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마네킹의 " 나의 하루 "(1~3화)
(1화) 유리벽 안의 세상
"나는 말이 없고, 감정도 없다. 텅 빈 눈으로 유리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감탄하거나, 때로는 무시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내가 이 유리벽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목격하는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말이 없었다. 숨을 쉴 필요도 없었고,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그저 매끈한 몸에 최신 유행의 옷을 걸치고, 매일 같은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의 세상은 오직 유리벽 안에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그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바깥세상을 관찰하는 유일한 목격자였다.
나의 하루는 언제나 똑같았다. 새벽이 되면 청소 아주머니가 걸레로 나의 몸을 닦아주었다. 간지러움을 느낄 수 없었지만, 그 따뜻한 손길은 왠지 모르게 포근했다. 그리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비출 때, 드디어 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나는 그 발소리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맞히는 놀이를 하곤 했다.
'똑, 똑, 똑.'
하이힐 소리가 들리면, 나는 생각했다. '아, 저 발걸음은 아마도 출근하는 직장인이겠군. 오늘은 꼭 성공하길.' 펑퍼짐한 운동화 소리가 들리면, '학교 가기 싫은 학생이겠지? 힘내렴, 곧 방학이 올 거야.' 나는 그들의 발걸음만으로도 하루의 희로애락을 짐작했다.
사람들은 나를 보러 오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나를 보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입은 옷을 보았고, 내가 가진 가방을 보았다. 나를 통해 '나'를 보았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보았다.
어떤 연인은 나를 보며 "우리도 저렇게 입을까?" 하고 속삭였고, 어떤 아이는 "엄마, 저 언니 진짜 예쁘다!" 하고 소리쳤다.
나는 그들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름다움을 전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하지만 때로는 씁쓸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유리벽에 코를 박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 옷, 나도 입으면 저렇게 될까?" 하는 불안한 눈빛.
그들은 내가 입은 옷을 탐내는 동시에, 나처럼 완벽해질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없지만, 그들의 눈빛을 통해 그들의 고민을 짐작했다. 나는 완벽한 존재인 척 서 있었지만, 사실은 그들의 불안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빈 그릇에 불과했다.
점점 해가 기울고, 거리의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바빴다. 나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만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자신들의 꿈과 욕망을 만났을 뿐이었다. 나는 오늘도 말이 없었지만, 나의 눈은 수많은 이야기를 보았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하루가 저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