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휜 엄마 새우의 " 나의 하루"(1~3화) - (1화) 허리 한 번 못 펴고 맞이하는 " 나의 하루 "

 

등이 휜 엄마 새우의 " 나의 하루  "

(1화) 허리 한 번 못 펴고 맞이하는 " 나의 하루 


"아이구, 내 허리야! 삭신이야!"

눈을 뜨기가 무섭게 허리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뻐근함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 어항의 터줏대감이자, 새우 대가족을 건사하는 어미 새우, 이름하여 '엄마 새우 등굽이'였다. 내 이름처럼, 나는 늘 등이 굽어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탱글탱글한 젊은 새우 시절엔 누구보다 곧은 허리를 자랑했더랬다. 하지만 자식들 키우고, 살림하고, 남편 새우 등살에 시달리다 보니 어느새 내 등은 활처럼 휘어버렸다. 인간 세상의 '60년대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허리 펼 날 없네!"라는 말은 우리 새우 세계에서도 진리였다.(우스갯 소리로 혹자는 그런다 " 새우가 인사성이 밝아 등이 굽은 거라공  그래서 이름이 새우란다 " 안녕하 새 ~우? ㅋㅋㅋ")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해는 쨍하게 집안을 비춘다. 햇살이 창문을 사선으로 타고 들어와 영롱하게 부서지는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내 눈에는 그저 '오늘도 먹이 찾아 헤맬 시간이 왔구나'라는 신호로만 보일 뿐이다. 마당 바닥에는 밤새 자라난 미역 줄기와 알 수 없는 먼지들이 수북하다. 녀석들, 밤새 뭘 했길래 이리도 어지러운지.



"엄마! 배고파요!" "어미! 물이 탁해요!" "엄마! 나 오늘 친구들이랑 놀러 가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칭얼거리는 소리가 빗발친다. 나는 얕은 한숨을 쉬고는 휘어진 등을 더 깊이 숙여 집안 바닥을 기어갔다. 청소를 시작해야 했다. 60년대 우리네 어머니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마당을 쓸고 밥상을 차리듯, 나 역시 아이들 배 채우고, 집안을 깨끗이 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온몸을 이용해 바닥의 이물질을 쓸어 모으고, 미역 줄기를 정리했다. 작은 몸으로 50평이나 되는  이 넓은 집안을 치우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휴, 저놈의 남편 새우는 대체 뭘 하는 게야!"

눈을 흘기니 저 멀리서 남편 새우 '팔자 좋은 새우'가 보였다. 그는 등 지느러미를 꼬리치며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마치 바다 속 모든 평화가 자기 덕분이라는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등굽이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저 양반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베짱이가 되는구먼. 집안일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매일 운동한다며 헤엄만 치니! 저 양반 등에 붙은 이끼만 떼어줘도 새우깡 한 봉지는 나오겠다!'

"여보, 여보! 이리 와서 애들 아침 먹일 준비 좀 도와줘요! 나 혼자서는 너무 벅차잖아!"

내가 목청껏 불렀지만, 그는 못 들은 척 더 빠른 속도로 헤엄쳐 가버렸다.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저런들 어떠하리, 이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 . 옛 어른들 말씀에 "남편은 바깥양반, 나는 안방마님!" 이랬으니. 나는 우리 집의 든든한 안방마님이었고, 이 집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기둥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지는 법.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나는 기둥이다! 기둥은 흔들리지 않는다!'

청소를 마친 후에는 곧바로 아침 식사 시간. 내가 힘들게 구해 온 먹이를 아이들 입에 넣어주는 것은 나의 가장 큰 기쁨이자 동시에 고통이었다. 아이들은 제 어미 등골 빼먹는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먹이를 받아먹었다. "엄마, 더 주세요!" "엄마 꺼도 줘요!" 어린 새우들의 천진난만한 외침에 나는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희들 배부르면 됐지 뭐. 어미는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른 법이란다.' 그게 바로 60년대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의 지혜였다. 내 허리가 굽은 건 아마도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허리를 굽혀 먹이를 구해 온 세월 때문일 터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아이들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막내 새우 '새우깡'이 헤엄치다가 바위틈에 끼어 울고 있었고, 둘째 새우 '새우튀김'은 물풀에 걸려 허우적거렸다. 나는 굽은 허리를 이끌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이들을 구출해냈다. 녀석들, 눈에서 한시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마치 인간 세상의 60년대, 일곱 자식 열 자식 키우던 어머니들처럼, 나는 매일매일이 위기의 연속이었다.

오전 내내 쉼 없이 움직이다 보니 등은 더 뻐근해졌고, 지느러미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나는 어항 한구석에 있는 작은 돌멩이 뒤에 몸을 숨겼다.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60년대 우리 어머니들이 부엌 한구석에서 쪽잠을 자듯, 나도 그렇게 몰래 휴식을 취했다.

'아, 이대로 잠들면 영원히 못 일어날 것만 같네.'

나른함이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짧은 휴식이 끝나면 또다시 전쟁 같은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았다. 내일 아침, 다시 뜨는 해를 보며 허리를 한 번 못 펴고 시작할지라도, 나는 이 어항의 엄마 새우 '등굽이'였으니까. 나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철학은 바로 이 가족을 지키는 것이었다.

"새우는 굽은 등으로 세상을 지탱하고, 어미는 굽은 허리로 자식을 일으켜 세운다."

이것이 나의 등굽이 철학이었다.


 여러분의 삶에서 '허리 펼 날 없이' 바빴지만, 그 속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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