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와 작대기의 " 나의 하루 "(1~5화)
(1화) 태어남, 그리고 첫 만남
"나는 나무였다. 바람과 비를 맞고 숲에 서 있던 존재. 그러나 어느 날,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나는 지게, 그리고 내 곁의 작대기.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나는 꿈을 꾸었다. 아니, 어쩌면 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바람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그런 영원할 것만 같던 평화로운 순간들. 나는 숲의 일부였다. 수많은 형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매미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자장가처럼 들려오던 곳. 그곳이 나의 전부였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어느 날, 낯선 소리가 숲을 울렸다. ‘윙- 위이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두려움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다. 그저, 올 것이 왔다는 막연한 예감뿐이었다. 나의 뿌리가 뽑히고, 몸통이 잘려나갔다. 거대한 몸뚱이는 땅으로 고꾸라졌다. 더 이상 바람을 느낄 수 없었고, 햇살도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커다란 나무토막이 되어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낯선 곳으로 옮겨졌다. 톱밥 냄새와 나무를 다듬는 소리가 가득한 곳.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길이 나를 어루만졌다. 쿵, 쿵, 쿵. 망치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거친 대패가 나의 살갗을 깎아냈다. 때로는 아팠고, 때로는 간지러웠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는 알 수 없는 형태로 변모해갔다. 내 몸에는 옹이가 박혀 있었고, 세월의 흔적처럼 거친 나뭇결이 선명했다. 나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점차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작업이 끝났다. 따뜻한 손길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휘청, 나는 처음으로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내 시야에 들어온 또 다른 존재. 나만큼이나 투박하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길고 삐죽한 모습의 나뭇가지 하나. 그는 나처럼 깎이고 다듬어진 상태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자유분방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어이, 친구!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의 목소리는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처럼 가볍고 명랑했다.
"나는... 나는 누구지?" 내가 겨우 입을 뗐다. 목소리가 낯설었다.
"하하, 너는 이제 지게가 된 거야! 튼튼한 어깨를 가진 멋진 지게 말이지."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작대기. 너의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때로는 너의 길을 밝혀줄 빛이 되어줄 거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나를 훑어보았다. 과연, 나의 등에는 짐을 멜 수 있는 끈이 달려 있었고, 어깨를 받치는 부분이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 나는 이제 더 이상 숲의 나무가 아니었다. 짐을 지고 나르는, ‘지게’라는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작대기는 나의 곁에 바싹 붙어 섰다. 그의 끝은 뾰족했고, 한쪽에는 손잡이처럼 굴곡진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양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한 몸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땀 흘리는 노인의 손이 우리를 들어 올렸다. 노인의 손은 거칠었지만 따뜻했고, 그의 눈빛은 세월의 깊이가 느껴졌다. 그는 우리를 등에 짊어졌다. 쿵! 처음 느껴보는 묵직한 무게감. 노인의 등에 착 달라붙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리는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작대기는 노인의 손에 쥐어져 땅을 짚었다.
"이게 바로 ‘쓰임’이라는 건가?" 내가 작대기에게 속삭였다.
"그래, 친구. 이제부터 우리는 저 분의 다리가 되어주고, 짐을 덜어주는 존재가 될 거야." 작대기의 목소리에는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는 이제 함께 길을 걷게 될 운명인 거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각, 우리는 허스름한 작은 집 앞에 다다랐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노인은 우리를 마당 한편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나는 낯선 세상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개 짖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나는 이제 지게다. 그리고 내 곁에는 언제나 작대기가 있다. 우리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무엇을 짊어지게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