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달린 엄마표 벙어리 털장갑(1~5화) - (4화) 끊어진 줄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4화) 끊어진(이제는 혼자 손을 비벼야 할 시간)

"십 년을 이어온 우리의 탯줄이 끊어졌다. 주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넘어져도 혼자 일어설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산동네의 시간은 더디게 흘렀지만, 철수의 성장 속도는 빨랐다. 어느덧 철수는 변성기가 찾아와 목소리가 굵어졌고, 코밑에는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나(오른이)와 왼손이의 상태였다. 우리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엄마가 처음 우리를 만들었던 80년대 초반의 크기 그대로였다. 철수의 손은 이제 어른 손만 해졌다.

"아, 진짜 안 들어가네!"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철수는 억지로 제 큰 손을 내 작은 몸속으로 구겨 넣었다. 내 털실 조직들이 비명을 질렀다. 

'주인님! 살려주세요! 찢어질 것 같아요!' 

특히 엄마가 초록색 실로 두툼하게 기워주셨던 내 엄지 부분은 이제 너무 꽉 끼어서, 철수의 엄지손가락 혈액순환을 방해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철수는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새 장갑을 살 형편이 안 되기도 했지만, 철수에게 우리는 단순한 장갑 이상의 '애착 인형'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빨간 털실 줄'이었다. 덩치가 산만 해진 중학생이 줄 달린 벙어리장갑을 목에 걸고 다니는 모습은, 내가 봐도 좀 우스꽝스러웠다.

"야, 넌 아직도 끈 달고 다니냐? 마마보이냐?" 

학교 친구들의 놀림에 철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철수는 홧김에 우리를 잡아당기곤 했다. 그때마다 줄은 팽팽하게 긴장하며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산동네 비탈길은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빙판으로 변했다. 사건이 터진 건, 토요일 오후였다. 아버지가 허리를 다치셔서 누워 계신 탓에, 연탄 배달을 철수가 직접 해야 했다.



"으라차차!"

철수는 지게에 연탄 스무 장을 싣고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굴은 연탄 가루 범벅이었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나와 왼손이는 철수의 손에 끼워진 채, 지게 작대기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조심해라! 미끄러진다!" 동네 어르신이 소리쳤다.

그 순간이었다. 철수의 낡은 운동화가 빙판을 밟고 미끄러졌다. 휘청. 무거운 지게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렸다. 철수는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본능적으로 양팔을 허공에 휘저었다.

툭.

둔탁하면서도 날카로운 소리가 내 귀(손목 부분)를 때렸다. 동시에, 십 년 동안 나를 반대편에서 잡아당기던 익숙한 장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나는 철수의 오른손에 여전히 끼워져 있었지만, 무언가 허전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바닥을 보았다. 새하얀 눈 위에, 내 반쪽 '왼손이'가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왼손이의 손목 부분에는, 삭둑 끊어진 빨간색 털실 꼬투리가 뱀의 혀처럼 나와 있었다.

내 손목을 확인했다. 내 쪽 줄도 끊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 철수의 땀과 때에 절어 삭을 대로 삭았던 털실 줄이, 철수가 팔을 휘젓는 순간적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우리의 탯줄이, 우리의 생명선이, 그렇게 허무하게 끊어졌다.


철수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 멈춰 섰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철수가 자신의 빈 왼손과, 바닥에 떨어진 왼손이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숨을 죽였다. 철수가 울음을 터뜨릴까? 아니면 엄마에게 달려가 다시 이어달라고 떼를 쓸까? 8살 때의 철수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열여섯 살의 철수는 달랐다. 그는 덤덤하게 허리를 굽혀 눈밭에 박힌 왼손이를 주워 올렸다. 까만 연탄 가루가 묻은 눈을 탁탁 털어냈다.

그리고는 끊어진 줄의 양쪽 끝을 바라보았다. 지저분하게 풀린 실오라기들. 철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끊어진 줄을 묶지 않았다. 대신, 줄의 남은 부분을 돌돌 말아 각자의 장갑 손목 안으로 쑤셔 넣었다.

"거추장스러웠는데, 잘 됐네."

철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는 줄이 없어진 왼손이를 왼손에 끼웠다. 이제 나와 왼손이는 완전히 독립된 개체가 되었다. 철수가 팔을 아무리 휘저어도 서로 부딪히거나 꼬일 일이 없었다.

자유였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불안감이 밀려왔다. ‘주인님, 이제 잃어버리면 끝이에요. 저를 꼭 잡으셔야 해요.’

철수는 다시 지게를 지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손이 시려오자, 철수는 지게를 잠시 내려놓고 양손을 맞비볐다.

쓱싹, 쓱싹.

줄이 없으니 양손을 비비는 동작이 훨씬 자유롭고 힘이 있었다. 나는 철수의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마찰열을 느끼며 깨달았다.

아, 우리 주인은 이제 더 이상 끈에 묶여 보호받아야 할 어린애가 아니구나.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옭아매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물건을 챙기고, 시린 손을 혼자 힘으로 비벼서 녹일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끊어진 줄은 이별의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수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졸업장'이었다. 나는 비좁아 터질 것 같은 내 몸 안에서, 훌쩍 커버린 주인의 뜨거운 손을 묵묵히 감싸 안았다. 줄은 끊어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 쌍이었다.



나의 생각!

"당신을 옭아매던 줄이 끊어졌을 때,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었나요?"

우리는 성장하면서 수많은 줄을 끊어냅니다. 부모의 과잉보호라는 줄,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고집이라는 줄... 그 줄이 끊어지는 순간은 두렵고 허전합니다. 더 이상 나를 잡아주는 안전장치가 없다는 뜻이니까요.하지만 그 줄이 끊어져야만 비로소 우리는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넘어져도 스스로 땅을 짚고 일어날 수 있고, 시린 손을 혼자 힘으로 비벼서 온기를 만들 수 있죠.

혹시 지금 의지하던 무언가가 끊어져 불안하신가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이제 혼자서도 충분히 따뜻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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