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길 모퉁이 가로등의 "나의 하루"(1~5화) - (2화) 그림자의 꿈과 좌절

 

달동네 길 모퉁이 가로등의 " 나의 하루 "

(2화) 그림자의 꿈과 좌절


"어둠은 때론 가장 솔직한 고백을 이끌어냅니다. 나의 두 번째 밤은 어떤 비밀을 품고 있었을까요?"


내 두 번째 밤은 유난히 고요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희미한 소음만이 이 달동네 길 모퉁이의 적막을 깨트렸다. 나는 어제와 다름없이 묵묵히 빛을 내뿜었고, 내 빛은 마치 망각의 강물처럼, 어제의 피로를 씻어내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다리는 듯했다.

이 밤, 내 시선을 사로잡은 이는 할머니 한 분이었다. 동네에서 '박 씨 할머니'라고 불리는 분인데, 늘 곱게 쪽진 머리에 깨끗한 한복을 즐겨 입으셨다. 낮에는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시며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팔고, 밤이 되면 내 아래 낡은 벤치에 앉아 한참을 하늘만 바라보셨다. 

오늘은 유난히 오래 앉아 계셨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내 빛이 스며들자, 그 얼굴의 골마다 박혀 있는 세월의 흔적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할머니는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보시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 향해 혼잣말을 하셨다. 

"얘야, 너는 참 좋겠다. 늘 저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으니. 나는 젊었을 때 저 하늘에 닿고 싶어서 매일 밤 꿈을 꾸었는데…." 

할머니의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그 속에는 젊은 날의 회한과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꿈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그 꿈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운 삶이었을까, 아니면 이 좁은 달동네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염원이었을까.

그때, 배달 청년인 용식이가 또 오토바이를 몰고 내 앞을 지나쳤다. 그는 늘 바빴고, 늘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었다. 오늘 그는 통화 도중 갑자기 "야, 내가 배달이나 하려고 대학교 나온 줄 알아? 아 진짜 열 받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에는 낮 동안 김 씨 아저씨에게서 보았던 피로와는 다른, 젊음이 가진 좌절과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용식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청년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 꿈은 저 헬멧 안에 갇혀버린 것일까?' 

박 씨 할머니의 회한 어린 목소리와 용식이의 분노에 찬 외침이 내 안에서 겹쳐졌다. 시대는 달라도, 꿈을 향한 열망과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인간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한참 후, 술에 취한 한 남자가 내 아래를 비틀거리며 지나갔다. 그는 한 손에 소주병을 들고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세상이 왜 이래? 왜 나만 이래? 다들 나를 무시해.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피해의식과 함께 깊은 절망감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건가? 아니면 우리가 세상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내 빛은 그의 그림자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고, 그의 절규는 달동네의 고요한 밤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밤늦게, 김 씨 아저씨가 다시 내 앞을 지나쳤다. 그는 늦게까지 일이라도 했는지, 아까보다 더 지쳐 보였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작은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봉투 속에서 한 줌을 꺼내더니, 내 발밑에 있는 길고양이 밥그릇에 조심스럽게 사료를 부어주었다. 그러고는 고양이의 등을 살살 쓰다듬어 주며 "너라도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험한 세상에…."라고 속삭였다. 나는 그 순간, 김 씨 아저씨의 굽은 등 뒤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을 보았다. 자신도 힘들면서, 더 작은 존재를 보듬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희미한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그의 손길이 닿자 고양이는 갸르릉거리며 그의 발목을 비볐다. 어쩌면 이 고양이에게, 김 씨 아저씨는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밤새도록 달동네를 비췄다. 내 빛 아래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의 삶 속에는 각자의 꿈과 좌절, 그리고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작은 희망이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보며, 내일 밤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나를 찾아올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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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여러분이 느끼는 좌절의 뒤편에는 어떤 희망이 숨어 있나요? 그리고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그 희망을 찾아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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