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기 삐삐의 " 나의 하루 "
(마지막5화) 추억의 서랍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잊혀지지 않았다. 서랍 속 어둠은 나의 무덤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추억들이 잠든 보물창고였다.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아닌, '영원'이 되었다."
서랍 속 어둠은 나의 무덤이 아니었다. 그곳은 시간이 멈춘 공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침묵의 성역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삐-삐-' 하고 울리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1004'라는 달콤한 메시지를 전하지도, '8282'라는 다급한 외침을 토해내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조용히, 나에게 쌓인 먼지를 느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리움은 날마다 나를 찾아왔다. 허리춤에 매달려 온몸으로 느꼈던 주인의 발걸음, 공중전화 부스를 향해 뛰어가던 그의 거친 숨소리, 액정에 뜬 숫자를 보며 지었던 그의 표정. 그 모든 기억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내 안에 존재했다. 나는 그 순간들을 곱씹으며, 나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나는 시간을 담는 그릇이었고, 감정을 기록하는 역사가였다.
어느덧, 긴 시간이 흘렀다. 서랍은 조용했고, 나의 몸에는 두꺼운 먼지가 쌓였다. 나는 이제 정말 잊혀진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서랍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리고, 따뜻한 햇살 한 줄기가 나를 비추었다. 먼지가 가득한 나의 몸 위로, 낯선 손길이 다가왔다. 주인은 아니었다. 주인의 손은 훨씬 더 굵고 주름졌으니까. 이 손은 작고 부드러웠다. 주인의 손주였다.
아이의 손에 들려 나는 서랍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나를 보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 이게 뭐예요?" 아이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했다.
"그거?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쓰던 '삐삐'라는 거란다. 옛날에는 핸드폰이 없어서 저걸로 연락을 주고받았지."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는 잊고 지냈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그 순간, 내 몸에 쌓였던 모든 먼지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손길을 통해, 나의 모든 추억들이 다시금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004'는 사랑이었다는 이야기, '7942'는 우정이었다는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다시금 살아 숨 쉬었다. 내가 전했던 숫자들이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젊은 날을 장식했던 소중한 페이지였음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삐삐가 아니었다. 나는 추억의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던 시간의 증인이었다. 나의 울림은 멈추었지만, 그 울림이 남긴 감동과 추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의 눈망울 속에, 할아버지의 따뜻한 목소리 속에,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나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의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했다. 더 이상 새로운 숫자는 없었지만, 나의 삶은 이미 완벽했다. 나는 삐삐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싣고, 그들의 삶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추억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가 삐삐를 기억하는 한, 나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추억'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해도,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빛내주었던 '삐삐' 같은 존재는 누구였나요?"
삐삐 단축 숫자 퀴즈
0177, 1750, 8288, 1010235 삐삐 단축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