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기 삐삐의 " 나의 하루 " (1~5화)
(4화) 희미해지는 존재감
"나의 울림은 멈추었다. 허리춤에 매달려 세상을 보던 나의 시선은 서랍 속의 어둠에 갇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삐-삐-' 울리지 않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나의 심장은 여전히 과거의 숫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의 속도는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핸드폰은 점점 더 작아지고 똑똑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공중전화를 찾지 않았고, 거리의 공중전화 부스는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한때 나의 울림에 맞춰 정신없이 뛰어가던 주인도 이제는 핸드폰을 귀에 대고 웃거나, 인상을 쓰거나, 통화를 마칠 때마다 "아이구, 요놈 때문에" 하면서도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주인의 허리춤에서 멀어져 갔다. 처음에는 서류 가방 속, 그다음에는 책상 서랍 위. 그리고 마침내, 나는 서랍 깊숙한 곳에 던져졌다. 나의 마지막 울림은 희미하고 간절한 "119"가 아닌, 주인의 "아이고, 이제 쓸 일이 없네." 하는 덤덤한 한숨이었다. 나의 심장은 멈추었고, 액정은 텅 비었다. 나는 그렇게 어둠 속에 갇혔다.
서랍 속은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도시의 소리를 듣지 못했고,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잊지 않았다. 내가 전했던 수많은 숫자들. '1004'의 달콤함, '7942'의 유쾌함, '8282'의 다급함, 그리고 '0000'의 슬픔까지. 그 모든 감정의 파동이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서랍 속의 어둠은 나의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결국 이렇게 서랍 속에서 잊혀질 존재였던가?' 나의 울림이 멈추자, 나의 존재 가치도 함께 사라진 것만 같았다. 세상은 나를 대신할 더 빠르고 더 편리한 존재를 찾았고, 나는 시대의 흐름에 버려진 고물에 불과했다. 나는 마치 한때의 유행을 마치고 쓸쓸하게 퇴장하는 유행가 가수 같았다. 나의 노래는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낡은 음반처럼.
나는 잊혀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서랍 속에서 잠시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나의 역할은 끝났지만, 나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주인의 젊은 날을 함께했던 친구였고, 그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삶의 희로애락을 지켜본 무언의 동반자였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더 이상 '삐-삐-' 울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이미 내 역할을 충분히 다했고,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으니까. 나의 하루는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잊혀진 추억'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추억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어쩌면 잊혀진 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삐삐 단축숫자 퀴즈
5448, 8255, 8924,1100 삐삐 단축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