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불알 전구 밑에서 태어난 못난이
"어머니의 손은 나보다 거칠었다. 내 몸인 털실이 그녀의 갈라진 손끝에 걸려 올이 풀릴 때마다, 나는 그녀의 고단함을 훔쳐보았다."
나는 내가 태어난 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1982년 12월의 어느 늦은 밤, 아니 새벽이었다. 천장에는 줄 하나에 의지해 대롱대롱 매달린 30촉짜리 백열등—사람들은 그걸 보고 '불알 전구'라 불렀다—이 껌벅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문풍지가 피리리 소리를 내며 울었고, 그 바람에 전구가 흔들리면 방 안의 그림자들도 춤을 췄다.
"아이고, 눈 침침해라..."
나를 만들고 있는 '조물주', 철수 엄마는 돋보기 너머로 눈을 비볐다. 그녀의 손에는 차가운쇠바늘(대바늘)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절그락, 절그락. 쇠 부딪치는 소리가 적막한 방 안에 울렸다. 아랫목에는 남편과 아이 셋이 한 이불을 덮고 짐짝처럼 엉켜 자고 있었다. 유일하게 깨어 있는 건, 그녀와 나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 재료는 최상급이 아니었다.
시장에서 사 온 싸구려 '까칠이 털실'과 작년에 철수 누나 조끼를 뜨고 남은 자투리 실, 그리고 못 입는 스웨터를 풀어서 나온 꼬불꼬불한 실(일명 '라면 실')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내 몸은 알록달록하다 못해 얼룩덜룩했다.
하지만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 건 재료의 질이 아니었다. 바로 엄마의 손이었다. 겨우내 찬물에 빨래하고 연탄을 갈아대느라, 엄마의 손끝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녀가 바늘을 움직일 때마다, 내 부드러운 털실 올이 그녀의 굳은살에 걸려 틱, 틱 소리를 냈다.
'아얏! 엄마, 손에 로션이라도 좀 바르고 해요.'
내가 마음속으로 외쳐봤자 소용없었다. 그녀의 손등에는 붉게 튼 자국이 선명했다. 그 틈새에 낀 때 묻은 연탄 가루는 훈장처럼 박혀 빠지지도 않았다. 그녀는 졸음을 쫓으려는지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바늘을 놀렸다.
"우리 철수, 내일 학교 가면 손 시릴 텐데... 이거라도 끼고 가야지."
한 코, 한 코. 그녀의 한숨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매듭이 되었다. 그녀의 걱정이 내 몸의 공기층이 되었다. 가난해서 미안하고, 더 좋은 걸 못 사줘서 미안한 그 마음이 촘촘하게 엮여 나라는 존재를 만들었다.
새벽 4시쯤 되었을까. 드디어 마지막 코막음이 끝났다. 나는 비로소 '오른쪽 벙어리장갑'이 되었다. 모양은 투박했다. 엄지손가락은 너무 컸고, 손목 고무단은 헐거웠다. 백화점에 걸린 매끈한 기계직 장갑과는 비교도 안 되는 '못난이'였다.
엄마는 완성된 나를 쭈글쭈글한 뺨에 가져다 댔다. 까칠한 내 털실의 감촉보다, 그녀의 뺨이 더 거칠었다.
"따뜻하네... 우리 막내, 올겨울은 이걸로 버티자."
그녀는 나를 머리맡에 두고서야 쪽잠을 청했다. 꺼져가는 연탄불 온기보다 더 뜨거운 것이 내 몸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엄마의 체온이자, 낡아 빠진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연료였다. 나는 그 새벽, 불알 전구 밑에서 세상 무엇보다 위대한 유산으로 태어났다.
(1화) 가난의 탯줄: 잃어버리면 죽는다
"우리는 줄로 묶여야만 했다. 낭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짝이라도 잃어버리면 다시는 살 수 없다'는 가난의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다."
아침이 밝았다. 윗목에 놓인 대야의 물이 꽁꽁 얼어붙을 만큼 살인적인 추위였다. 철수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엄마는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두었던 밥그릇(밥이 식지 말라고 넣어둔)을 꺼내며 철수를 재촉했다.
"철수야, 학교 가야지. 자, 이거 껴봐라."
엄마가 내민 것은 나와 내 형제 '왼손이'였다. 철수는 잠결에 우리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아, 뭐야. 색깔이 왜 이래? 짬뽕이잖아." "주는 대로 써! 털실 살 돈이 어딨어? 남는 거 모아서 뜬 거야."
엄마는 철수의 불평을 등짝 스매싱으로 잠재우고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바로 '긴 털실 끈'이었다. 엄마는 돗바늘에 내 몸과 같은 재질의 실을 꿰어, 내 손목 안쪽을 뚫고 지나갔다. ‘윽! 엄마, 살살 좀 해요!’ 그리고 반대쪽 끝을 왼손이에게 연결했다. 우리는 약 1미터 20센티미터의 끈으로 묶인 '연좌제 공동체'가 되었다.
"철수야, 잘 들어. 장갑 잃어버리면, 그땐 네 손모가지가 어는 게 아니라 내 손에 죽는 거야. 알았어?"
엄마의 경고는 살벌했다. 그 시절 장갑 한 켤레는 사치품이었다. 잃어버렸다고 툭하면 다시 사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이 '끈'은 철수의 보온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가계부를 지키기 위한 '도난 방지 시스템'이었다.
엄마는 철수의 잠바 소매 안으로 나를 집어넣었다. 어두운 등판을 지나 반대편 소매로 끈을 빼냈다. 철수는 양팔을 벌려 십자가 모양을 만들었다. 팽팽해진 끈이 철수의 등 뒤를 간지럽혔다.
"아, 불편해! 애들이 놀린단 말이야." "시끄러. 잃어버리고 들어오기만 해 봐."
등굣길, 칼바람이 철수의 뺨을 후려쳤다. 철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했지만, 우리(벙어리장갑)의 부피가 너무 커서 잘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철수는 우리를 낀 채 가방끈을 꼭 쥐었다. 나의 붉은 몸통은 철수의 손등을 덮었다. 철수의 손은 텄고, 손톱 밑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하지만 내 안으로 들어온 그 작은 손은 난로처럼 뜨거웠다.
‘철수야, 따뜻하지? 우리 엄마가 밤새 만든 거야.’ 나는 내 안의 올을 부풀려 공기를 머금었다. 바깥의 냉기를 막아내기 위해 온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자마자 사건이 터졌다. "야! 김철수! 너 그게 뭐냐? 여자애 거냐?" 반장 녀석이었다. 녀석은 꽤 잘사는 집 아들이라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철수는 얼굴이 벌게져서 나를 홱 벗어던지려 했다. 하지만, 끈. 그놈의 끈이 문제였다.
철수가 장갑을 벗자, 나와 왼손이는 바닥에 떨어지는 대신 철수의 소매 끝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춤을 췄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푸하하! 야, 쟤 장갑 그네 탄다!"
철수는 씩씩거리며 매달린 나를 낚아채 다시 손에 끼워 넣었다. 거칠게 잡아당기는 통에 연결 부위의 매듭이 조여와 내 목을 졸랐다. 아팠다. 하지만 나는 철수가 미밉지 않았다. 그 끈 덕분에 나는 차가운 흙바닥에 버려지지 않았으니까.
점심시간, 철수가 운동장에서 뛰놀다 콧물을 훌쩍였다. 휴지? 그런 건 주머니에 없었다. 철수는 자연스럽게 나(오른손)를 들어 올려 코 밑으로 가져갔다.
‘안 돼! 철수야! 제발!’ 쓰윽.
누런 콧물이 내 붉은 털실 위로 길게 펴 발라졌다. 차가운 바람에 콧물은 금세 딱딱하게 굳어, 내 몸 위에 반짝이는 갑옷이 되었다. 냄새나고 축축했지만, 나는 견뎠다. 이것이 80년대 소년의 냄새다. 엄마가 밤새 떠준 정성 위에, 아들의 흔적(콧물)이 덧입혀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가족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내 꼬라지를 보고 혀를 찼다. "아이고, 이 화상아. 장갑을 걸레로 쓰냐?" 엄마는 나를 벗겨 아랫목 이불 밑에 넣어주셨다. 밥공기 옆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굳어버린 콧물을 녹이며 생각했다.
이 끈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 철수의 자존심과 함께 시궁창에 버려졌을지도 모른다. 가난했기에 묶어야 했고, 묶였기에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다. 그 시절의 사랑은, 그렇게 질기고 투박한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의 생각!
가장 귀한 것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만들어진다. 화려한 조명 아래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에는 '기능'이 담기지만, 희미한 백열등 아래 어머니가 뜬 장갑에는 '생명'이 담긴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뼈와 살을 깎아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수공예품이다.
가난은 우리를 불편하게 했지만, 동시에 우리를 결속시켰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요즘, '줄 달린 장갑'처럼 서로를 옭아매서라도 놓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까? 때로는 구속이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탯줄처럼.





내일 당장 끈달린 벙어리장갑 사러, 다이소 출동==33 짧은 글이지만, 읽은 뒤에 더 오래도록 따뜻함이 남는 이야기가 될 거 같아요~^^
모카가 좋아요님! 안녕하세요? 다이소 나도 함 가야지~^^ 울엄마가 뜨게질 잘 하셨는데...,
어릴 때 할머니가 떠주신 빨간색 벙어리장갑이 생각나네요^^
와우! leejh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올해 가기전에 와 주셨군요!^^ 잘 지내셨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더욱 건강하세요!^^
와우~댓글러 완전제 ㅋㅋ leejh님도 행복한 연말연시되세요! 내년에는 힘나는 일, 돈되는 일만 가득하시긿ㅎ
댓글러 완전체ㅋㅋㅋㅋ 내년에는 더 자주 댓글을 달겠습니다요~ 작가님도 모카가 좋아요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