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1~5화) - (3화) 새벽 4시의 배달원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3화)험한 세상, 나는 다리 -  새벽 4시의 배달원



새벽 4시, 도시가 잠든 시간에도 다리는 깨어있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함께 지나가는 배달원들. 그들의 바퀴가 전하는 생존의 무게와 질주의 절박함. 멈출 수 없는 자들의 이야기.


멈출 수 없는 바퀴들


새벽 4시. 도시가 가장 고요한 시간. 술 취한 자들은 이미 집에 돌아갔고, 출근하는 자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이 시간, 나는 거의 비어 있다. 가로등만 쓸쓸히 내 몸을 밝힌다.

하지만 완전히 비어있진 않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부터. 그리고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그 소리를 안다. 125cc 엔진. 배달원이다.

그들은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다. 

아침, 점심, 저녁, 밤, 새벽. 24시간. 쉬지 않고 나를 건넌다. 발로 걷지 않는다. 바퀴로 달린다. 빠르게. 쉬지 않고. 멈추면 안 되니까.

새벽 4시의 배달원은 특히 빠르다. 도로가 비어있으니까. 신호등은 있지만 지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건너편에 치킨이 기다리니까. 아니, 정확히는 치킨값이 기다리니까. 3,500원. 건당.

오토바이가 내 위를 질주한다. 시속 80킬로미터. 제한 속도는 60.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시간이 돈이니까. 속도가 생존이니까.

나는 그의 바퀴를 통해 느낀다. 40대 중반 남자. 체중 68킬로그램. 배달 보온함 무게 5킬로그램. 오토바이 무게 110킬로그램. 합계 183킬로그램.

하지만 진짜 무게는 따로 있다. 대출금. 월세. 학원비. 병원비. 늙은 부모님. 그 모든 것의 무게가 125cc 엔진에 실려 내 위를 질주한다.


넘어진 자



어느 겨울 새벽이었다. 영하 12도. 내 몸은 얼어붙었다. 블랙아이스. 보이지 않는 얼음막.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새벽 4시 23분. 오토바이 소리. 평소처럼. 빠르게. 그리고 내 중앙쯤에서, 미끄러지는 소리.

철컥. 쾅. 드르륵.

오토바이가 넘어졌다. 배달원도 함께. 내 차가운 표면 위로 미끄러졌다. 5미터. 헬멧이 내 몸을 긁었다. 불꽃이 튀었다. 보온함이 열렸다. 치킨 두 마리가 도로에 나뒹굴었다.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10초. 20초. 30초.

나는 조바심이 났다. 다리인 나도 조바심이 날 정도면, 진짜 위험한 상황이다. 일어나. 제발 일어나.

1분 후, 그가 움직였다. 천천히. 팔을 짚고. 무릎을 세우고. 일어섰다. 다리를 절뚝였다. 오른쪽 무릎에서 피가 났다. 헬멧 바이저에 금이 갔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다친 곳을 확인하는 게 아니었다. 치킨을 주웠다. 박스를 확인했다. 눌렸다. 망가졌다. 배달 불가.




"아, 씨..."

그의 욕설이 새벽 공기를 찢었다. 분노가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앱을 확인했다. 떨리는 손으로. 그리고 타이핑했다. 손님에게.

"죄송합니다. 사고가 나서 배달이 지연됩니다. 30분 내로 다시 가겠습니다."

다시?

그는 치킨 박스를 도로 옆에 내려놓았다. 오토바이를 일으켰다. 시동을 걸었다. 엔진은 다행히 살아있었다. 다리를 절뚝이며 올라탔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반대 방향으로. 치킨집으로. 다시 받으러.

나는 충격받았다. 다쳤는데 병원에 가지 않는다. 넘어졌는데 쉬지 않는다. 그냥 다시 달린다. 왜?

답은 간단했다. 멈출 수 없으니까.


멈출 수 없는 이유


배달원은 시간당 노동자가 아니다. 건당 노동자다. 한 건 배달하면 3,500원. 배달하지 못하면 0원. 아프든 말든, 다쳤든 말든, 상관없다. 배달해야 돈이다.

한 달에 300건 배달하면 105만 원. 500건 배달하면 175만 원. 700건 배달하면 245만 원. 월세 50만 원 빼고, 식비 30만 원 빼고, 통신비 10만 원 빼고, 오토바이 할부금 15만 원 빼고... 남는 게 얼마나 될까.

그래서 그들은 멈추지 못한다. 쉬는 시간은 돈을 버는 시간이 아니니까. 신호등에서도, 다리 위에서도, 그들은 최대한 빨리 지나간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다리다. 건너게 하는 자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건넘'이 아니다. 그냥 '통과 지점'이다. 의미 없는 중간 과정. 빨리 지나가야 할 장애물.

그들에게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건넘이 아니라 통과. 의미를 느낄 여유도 없이 그냥 질주. 멈추면 죽으니까. 느리면 굶으니까.


두 번째 질주


40분 후, 그가 돌아왔다. 같은 방향으로. 새 치킨을 싣고. 여전히 다리를 절뚝이며.

이번에는 천천히 달렸다. 시속 50킬로미터. 블랙아이스를 조심하며. 내 몸을 지나가는 그의 바퀴에서 나는 느꼈다. 두려움. 다시 넘어질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슬픔.

그는 무사히 건넜다. 강 건너편으로. 치킨을 배달하러.

나는 궁금했다. 그 치킨을 받을 사람은 알까? 이 치킨이 두 번이나 다리를 건넜다는 것을. 한 번은 박스 안에서 나뒹굴었다는 것을. 배달원이 다쳐가며 다시 가져왔다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다.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냥 "배달 왜 이렇게 늦어?" 정도나 생각할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건너는 자의 고통은 건너간 곳에 도착하지 않는다. 다리 위에서 멈춘다. 다리만 안다. 그 무게를.


새벽의 진실


새벽 4시의 다리 위에는 진실이 있다. 낮에는 포장된 것들이 벗겨진다. 화려한 도시, 빛나는 간판, 행복한 척하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는 것.

생존.

새벽 4시에 나를 건너는 자들은 생존자들이다. 배달원, 청소부, 경비원, 대리기사. 도시가 잠들 때 깨어나고, 도시가 깨어날 때 잠드는 자들. 그들이 없으면 도시는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까. 새벽 4시니까.

나는 본다. 나는 다리니까. 나는 그들의 바퀴가 남긴 흔적을 느낀다. 브레이크 자국. 미끄러진 흔적. 타이어의 닳은 무늬. 그 안에 삶이 있다.

그 배달원은 지금도 나를 건넌다. 매일 새벽 4시. 여전히 빠르게. 여전히 쉬지 않고. 무릎은 아물었지만, 다른 곳이 아플 것이다. 어깨. 허리. 마음.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멈출 수 없으니까.

나는 오늘도 여기 있다. 새벽 4시의 증인으로. 멈출 수 없는 자들의 바닥으로. 그들의 바퀴를 받아내며, 나는 생각한다.

다리는 건너게 한다. 하지만 건너는 자가 어디로 가는지, 왜 그렇게 급한지, 아픈지 아닌지... 그런 건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냥 건너면 된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그게 이 세상의 다리니까.



나의 생각!

우리는 수많은 다리를 건너며 산다. 하지만 그 다리 위에서 누군가는 쓰러지고, 일어나고, 다시 달린다. 멈추면 추락하니까. 속도를 늦추면 뒤처지니까. 이 시대의 잔인함은 여기 있다. 멈출 권리를 주지 않는 것. 새벽 4시에 당신이 주문한 치킨 뒤에는 누군가의 상처가 있다. 편리함 뒤에는 누군가의 질주가 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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