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불구덩이, '나'를 지우는 시간
소금의 생애 중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100도가 넘는 펄펄 끓는 찌개 냄비 속으로 몸을 던질 때다. 형체마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완전한 소멸, 그 뜨거운 희생의 현장.
김장 대첩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나는 다시 집주인의 손에 이끌려 부엌 한가운데로 소환되었다. 이번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눈앞의 가스레인지 위에서 시뻘건 용암 같은 것이 펄펄 끓고 있다. '생선 매운탕'이다.
저곳은 우리 소금들에게 '화형대'이자 '무덤'으로 통한다.
차가운 배추 속이나 미지근한 계란 후라이 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들어가는 순간, 나의 견고했던 육각형 결정체는 1초 만에 붕괴될 것이다.
"자, 마지막 간을 맞춰볼까?"
주인이 숟가락으로 나를 듬뿍 퍼 올렸다. 냄비 위로 올라서자 뜨거운 증기가 내 얼굴을 강타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다.
먼저 투입된 '고춧가루' 녀석들이 새빨간 얼굴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더 뜨겁게! 더 맵게! 다 태워버려!" 그 옆에는 허리가 반쯤 꺾인 '콩나물'과 이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무' 조각들이 비명을 지르며 떠다녔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눈이 하얗게 뒤집힌 '우럭' 한 마리가 입을 벌린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젠장, 저 난장판 속에 들어가라고?' 망설일 틈도 없이, 나는 숟가락에서 미끄러져 불구덩이 속으로 다이빙했다.
"크아악! 뜨거워!" 닿는 순간, 온몸이 불타는 것 같았다. 5년간 간수를 빼며 다져왔던 나의 단단한 몸이 순식간에 해체되기 시작했다. 나의 팔이, 다리가, 몸통이 뜨거운 국물 속으로 녹아들었다. 공포스러웠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느낌.
그런데, 내 몸이 녹아 없어질수록 묘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녹아든 자리에, 따로 놀던 재료들이 서로 손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짠맛이 우럭의 비린내를 틀어막았다. 나의 미네랄이 날뛰던 고춧가루의 독한 매운맛을 부드럽게 감쌌다. 밍밍하던 무와 콩나물의 채수에 깊은 감칠맛의 다리를 놓았다.
조금 전까지 "나만 봐! 내가 제일 매워!"라고 소리치던 고춧가루 녀석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뭐야? 왜 갑자기 국물이 진국이 됐지? 내 매운맛이 왜 이렇게 고급스러워진 거야?"
멍청한 녀석. 그것이 바로 나의 힘이다. 나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너희 모두의 사이사이에 스며든 것이다. 너희는 내가 오기 전까지 그저 뜨거운 맹물에 빠진 재료 찌꺼기들에 불과했어. 내가 너희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력'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물아일체(物我一體), 아니 염아일체(鹽我一體)의 경지다.
주인이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본다. 그의 미간이 펴지며 깊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크어... 시원하다! 이제야 간이 딱 맞네. 진국이야, 진국."
성공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하얀 결정체가 아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붉고 뜨거운 국물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비로소 나는 완성되었다. 녹아 없어짐으로써.
나의 생각!
"여러분은 '나'를 지우고 '우리'가 되어본 적이 있나요?"
소금이 가장 위대해지는 순간은 자신의 형체를 완전히 포기하고 펄펄 끓는 국물 속에 녹아들 때입니다. 그때 비로소 따로 놀던 재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진국'이 됩니다.
세상에는 소금 같은 희생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나의 자존심, 나의 이름을 내세우기보다, 공동체나 더 큰 목표를 위해 기꺼이 나를 지우고 녹아들어야 할 때가 있죠.
지금 여러분이 속한 곳이 삐걱거리고 맛이 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소금 역할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아도, 녹아 없어져도, 그 희생이 전체를 완성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