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동네 큰 느티나무의 " 나의 하루 "(1~3화)
(1화) 아침 밥상보다 풍성한 시골 아침 풍경
나는 '오지라퍼' 느티나무입니다
"500년 참견 인생, 웬만한 인간보다 낫지 않소?" ㅎㅎㅎ
나는 느티나무입니다. 나이를 굳이 따지자면… 올해로 한 527살쯤 되었나? 인간들 기준으로 보면 조선 성종 임금님이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아, 이제 좀 나라 꼴이 잡히는군!" 하시던 그 즈음, 쪼끄만 묘목으로 이 자리에 뿌리를 내렸지요. 그러니 이 마을의 산증인이자, 터줏대감이자, 뭐, 솔직히 말하면 제일 가는 '오지라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 몸뚱어리 한번 보소. 웬만한 아파트 10층 높이는 훌쩍 넘고, 허리둘레는 장정 대여섯이 팔을 벌려도 다 감싸지 못할 겁니다. 이 덩치 값을 하느라 지난 500년 넘는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품어왔습니다. 내 굵직한 가지 위에서는 까치 부부가 78대째 집을 짓고 새끼를 쳤고, 내 그늘 아래에서는 동네 꼬마들이 코를 흘리며 딱지치기를 하다가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지팡이를 짚고 찾아와 옛이야기를 나누곤 했지요.
어디 그뿐이오? 갓난아기의 첫 울음소리부터 시작해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달콤한 밀어, 먹고사는 문제로 벌이는 부부의 치열한 언쟁,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선비들의 통탄, 심지어는 술주정뱅이의 넋두리까지. 내 넓은 품은 그 모든 소리를 기억하고 있소. 바람이 내 잎사귀를 스칠 때마다 그들의 이야기가 '사사삭' 소리를 내며 되살아나는 것만 같지요.
인간들은 내가 그저 말없이 서 있는 나무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에! 나는 온몸으로 듣고, 온몸으로 생각하고,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이야기꾼입니다. 내 나이테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있고, 내 우람한 둥치는 이 마을의 희로애락이 새겨진 거대한 비석과도 같지요.
이제부터 이 늙은 나무가 500년 묵은 '오지랖'으로 엿본, 지지고 볶고 울고 웃는 인간 세상의 하루를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 ㅎㅎㅎ. 내 이야기가 때로는 씁쓸하고,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콧등을 시큰하게 만들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느티나무의 주책 맞은 수다 속에서 여러분이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여러분의 삶을, 그리고 우리네 세상을 한번쯤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시작해 볼까요?
"허허, 이놈의 아침부터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먼!"
새벽 4시 반, 아직 별들이 총총한 하늘 아래, 나는 이른 아침을 맞이합니다. 밤새도록 차가운 이슬을 머금고 있던 내 잎사귀들은 동풍에 몸을 맡기고 '쏴아아' 하고 속삭이며 잠을 깨웁니다.
가장 먼저 들려오는 소리는 멀리서 '꼬끼오!' 하고 우렁차게 울어대는 수탉의 알람 소리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밭으로 향하는 트랙터의 '덜컹덜컹' 거친 엔진 소리가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릅니다.
내 아래를 가장 먼저 지나가는 이는 낫을 들고 밭으로 향하는 김 영감입니다. 허리가 90도로 꺾여 땅만 보며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낫은 아직도 펄펄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빛납니다.
"아이고, 이놈의 풀은 캐도 캐도 끝이 없네. 꼭 잔소리 해대는 마누라 같구먼 ㅎㅎㅎ." 영감의 혼잣말이 새벽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흩어집니다.
나는 가장 시원한 바람을 보내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줍니다. '수고 많으시오, 영감. 당신의 땀방울이 이 땅을 비옥하게 하는 비료라오.'
동이 트고 햇살이 논밭 위로 황금빛 이불을 깔기 시작하면, 동네는 비로소 활기를 띠기 시작합니다. 내 주위는 온갖 소리로 가득찹니다.
"얘야, 아침 먹어라!"
엄마의 구수한 외침에 잠이 덜 깬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쳐나오고, 그 옆집에서는 강아지가 "멍멍!" 짖으며 꼬리를 흔듭니다. 갓 지은 밥 냄새와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내게로 밀려옵니다.
이 풍경이야말로 도시의 그 어떤 아침 드라마보다 생생하고 진솔한 삶의 모습이지요.
저기 건너편 이 씨 아줌마 좀 보소. 고무장갑을 끼고 마당에서 김치통을 씻으며 옆집 박 씨 아줌마와 열띤 수다를 떨고 있네요.
"아유, 박 씨네 둘째가 어제 서울에서 내려왔다매? 결혼은 언제 한대유?" "말도 마유! 요새 젊은 것들은 지들 하고 싶은 대로 살지, 우리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유!"
한바탕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내 가지 사이를 통과하며 맑은 아침 공기를 가릅니다. 쯧쯧, 그래도 그들의 대화 속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정이 묻어납니다. 이 느티나무는 그 모든 것을 귀 기울여 듣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풍경은 역시 학교 가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노란색 스쿨버스 정류장이 바로 내 아래에 있거든요. 졸린 눈을 비비며 가방을 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숙제를 베끼기도 하고, 얄궂은 장난을 치며 깔깔거립니다.
어제는 이빨이 빠진 철수가 "뺀 이빨을 지붕위로 던지면 새 이빨 나온대!" 하며 자랑을 했고, 오늘은 짝꿍 지혜의 머리를 잡아당기다 혼나는 영철이도 보입니다.
저 조그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있습니다. 저 아이들이 자라서 또 어떤 어른이 될까? 500년 넘게 지켜봐 왔지만, 인간의 성장과 변화는 늘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떤 날은 면사무소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내 밑에서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이놈의 복잡한 서류는 왜 이리 많은지… 젊은 것들은 척척 잘도 하더구먼."
나는 가장 부드러운 바람을 보내 할머니의 어깨를 토닥여 줍니다. '괜찮아요, 할머니. 급할 것 뭐 있나요. 시골 사는 맛이 바로 이 여유에 있는 것을.'
이렇게 가지각색의 사연을 품은 이들이 내 아래를 스쳐 지나갑니다. 나는 그들의 바쁜 걸음과 소란스러운 아침을 묵묵히 지켜봅니다. 그들은 모두 다른 방향으로 향하지만, 결국 '오늘'이라는 똑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여행자들이지요. 나는 그들의 여정이 부디 고단하지만은 않기를, 그리하여 저녁에는 평안한 얼굴로 다시 내게 돌아오기를 바라며, 가장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모아 그들의 머리 위로 솔솔 뿌려줍니다. 시골의 아침은, 그렇게 하루의 풍성한 시작을 알립니다.
나의 생각!
오늘 여러분의 아침은 어떠셨나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뜨고, 허둥지둥 하루를 시작하셨을 겁니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은 때로 지겹고, 그저 빨리 지나가야 할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500년 된 느티나무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평범한 아침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하룻밤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생을 이어가려는 숭고한 의지가 있고, 누군가의 하루를 응원하는 따뜻한 목소리가 있으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작은 발걸음들의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의 곁을 스쳐간 풍경과 사람들을 잠시 떠올려보세요.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었을까요? 여러분의 하루를 열어준 그 모든 '당연한 것들'에게 조용한 감사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장 빛나는 하루는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오늘'이라는 이름의 아침을 어떻게 발견하고 맞이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의 평범한 아침이 실은 가장 눈부신 순간임을 기억하세요.



이야기가 있는 아침! 오늘 아침도 덕분에 '부시시' 아니고, '사사삭~'^^
감사합니다!. 사사삭하는 하루 되어 보아요~! ^^
작가님 저 느티나무 실존하는 나무인가요? 식물이 영물이되기까지 500년이 걸린다죠. 나무밑에 앉아 느티나무의 영엄한 기운을 받고 싶어 문득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실존하는 특정 느티나무를 모티브로 한 것은 아니구요. 시골 동네 어귀에는 항상 큰 느티나무가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