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할머니의 산책
가장 느린 발걸음
오후 2시. 점심시간이 끝나고 도시가 다시 숨 쉬기 시작하는 시간. 차들은 제 속도를 되찾고, 사람들은 다시 빨라진다. 모두가 어디론가 향한다. 빠르게.
그런데 한 사람만 느리다.
할머니다. 80대쯤 되어 보이는. 지팡이를 짚고 내 위를 걷는다. 한 걸음에 3초. 보통 사람은 1초에 두 걸음을 걷는다. 할머니는 그 여섯 배 느리다.
나는 그녀를 '오후 2시 할머니'라고 부른다. 5년 전부터 매일 같은 시간에 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름 폭염에도, 겨울 혹한에도. 오후 2시. 정확하게.
할머니는 내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걷는다. 1킬로미터. 보통 사람은 15분이면 충분하다. 할머니는 45분이 걸린다. 세 배.
하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는다.
멈춤의 기술
할머니의 발걸음은 특별하다. 지팡이가 먼저 내려간다. 톡.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녀의 하루를 가늠한다. 톡 소리가 강하면 컨디션이 좋은 날. 약하면 안 좋은 날.
오른발이 앞으로 나간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왼발이 따라온다. 그리고 잠시 멈춘다. 숨을 고른다. 다시 지팡이. 톡.
이 반복.
젊은이들은 그녀를 추월해 간다. 빠른 걸음으로. 때로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왜 이렇게 느려."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안다. 그들의 발걸음에서 조급함이 느껴지니까.
하지만 할머니는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의 속도로 걷는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춘다.
난간에 손을 얹고 한강을 본다. 5분. 10분. 그냥 본다. 아무 생각 없이. 아니, 모든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녀의 손을 통해 느낀다. 주름진 손. 거칠어진 손바닥. 그 안에 70년 인생이 새겨져 있다. 농사일, 가사일, 육아, 전쟁, 가난, 이별... 모든 것이.
할머니는 다시 걷는다. 10미터쯤 가다가 또 멈춘다. 이번에는 벤치에 앉는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보리차 보온병.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신다. 천천히.
옆을 조깅하는 사람이 스쳐 지나간다. 땀을 뻘뻘 흘리며. 빠르게. 건강해지려고. 할머니는 그를 본다. 미소 짓는다. 불쌍하다는 듯이.
건넘이 아니라 있음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할머니는 내를 '건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녀에게 다리는 목적지가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A에서 B로 가는 수단'이다. 빨리 지나가야 할 통로. 하지만 할머니에게 나는 '머무는 곳'이다. 존재하는 곳.
그녀는 끝까지 가면 돌아온다. 다시 45분 걸려서. 왕복 90분. 하루에 그게 전부다. 다른 목적은 없다. 그냥 걷는다. 천천히.
"할머니, 어디 가세요?"
어느 날 젊은 여자가 물었다. 친절한 목소리로.
"어디긴. 저기."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다리 끝을 가리켰다.
"거기 뭐 있으세요?"
"아무것도 없지."
"그럼 왜...?"
"가야 하니까."
여자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할머니는 웃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이해했다. 할머니에게 '가야 하는 이유'는 '가는 것 자체'였다.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 결과가 아니라 현재.
이 시대 사람들은 모두 '도착'에 집착한다. 어디에 가야 한다. 무엇을 이뤄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빨리 가야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안다. 인생에 도착지는 없다는 것을. 있다면 그건 죽음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중요한 건 빨리 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가는가라는 것을.
어느 겨울날
작년 겨울, 할머니가 오지 않았다. 오후 2시. 2시 10분. 2시 30분. 나는 불안했다. 5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진 적이 없었는데.
일주일이 지났다.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나는 걱정했다. 다리인 내가 걱정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할머니의 발걸음은 내게 특별했으니까.
두 주가 지났다.
그리고 오후 2시. 할머니가 왔다.
하지만 달랐다. 지팡이가 아니라 보행기를 끌고 있었다. 더 느렸다. 한 걸음에 5초.
얼굴도 달랐다. 더 수척해졌다. 병원에 다녀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왔다. 다시.
나는 그녀의 보행기 바퀴를 통해 느꼈다. 예전보다 더 많은 무게가 실렸다. 몸무게가 늘어서가 아니다. 죽음의 무게가 더해진 것이다.
할머니는 안다.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 다리를 몇 번이나 더 걸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더 천천히 걷는다. 더 자주 멈춘다. 더 오래 본다. 한강을. 하늘을. 사람들을.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까.
느림의 승리
할머니는 오늘도 왔다. 오후 2시. 보행기를 끌고. 한 걸음 한 걸음.
옆을 바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배달원, 직장인, 학생들. 모두 빠르다. 모두 바쁘다. 모두 어디론가 향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결국 도착하는 곳은 같다는 것을. 죽음.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결국 같은 곳에 도착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가? 속도? 아니다. 과정이다.
빨리 간 사람은 많은 곳을 지나쳤다. 하지만 본 것은 적다. 느낀 것은 더 적다. 그냥 지나쳤으니까.
천천히 간 사람은 적은 곳을 지나쳤다. 하지만 많이 봤다. 많이 느꼈다. 천천히 갔으니까.
할머니는 45분 동안 1킬로미터를 간다. 그 안에서 그녀는 본다. 한강의 물결, 하늘의 구름, 갈매기의 비행, 연인들의 웃음, 아이의 울음, 꽃의 향기, 바람의 온도.
배달원은 3분 만에 1킬로미터를 간다. 그 안에서 그는 본다. 신호등, 도로, 목적지.
누가 더 많이 살았을까?
할머니가 내 끝에 도착했다. 90분이 걸렸다. 왕복. 그녀는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른다. 땀을 닦는다. 보리차를 마신다.
그리고 일어난다. 돌아가려고. 집으로.
"내일 또 올게."
할머니가 내게 말한다. 아니,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들었다. 그녀의 보행기 바퀴가 내 몸을 떠나며 전한 약속.
나는 기다릴 것이다. 내일 오후 2시. 가장 느린 발걸음을. 가장 의미 있는 걸음을.
나의 생각!
이 시대는 속도를 숭배한다. 빠른 것이 좋은 것이고, 느린 것은 뒤처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진짜 삶은 속도에 있지 않다. 깊이에 있다. 할머니의 45분이 배달원의 3분보다 가치 있는 이유는 그 안에 '삶'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 빨리 가려 한다. 하지만 도착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느리게 가는 용기를 가져라. 그것이 진짜 건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