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담은 호수 "나의 하루"(1~5화) - (4화) 황혼의 그림자, 그리고 고백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세상을 담은 호수 "나의 하루" (1~5화)

(4화) 황혼의 그림자, 그리고 고백


"하루의 끝, 황혼은 모든 것을 붉게 물들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 나는 누군가의 가장 깊은 속마음을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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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지나간 뒤, 세상은 한결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맑게 씻겨난 나뭇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하늘은 진한 파란색을 뽐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고요를 만끽했다. 이제 곧 하루가 저물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바로 황혼.

서쪽 산등성이에 걸린 해는 온 세상에 붉은 물감을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색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푸른색, 주황색, 붉은색, 그리고 보라색까지. 하늘의 모든 색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나는 거대한 캔버스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나를 찾았다. 

나는 그들의 카메라 렌즈 속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그들의 추억이 되었다.

그때, 한 노인이 나의 물가에 앉았다. 그는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물고기를 잡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저 멍하니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고, 눈빛은 깊은 슬픔을 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마음속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당신은 왜 그렇게 슬퍼 보이나요?"

물론 나는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물결은 조용히 그의 발밑에 다가가, 작은 파동으로 위로를 건넸다. 노인은 나의 작은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낚싯대를 거두고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호수, 참 정직하군. 내 쭈그러든 얼굴을 그대로 비춰주니 말이야."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목소리는 쉰 듯 갈라져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너무나 선명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돈을 좇아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삶,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놓쳤던 후회, 그리고 이제 와서야 깨달은 인생의 덧없음. 그의 이야기는 마치 낡은 흑백영화처럼 내 안에 재생되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를 비추는 내 모습은 잠시 흔들렸다. 그의 후회와 슬픔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지만, 그가 마음껏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도록 넓은 품을 내어주었다. 

나는 그의 눈에 맺힌 눈물까지도 담았다.

노인은 한참을 이야기한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나의 물가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돌멩이는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원형의 파동을 만들었다. 그 파동은 점점 더 커져 나의 끝까지 퍼져나갔다. 노인은 나의 작은 파동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호수. 오늘은 자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의 걸음걸이는 처음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나는 그를 위해 작게 흔들렸다. 그의 마음에 내가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세상은 어둠에 잠겼다. 나는 노인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나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루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지만, 오늘 이 황혼의 시간만큼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을 담고, 그들의 속마음을 들어주는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나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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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인생은 한낮의 소란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만, 황혼의 고요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다.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잊곤 한다. 그러나 멈춰 서서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삶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다. 진정한 위로는 거창한 조언이 아니라, 묵묵히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 주는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여러분의 삶 또한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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