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와 작대기의 " 나의 하루 "
(2화) 고갯길 - 삶의 무게를 지다
"나는 알았다. 세상의 모든 길은 저마다의 무게를 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무게를 짊어지는 일은,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과정이라는 것을."
새벽은 차가웠다. 온몸을 휘감는 이슬은 낯설었지만, 어딘가 싱그러웠다. 해가 뜨기 전, 세상이 아직 잠들어 있을 때, 나는 주인 할아버지의 등에 다시 짊어졌다. 쿵! 어제의 묵직함이 다시금 나를 감쌌다. 이번엔 달랐다. 짐칸에 솔가지와 나뭇잎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숲의 향기가 다시 내 코끝을 스쳤지만, 이제는 내가 숲을 떠나온 존재임을 똑똑히 알았다.
"오늘은 저 위쪽 고갯길을 넘어야 할 게다."
할아버지의 나직한 목소리가 내 귀를 스쳤다. 작대기는 할아버지의 손에 굳게 쥐여 있었다. 우리는 좁고 굽이진 산길로 들어섰다. 흙냄새, 축축한 이끼 냄새, 그리고 이름 모를 풀들의 향기가 뒤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작대기는 할아버지의 발걸음에 맞춰 톡, 톡, 땅을 짚으며 앞을 나섰다. 녀석의 뾰족한 끝이 돌부리를 비켜가고, 미끄러운 흙바닥을 단단히 지탱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야, 작대기! 이 길은 끝이 어디냐?" 내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물론 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내 몸이 흔들리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게다.
"하하, 지게야. 길은 보이지 않아도 항상 끝이 있는 법이란다. 중요한 건 그 길을 묵묵히 걷는 거지." 작대기는 여전히 명랑했다. "그리고 내가 있지 않느냐! 험한 곳은 내가 먼저 알려주고, 미끄러운 곳은 내가 받쳐줄 테니 걱정 마라."
그의 말처럼, 오르막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나의 등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어깨를 죄어오는 끈은 살갗을 파고드는 듯했다. 할아버지의 등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그의 거친 숨소리가 내 등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할아버지의 힘든 숨소리에 맞춰 묵묵히 버텼다. 내가 흔들리면 할아버지도 힘들어지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우리의 몸이 하나로 연결된 듯, 서로의 고통을 나누어 갖는 기분이었다.
고갯길 중간쯤 왔을까. 저 멀리서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구, 김 영감! 오늘도 부지런하시구먼!" "허허, 박 서방! 자네도 새벽길 나섰는가!"
인사 소리와 함께 잠시 발걸음이 멈췄다. 할아버지와 다른 지게꾼들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지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모두의 등에는 저마다 다른 짐들이 가득했다. 어떤 지게에는 장작이, 어떤 지게에는 나물 바구니가 실려 있었다. 그들은 고갯마루에 앉아 잠시 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는 영 작황이 좋지 않아서 큰일이여." "그려, 애들 밥 먹이기가 더 힘들어졌지 뭐야."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웃음소리들. 작대기는 내게 속삭였다. "봐라, 지게야. 저마다 자신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란다. 저 짐들이 그들의 삶이고, 책임인 게지."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는 내 등 위로 짊어진 무게가 단순히 솔가지와 나뭇잎의 무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삶의 무게이자, 가족의 삶의 무게였다.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책임감 같은 것이 피어났다. 나는 더욱 단단하게 할아버지의 등에 밀착했다. 작대기 역시 더 힘껏 땅을 짚으며 할아버지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마침내 고갯마루에 섰다. 저 멀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위로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잠시 숨을 고르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만, 눈빛은 평화로웠다. 나는 그 순간,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존재가 누군가의 삶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자, 이제 내려가볼까."
할아버지의 말과 함께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는 길은 오르막만큼 힘들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길은 끝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는 법,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