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다리 - 건너가는 자들의 발걸음
40년간 서울 한강을 가로지른 낡은 다리의 고백. 수많은 발걸음을 받아내며 인간의 희로애락을 목격한 다리가 들려주는, 연결과 단절, 건넘과 머뭇거림에 관한 이야기. 당신은 누구를 위한 다리가 되어주고 있습니까?
나는 움직이지 못한다.
1984년, 서울 한강 위에 내 몸이 놓인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여본 적이 없다. 강남과 강북을 잇는 다리.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수백만 명을 건너게 해주면서, 나 자신은 영원히 이곳에 박혀 있다는 것이.
40년의 세월 동안 내 등을 밟고 지나간 발걸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출근길 바쁜 구두 소리, 연인들의 가벼운 운동화, 무거운 등산화를 신은 중년의 발걸음, 그리고... 맨발로 난간 위를 걷던 이들의 마지막 걸음.
나는 다리다. 건너게 하는 자. 하지만 때로는 건너지 못하게 붙잡는 자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향하는 통로였고,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놓여 있을 뿐이었으니까.
새벽 다섯 시, 첫 버스가 내 몸을 지나갈 때면 나는 깨어난다. 엔진의 진동이 내 철근을 타고 흐르면, 오늘은 또 어떤 사연들이 나를 건너갈지 긴장하게 된다.
아침 햇살이 한강 물에 반짝이는 순간, 조깅하는 사람들이 상쾌한 숨을 내쉬며 지나간다.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발걸음.
하지만 밤이 되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나는 그들을 안다. 건너고 싶지만 건널 수 없는 자들. 건너야 하는데 건널 용기가 없는 자들. 그들은 내 난간에 기대어 한강을 내려다본다.
어느 날 밤, 한 중년 남자가 내 한가운데 멈춰 섰다. 그의 발밑에서 나는 느꼈다. 무거운 절망의 무게를. 그는 한 시간 넘게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저씨, 건너세요. 그냥 한 발만 더 떼세요." 하지만 나는 콘크리트와 철근일 뿐이었다.
그때, 한 젊은 여자가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남자는 고개를 돌렸고, 둘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남자는 돌아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살아있는 쪽으로.
나는 그날 밤 깨달았다.
사이먼&가펑클이 노래했던 그 다리처럼, 나는 누군가의 험한 시간 위에 놓여 그들을 건너게 해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나는 충분한 다리였을까? 내가 건너지 못하게 한 이들은 없었을까? 내 위를 걸어간 수백만의 발걸음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진짜로 '건넜을까'?
이제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40년간 내가 목격한 인간들의 기록이다. 건너간 자들, 건너지 못한 자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 다리가 되어준 자들의 이야기.
나는 다리다. 건너지 못하는 자이지만, 건너게 하는 자. 이 모순 속에서 나는 오늘도 여기 놓여 있다.
나의 생각!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위한 다리가 되어주고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다리를 건너며 살아가고 있을까? 정작 다리 자신은 평생 그 자리에 박혀 움직이지 못한다. 헌신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은 건너지 못하면서 타인을 건너게 하는 것. 하지만 기억하라. 당신이 건넌 모든 다리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인 것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