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휜 엄마 새우 " 나의 하루 "
(2화) 등굽이 엄마의 먹이 전쟁과 등대 교육
"새우깡 한 봉지에 담을 수 없는 엄마의 사랑? 오늘도 엄마 새우는 '모성애 만렙' 찍습니다!"
"어미, 저기 저 빨간 알갱이 좀 봐! 맛있겠다!"
막내 새우 '새우깡'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가리킨 곳은 바위틈 속 가장 깊고 어두운 바닥, 다른 새우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탐스러운 빨간 알갱이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분명 럭셔리한 '특식'일 터였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나는 순간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알갱이라면 우리 애들 오늘 하루 배 든든히 채우고, 내일모레까지도 활기차게 놀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동시에 다른 새우들의 텃세가 가장 심하고,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모두가 탐내지만 누구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의 땅'이랄까. 60년대, 우리네 어머니들이 자식들 입에 풀칠하려고 남들이 꺼리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식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부서져도 괜찮다는 것이 바로 어미의 마음 아니던가. 세상 모든 어미들의 공통된 속성이랄까.
"안 돼! 위험해!"
나는 본능적으로 새우깡을 밀쳐냈다. 그리고 굽은 등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그곳으로 향했다. 다른 새우들도 빨간 알갱이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먹이 전쟁' 이었다. 몸싸움은 기본이요, 서로를 밀쳐내고 밟고 올라서는 모습은 영락없이 인간 세상의 '무한 경쟁 사회' 를 보는 듯했다. '아이고, 저것들 봐라! 지들이 먼저 태어났다고 벌써부터 꼰대 짓이네! 신참들은 알아서 빠지라는 건가? 세상 물정 모르는 것들 같으니라고!'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노련하게 몸을 움직였다. 젊은 새우들은 힘만 믿고 무작정 달려들었지만, 나는 경험으로 다져진 잔기술로 그들을 따돌렸다. 굽은 등이 오히려 장애물이 아닌, 마치 방어막처럼 나를 지켜주는 듯 느껴졌다. 수십 년간 짊어진 삶의 무게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간신히 빨간 알갱이 앞에 다다랐을 때, 거대한 수컷 새우 하나가 내 앞을 막아섰다. 이 바닥의 최고 권력자, '힘센 장군 새우'였다. 그는 거만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의 턱밑에는 잔뜩 먹이를 욱여넣어 터질 듯 부푼 먹이 주머니가 대롱거렸다.
"어이, 등굽이! 주제를 알아야지! 이런 건 우리 같은 힘센 놈들이나 먹는 거야! 너 같은 늙고 굽은 등이 뭐가 아쉽다고 여기까지 와서 설치는 거야!"
나는 피식 웃었다.
"장군님, 힘센 건 아는데, 머리도 좀 씁시다! 이런 귀한 먹이는 다 같이 나눠 먹어야지, 혼자만 먹다가 체해요! 욕심부리다 탈 나는 건 새우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라오!"
나는 그의 발을 살짝 걸어 넘어뜨리고는 재빨리 알갱이를 입에 물었다. 그는 허둥지둥 몸을 가누며 분노했지만, 나는 이미 알갱이를 품에 안고 유유히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하하, 힘만 센 게 능사는 아니지! 역시 세상사는 지혜와 눈치가 필요한 법이라네! 인간 세상이나 어이 바닥 세계나, 힘만 믿고 나대다간 코 깨지는 법이지!' 60년대 우리 어머니들이 시장에서 억척스럽게 흥정하고, 자식 먹일 것 하나라도 더 얻으려 애쓰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그때의 어머니들은 온갖 잔꾀와 지혜로 가난을 이겨내지 않았던가.
어렵게 얻어낸 빨간 알갱이를 아이들에게 가져다주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알갱이를 조심스럽게 쪼개어 하나씩 입에 넣어주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방금 전의 힘든 사투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마음속에 따뜻한 무언가가 차올랐다. 이것이 바로 모성애의 힘인가 보다. 굽은 허리, 쑤시는 등은 잠시 잊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그 순간 만큼은 세상 어떤 보석보다도 빛나는 시간이었다. '그래, 나는 이런 맛에 사는 거지. 자식들 어주며 느끼셨던 바로 그 감정일 것이다.
점심 식사 후, 나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교육을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등대 교육' 이라고 불렀다. "얘들아, 엄마 등이 왜 이렇게 굽었는지 아느냐?"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너희 먹여 살리느라 허리가 굽은 것도 맞지만, 진짜 이유는 말이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엄마가 굽은 등으로 너희 앞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어주려고 그랬단다".
너희는 엄마 등 뒤에서 세상을 똑바로 보고, 엄마처럼 굽은 길 가지 말고 곧은 길로 나아가라고 말이다. 세상은 네모 반듯하지 않아. 구불구불하고,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파도가 몰아치기도 해. 그럴 때마다 엄마의 굽은 등을 기억하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용기, 그리고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는 지혜를 말이야."
아이들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60년대 우리네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삶의 지혜와 교훈을 몸소 가르치셨듯,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먹이를 주는 것을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법,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과 역경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 바닥은 넓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다. 빨간 알갱이 하나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고, 힘센 놈들에게 억울한 일도 당할 수 있지. 마치 요즘 인간 세상의 '취업 전쟁'이나 '내 집 마련 전쟁'처럼 말이다. 하지만 얘들아,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서로를 보듬는 따뜻한 마음이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고, 서로의 등을 기대어 함께 나아가야 하는 거야. 엄마의 굽은 등은 너희의 방패가 되어주고, 너희의 등대가 되어줄 거야. 때로는 굽은 길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단다. 곧은 길만 고집하다간 보지 못할 풍경들이 굽은 길에는 숨어있지."
막내 새우깡이 내 굽은 등에 작은 몸을 기댔다. "엄마, 엄마 등은 세상에서 제일 따뜻해요! 엄마 등만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요!" 나는 아이의 말에 울컥했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내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 그것은 바로 내 아이들이었다. 등이 굽었어도, 이 등이 세상에서 가장 넓고 든든한 품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여기저기 유영했다. 굽은 등 위로 아이들의 작은 몸이 느껴졌다. 내 등은 어쩌면 굽은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더 넓게 품기 위해 스스로 휘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고단했지만, 벅차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굽은 등은 짊어진 무게의 증거이자, 사랑의 깊이를 말해주는 훈장이다. 그리고 그 굽은 등 위에서 피어나는 희망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는 그렇게 나의 등을, 나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 등이 굽어진 만큼, 아이들의 미래는 더 곧고 빛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굽은 등으로 넓은 바다 속을 유영한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등대'가 되어주었던 사람은 누구였나요? 그리고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어떤 '등대'가 되어주고 싶으신가요? 댓글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