀환"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마지막 5화)다시, 태양의 품으로"짠내 나는 귀환"


"인간의 몸속 여행, 꽤나 스펙터클했어. 이제 체크아웃할 시간이야."

 


뜨거운 매운탕 국물과 함께 집주인의 목구멍으로 넘어온 지 서너 시간쯤 지났을까. 나는 더 이상 하얀 결정체가 아니다. 나는 이제 인간의 핏줄이라는 고속도로를 타고 흐르는 '전해질(Electrolyte) 전사'다.

이곳은 정신없이 바쁜 거대한 공장이다. 나는 혈관을 타고 돌며 나태해진 신경세포들을 전기 충격으로 깨웠다. "어이, 근육! 주인 녀석이 지금 걷고 있잖아! 다리에 힘 딱 줘! 심장! 너 템포가 너무 느려, 좀 더 빨리 뛰어!" 내가 없으면 이 거대한 단백질 기계(인간)는 작동을 멈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들의 생명을 조율하는 지휘자다. 꽤나 뿌듯한걸.

그때였다. 집주인이 갑자기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밖으로 나갔다. 

"아, 매운탕 너무 많이 먹었나. 뛰어서 소화 좀 시켜야지." 그가 한강 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해댔고, 체온이 급격히 올라갔다.

'비상! 비상! 체온 상승! 냉각 시스템 가동!' 뇌에서 긴급 명령이 떨어졌다. 피부 표면에 있는 수백만 개의 비상탈출구, 일명 '모공(땀구멍)'이 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나는 혈액 속에 섞여 있던 수분들과 함께 탈출구로 향했다. 엄청난 압력이 우리를 밀어 올렸다. 이것은 마치 워터파크의 튜브 슬라이드보다 더 짜릿한 역주행이다.

'뽁!'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나는 집주인의 이마 한가운데로 솟아올랐다. 인간들은 나를 '땀'이라 부른다. 나는 다시 액체가 되어 그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짭짤한 나의 본성이 공기와 만나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집주인이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땀을 맛봤다. "퉤, 짜다, 짜. 오늘 땀 엄청 흘리네." 멍청한 녀석. 그 짠맛이 바로 내가 네 몸속에서 치열하게 일했다는 증거야. 네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맛이라고.

그는 벤치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낮의 태양이 그의 젖은 피부를 강렬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아, 그리운 느낌. 나를 갯벌에서 하얀 결정으로 만들어주었던 바로 그 태양 아버지의 손길이다.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수분이 증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가벼워졌다. 액체에서 기체로. 중력을 거스르는 황홀한 부양감이 나를 감쌌다. 나는 투명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떠올랐다.

발아래로 열심히 땀을 닦는 집주인이 개미처럼 작아 보였다. "안녕, 인간. 네 몸속 여행은 꽤 즐거웠어. 며칠 동안 내 짠맛 덕분에 활기찼지?"


나는 하늘 높이 올라가 먼저 와 있던 구름 친구들과 합류했다.

 "야, 천일염! 오랜만이다! 지상 생활 어땠냐?" "말도 마. 설탕 그 느끼한 놈이랑 싸우고, 뜨거운 탕에 들어가고... 난리도 아니었어."

우리는 낄낄거리며 바람을 타고 바다 쪽으로 흘러갔다. 저 멀리 나의 고향, 푸른 바다가 보인다. 나는 곧 비가 되어 저 바다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뜨거운 태양을 만나 소금이 되겠지.

돌고 도는 삶. 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모습만 바뀔 뿐. 나의 짠맛은 영원하다.




나의 생각! 

"당신은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가요?"

소금은 물에 녹아 형체를 잃지만,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바닷물이 되었다가, 소금 결정이 되었다가, 음식에 녹아들고, 인간의 피가 되었다가, 결국 땀과 눈물이 되어 다시 하늘로 오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  여러분이 쏟고 있는 열정, 땀, 눈물... 이 모든 것이 당장은 아무런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아 허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소금이 녹아야 맛을 내듯, 여러분이 녹아든 그곳은 분명 이전보다 더 나은 맛을 내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여러분의 그 노고는 짠 땀방울이 되어 빛나는 결실로 여러분의 피부 위에 맺힐 것입니다.

세상에 짠맛을 더하느라 고생 많으신 당신, 당신의 오늘 하루가 맛있게 간이 맞았기를 바랍니다.



[에필로그] 다시, 바다로 (순환)

"사라지는 것은 없다. 단지 스며들 뿐."


뜨거운 국물에 녹아 인간의 몸속을 여행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핏줄을 타고 돌며 심장을 뛰게 했고, 근육을 움직이게 했다. 나는 더 이상 하얀 결정체가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어느 날, 인간이 격렬하게 운동을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모공이라는 문이 열렸다. 나는 그 틈을 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땀' 인간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짭짤한 액체. 그것이 지금의 나였다.

"아, 개운하다!" 인간이 수건으로 나를 닦아내며 웃었다. 그의 웃음 속에 나의 짠맛이 개운함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수건에 스며들어 생각했다. 나는 바다에서 태어나 소금이 되었고, 음식 맛을 냈으며, 인간의 에너지가 되었다가, 이제 다시 물이 되었다.

수건이 빨랫줄에 널리고 바람이 불어왔다. 아, 그리운 냄새. 나를 탄생시켰던 그 바람이다. 나는 가벼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떠올랐다. 저 아래 세상은 여전히 싱겁고, 여전히 치열하다. 하지만 걱정 마라. 나는 구름이 되어 비로소 다시 내릴 것이다. 또다시 누군가의 간을 맞춰주기 위해.

안녕, 나의 짧고도 짠했던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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