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물들러 왔습니다, 나의 이름은 가을(1~5화) - (4화) 단풍!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제4화. 단풍, '익어가는' 혁명

"망가진 게 아니에요. 가장 뜨겁게 사랑한 흔적일 뿐. 내 몸의 상처가 꽃이 되는 순간!"


하늘을 높이고, 바람을 말리고, 빛을 기울인 다음, 나는 비로소 나의 팔레트를 꺼내 듭니다. 이제 세상에 색을 입힐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단풍의 계절'이라 부르며 화려한 풍경에 감탄하지만, 사실 그 화려함 이면에는 비장한 결기가 숨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드뭅니다.

단풍은 나무들의 유희가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구조조정'이자, 잎사귀들의 숭고한 '자기희생'의 드라마입니다.

내가 기온을 뚝 떨어뜨리면, 나무는 본능적으로 겨울을 감지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몸집을 줄여야 합니다. 나무는 잎으로 가는 수분과 영양분 공급로를 차단하기로 결정합니다. 가지와 잎 사이에 '떨켜'라는 비정한 벽을 쌓는 것이죠.

잎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봄부터 여름까지 뜨거운 땡볕 아래서 '초록색 작업복(엽록소)'을 입고 광합성이라는 중노동을 하며 나무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쓸모가 다했다고 밥줄을 끊어버리다니요. 보통의 존재라면 배신감에 치떨며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지거나, 말라비틀어져 추하게 변해버릴 겁니다.

하지만 나뭇잎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나 '가을'의 제안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어이, 잎사귀들. 그냥 죽지 마. 억울하지도 않아? 평생 남(나무)을 위해 일만 하다 갈 거야? 

마지막 순간만큼은 너희 자신을 위해 가장 화려하게 타올라 봐. 너희 안에 숨겨둔 진짜 색깔을 세상에 보여주란 말이야!"

나의 선동에 잎들은 마지막 힘을 짜냅니다. 

수분이 끊기고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그동안 초록색 그늘에 가려져 있던 본연의 색소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옵니다. 붉은 안토시아닌이 끓어오르고, 노란 카로티노이드가 빛을 발합니다.

저 산을 붉게 태우는 단풍나무를 보세요. 그것은 부끄러움에 붉어진 게 아닙니다. 치열하게 살다 간 생명의 뜨거운 '피 울음'이자, 가장 열정적인 순간의 '절정(Climax)'입니다. 거리를 황금빛으로 뒤덮는 은행나무를 보세요. 비록 열매는 고약한 냄새를 풍길지언정, 그 잎만큼은 왕이 쓰는 금관보다 더 찬란한 위엄을 뽐냅니다.

나는 이것을 '색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여름 내내 '싱그러움'이라는 집단의 미명 아래 숨죽여 살았던 개개인의 자아가 비로소 폭발하는 순간이니까요. 

"나 여기 살아있었다! 나는 그저 그런 추 대리, 천 과장이 아니라, 사실은 이렇게 뜨거운 빨강이었고, 눈부신 노랑이었다!"라고 외치는 소리 없는 아우성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나요? '누군가의 엄마', '어느 회사의 직원', '착한 사람'이라는 초록색 보호색 속에 당신의 진짜 색깔을 숨기고 있진 않나요?

내가 당신의 삶에 시련이라는 찬 바람을 불어넣고, 관계의 단절이라는 떨켜를 만들 때,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때가 바로 당신의 진짜 색깔이 드러날 기회입니다. 상처받고 버림받는 과정에서, 어떤 이는 썩어가지만, 어떤 이는 발효되어 깊은 맛을 냅니다.

나는 저기 열린 '홍시'를 참 좋아합니다.

땡감 시절의 그 뻣뻣하고 떫은 자존심을버리고, 나의 볕과 서리를 온몸으로 맞으며 속을 흐물흐물하게 녹여낸 그 녀석. 겉은 터지고 뭉개져서 볼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제야 비로소 누구에게나 달콤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세상은 그걸 '망가졌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완벽하게 익었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젊음의 탱탱한 초록빛만을 찬양하지만, 나는 주름지고 색이 바랜 것들의 아름다움을 압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의 깊게 패인 주름살에서 나오는 그윽한 분위기, 그게 바로 '인간 단풍'입니다.

당신이 지금 힘들다면, 당신은 지금 가장 예쁘게 물들고 있는 중입니다. 

아파만 하지 말고, 그 아픔을 당신만의 색깔로 바꾸세요. 당신의 고통은 붉고, 당신의 눈물은 투명하게 빛나며, 당신의 인내는 황금처럼 고귀합니다. 나는 붓을 들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삶이 스스로 명작을 그려내고 있을 뿐입니다.


나의 생각!

가장 아름다운 색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터져 나옵니다. 단풍은 나무가 잎을 버리는 과정이 아니라, 잎이 나무에게 주는 마지막이자 최고의 선물입니다. 당신의 시련도, 상처도, 훗날 당신의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채색할 물감이 됩니다. 썩지 말고 익으세요. 당신은 지금 당신 인생의 절정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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