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기 삐삐의 " 나의 하루 "
(3화) 도시의 속도 그리고 우리의 시간
"나의 '삐-삐-'는 더 이상 '사랑해'가 아니라, '빨리 와!'를 외쳤다. 모두가 더 빠르게, 더 바쁘게 움직였다. 나의 울음은 여전했지만, 그 울림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었다. 나는 시대의 속도에 길을 잃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들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나의 울림도 덩달아 다급해졌다. '8282(빨리빨리)'는 더 이상 친구의 장난이 아니었다. '9878(구팔하고칠팔-급한일)' 같은, 숨 가쁜 숫자들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주인은 나의 울림이 들릴 때마다 서류 가방을 움켜쥐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나는 그의 허리춤에 매달려 함께 숨을 헐떡였다. 나는 그렇게 도시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작은 시계추가 되어갔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주인이 삐삐를 들여다보며 "젠장, 9878이네. 늦었잖아!" 하고 절규했다. 나는 그의 허리춤에 달린 채로 함께 뛰었다. 공중전화 부스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던 중, 그는 삐삐를 꺼내 들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전화번호를 외울 시간이 없네."
그리고는 허둥지둥 메모장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나는 속으로 '내가 그 번호 좀 외워서 대신 전화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보여줄 수만 있을 뿐,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무력함을 느꼈다.
그때,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새로운 존재가 등장했다. 주인은 어느 날 손에 쥐기 쉬운, 작고 네모난 기계를 들고 왔다. 그 기계는 액정이 나보다 훨씬 컸고, 놀랍게도 음성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 기계를 '핸드폰'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한 장난감인 줄 알았다. 주인은 여전히 나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지만, 핸드폰의 등장 이후로 나의 울림에 반응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삐~삐~' 하고 울리면, 주인은 나를 확인하고 공중전화로 달려가는 대신, 핸드폰을 꺼내 들고 그 자리에서 통화를 했다. 나는 주인의 허리춤에서 핸드폰의 '여보세요?'라는 인사를 들으며, 묘한 질투심에 휩싸였다. 핸드폰은 주인의 모든 것을 직접 전해주었지만, 나는 그저 '신호'만을 전달할 뿐이었다.
나는 '느림의 미학'을 가진 존재였다. 메시지를 받고 공중전화까지 달려가 전화를 거는 그 시간. 그것은 단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기다림의 설렘이 있었고, 뛰는 동안 마음을 정리하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핸드폰은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해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기다리는 법을 잊어버리고, 즉각적인 소통에 익숙해졌다.
나는 가끔 생각했다. '삐-삐-' 울림에 맞춰 공중전화까지 달려가던 그 시간, 그 속에 담긴 간절함과 열정. 그것은 핸드폰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가치였다. 나는 그저 숫자를 보여주었지만, 사람들은 그 숫자를 해독하고, 공중전화로 달려가고, 동전을 넣고, 통화 버튼을 누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기다림을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삐삐의 울림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핸드폰의 벨소리가 차지해갔다. 나는 서서히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여전히 '8282'를 외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제 나에게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기다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대의 '빨리빨리'에 지쳐있지는 않은가요? 때로는 멈춰 서서 기다리는 것,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삐삐 단축숫자 퀴즈
3000 , 486, 9878 삐삐 단축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