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이 휜 엄마 새우 " 나의 하루 "(1~3화) 🦐 (마지막화)
(3화) 굽은 등으로 지어 올린 희망의 집
점심 '등대 교육'을 마친 후, 나는 잠시 굽은 등을 어항 한구석의 울퉁불퉁한 바위틈에 기대었다. 아침부터 쉼 없이 움직인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아이고, 이 등만 안 굽었어도 마라톤 선수라도 됐을 텐데!' 나는 푸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이 굽은 등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곧은 등만으로는 세상의 모든 무게를 견딜 수 없지 않겠나. "똑바로만 가다 보면 놓치는 풍경이 많은 법이야. 굽이진 길에서 비로소 진정한 삶의 지혜를 배우는 거지." 이게 바로 내 등굽이 철학의 핵심이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놀던 둘째 '새우튀김'이 허둥지둥 집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엄마! 큰일 났어! 밖에 인간 손이 나타났어! 물고기들이 막 잡혀가고 있어!"
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인간 손!' 우리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마치 전설 속의 괴물처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나타나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가는 존재. 60년대 우리네 어머니들이 갑작스러운 재난이나 어려운 시대 상황 앞에서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것처럼, 나 역시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얘들아! 엄마 등 뒤로 모여라! 빨리!"
나는 본능적으로 아이들을 굽은 등 뒤로 감싸 안았다. 막내 새우깡과 둘째 새우튀김, 그리고 다른 어린 새우들이 내 등 아래로 파고들었다. 내 굽은 등이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였다. 쿵! 밖에서 나는 둔탁한 소리에 모두가 움찔했다. 집 전체가 흔들렸다. 인간의 손이 물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바위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손가락은 마치 공룡의 발톱처럼 위압적이었다.
"젠장, 저 빌어먹을 손! 우리 가족은 못 건드린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바위틈 더 깊숙한 곳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동시에 내 몸을 방패 삼아 그들을 가렸다. 힘없는 작은 생물에 불과했지만, 자식을 지키려는 어미의 마음은 어떤 강철보다 단단했다. 마치 60년대 우리 어머니들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도 자식에게 밥 한 숟갈 더 먹이려 애쓰셨듯,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아이들을 지키려 했다.
다행히 인간의 손은 잠시 바닥을 휘젓더니 이내 물고기 몇 마리만 데리고 사라졌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이들은 무사했지만, 내 등은 더욱 뻐근해졌고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니, 그 모든 고통은 한순간에 잊혔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사랑은 영원히 남는 법." 나는 이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막내 새우깡은 어느새 의젓한 청년 새우가 되었고, 둘째 새우튀김은 제법 힘센 새우가 되어 엄마를 돕곤 했다. 그들은 더 이상 내 등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스스로 먹이를 찾고, 위험을 감지하며, 심지어는 나를 도와 집 안팎을 청소하기도 했다.
"엄마! 제가 이 조약돌 옮길게요!" "어미! 물풀 정리하는 건 제가 할게요!"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니 청소도 훨씬 수월해졌다. 나는 흐뭇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봤다. '내 자식들이 이렇게 컸구나. 이제 다 키웠네!' 60년대 어머니들이 자식들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제 몫을 해낼 때 느끼셨을 법한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어느 날, 나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이제 너희도 제법 컸으니, 각자 너희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니?"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엄마, 그럼 엄마는요?" 막내 새우깡이 울먹이며 물었다.
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이미 너희가 지어준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집에서 살고 있단다. 바로 너희들 마음속에 말이야. 부모는 자식이 스스로 날아오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법이란다. 이제 너희는 엄마 등 뒤가 아닌, 너희 스스로의 등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해."
솔직히 말하면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매일 시끄럽게 칭얼대던 녀석들이었지만, 그 소음마저도 익숙한 행복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진정한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날아오르도록 놓아주는 것" 이라는 것을. 60년대 어머니들이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참고 자식들을 사회로 내보냈던 것처럼, 나 역시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독립시켜야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바다 속 각자의 공간을 정해주고, 집을 짓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조약돌을 쌓고, 물풀을 엮어 문을 만들고, 모래로 바닥을 다지는 방법까지. 굽은 등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일일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마치 평생을 노동에 바쳐 얻은 노하우를 자식에게 전수하는 장인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서툴지만 열심히 집을 지었고, 마침내 각자의 보금자리가 완성되었다. 녀석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내 등은 더 굽어진 것 같았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곧고 펴지는 듯했다.
나는 이제 혼자가 되었다. 바닷속 내 보금자리는 예전보다 훨씬 조용해졌다. 가끔은 적막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뭘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내 삶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었다.
나는 바다 속을 유유히 헤엄쳤다. 예전처럼 먹이를 찾아 헤매거나, 아이들을 보호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느긋하게 어항 이곳저곳을 탐험하고, 햇살을 즐겼다. 굽은 등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내 삶의 '훈장' 이자, '지혜의 상징' 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꿀방울 하나를 발견했다. 예전 같으면 허겁지겁 아이들 입에 넣어주었을 테지만, 이제는 달랐다. 나는 꿀방울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굽은 등을 바위틈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한 방울 한 방울 꿀맛을 음미했다. 그 맛은 세상 그 어떤 진미보다 달콤했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으니, 때로는 홀로 걷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그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 등은 굽어졌지만, 내 마음은 결코 굽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오히려 굽은 등은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주고, 더 깊은 지혜를 선물해주었다. 60년대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셨듯, 나 역시 나의 삶을 찾아가고 있었다.
"굽은 등은 짊어진 무게의 증거이자, 사랑의 깊이를 말해주는 훈장이다. 그리고 그 굽은 등 위에서 피어나는 희망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는 등대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내 등은 여전히 굽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굽은 등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는 영원한 등대가 될 것이다. 이 바다 속 모든 생명에게, 그리고 저 너머 인간 세상의 지친 영혼들에게, 나의 굽은 등이 주는 작은 위로와 희망이 닿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굽은 등으로, 나만의 삶을 유영한다.
여러분의 삶에서 '굽은 등'처럼 느껴지는 흔적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혹시 그 굽은 등이 여러분을 더욱 단단하고 빛나게 만들지는 않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