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비틀거리는 귀갓길: 80kg의 무게를 지탱하는 가장 낮은 위로 (23:00)
"세상이 그를 흔들 때, 유일하게 땅에 발붙이고 그를 잡아주는 존재. 취객의 필사적인 귀가 파트너, 그게 바로 나다."
밤 11시. 차가운 밤공기가 삼겹살 기름과 소주에 쩐 내 가죽 표면을 스치고 지나간다. 식당 문을 나서자마자 김 과장이 크게 휘청인다. "어이쿠!"
비상이다. 지금 그의 몸속 알코올 농도는 치사량 직전이다.
평소 80kg(추정)이었던 그의 체중은 술에 취하면 중력 가속도를 받아 순간적으로 100kg을 넘나든다. 그의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급격히 쏠린다. 나는 본능적으로 오른쪽 밑창 바깥쪽 가장자리에 모든 힘을 싣는다.
'버텨야 해! 여기서 미끄러지면 김 과장 무릎은 박살 나는 거야!'
끼익- 아스팔트 바닥과 내 밑창이 마찰하며 비명을 지른다.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휴, 십년감수했네. 김 과장은 자기가 잘 버틴 줄 알겠지만, 천만에. 내 밑창의 고무 그립이 아니었으면 그는 이미 가로수와 키스했을 거다.
집으로 가는 길, 세상은 김 과장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돈다. 그는 택시를 잡으려다 포기하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 우리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그림자 속에서 나는 그보다 훨씬 크고 듬직해 보인다.
‘철퍼덕, 쓱-’ 취한 그의 걸음걸이는 엉망진창이다.
멀쩡한 보도블록 턱에 걸려 앞코가 찍히고(아악! 내 얼굴!), 물 고인 웅덩이를 밟아 차가운 흙탕물이 가죽 틈새로 스며든다. 축축하고 찝찝하다. 아침에 그나마 남아있던 미약한 광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는 걸으면서 중얼거린다. "드러워서 못 해 먹겠네... 부장 그 XX... 우리 여보 미안해... 딸내미 학원비가..."
회식 자리에서는 상사 비위 맞추느라 하지 못했던 말들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나는 묵묵히 듣는다. 땅바닥에 가장 가까이 귀를 대고 있는 내가 아니면 누가 그의 이 지질하고 솔직한 속내를 들어주겠는가.
그의 발바닥에서 전해지는 진동이 울음처럼 느껴진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그의 발을 감싸 쥔다. 오늘 하루 수많은 이들에게 치이고, 밟히고, 굽신거리느라 잔뜩 움츠러든 그의 발가락들을. 세상이 아무리 당신을 흔들어대도, 나만큼은 끝까지 당신 발밑에 붙어서 중심을 잡아줄게. 그러니까 김 과장, 제발 똑바로 좀 걸어봐요. 집이 코앞이라고요.
[에필로그] 다시, 신발장: 냄새나는 안도감 (00:30)
쾅, 타닥, 툭!
현관문이 닫히고, 김 과장이 나를 벗어 던지는 소리다. 거의 발로 차내는 수준이다. 나는 현관 타일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왼쪽 짝은 뒤집힌 채 천장을 보고 있고, 오른쪽 짝은 신발장 모서리에 처박혔다.
"으어어... 다녀왔습니다..."
김 과장이 거실로 기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아내분의 잔소리 폭격이 시작되겠지만, 나의 임무는 여기까지다.
드디어 해방이다. 19시간 만에 주인의 체중과 발 냄새의 압박에서 벗어난 순간. 나는 쭈글쭈글해진 가죽을 최대한 펴보려 애쓴다. 아, 삭신이 쑤신다.
조용한 현관. 센서 등이 꺼지고 다시 익숙한 어둠이 찾아온다.
나는 천천히 오늘 하루 내 몸에 새겨진 영광의 상처들을 더듬어본다. 지옥철 하이힐에 찍힌 옆구리의 움푹 파인 자국. 점심시간 신입 녀석의 명품 구두 앞에서 기죽지 않으려 버티다 생긴 발등의 깊은 주름.
회식 때 튄 삼겹살 기름 얼룩은 벌써 가죽 깊이 스며들어 지워질 기미가 안 보인다. 그리고 아까 귀갓길에 보도블록에 긁힌 앞코의 생생한 스크래치까지.
엉망진창이네. 냄새는 또 어떻고. 땀과 술과 고기 냄새가 뒤섞여 아주 고약하다. 옆집 나이키 운동화 녀석이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리는 게 느껴진다. 흥, 온실 속 화초 같은 녀석. 이게 바로 '가장의 향기'라는 거다.
내일 아침이면 김 과장은 숙취에 시달리는 푸석한 얼굴로 다시 나를 찾을 것이다. 구둣주걱 따위는 쓰지 않고 또 내 뒤꿈치를 구겨 신겠지.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지옥철에 몸을 싣고, 누군가에게 밟히고, 어딘가에 부딪히며 하루를 버텨낼 것이다.
그게 나의 일이다. 낡고 볼품없지만, 그의 가장 무거운 짐을 가장 밑바닥에서 받아내는 일.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신발장의 어둠 속으로 편안하게 가라앉는다.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도 잘 부탁한다.
나의 생각!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혹시 오늘 누군가에게 밟히고, 어딘가에 부딪혀 상처받지는 않았나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현관에 벗어둔 당신의 신발을 한번 바라봐 주세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주름지고, 냄새나는 그 낡은 신발이 실은 오늘 하루 당신이 무너지지 않게 가장 낮은 곳에서 치열하게 버텨준 당신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음을 기억해주세요.
낡아간다는 것은 추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흔들림 속에서도 결국은 중심을 잡고 오늘을 살아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오늘 밤, 고생한 당신의 두 발과 낡은 신발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오늘 충분히 잘 버텨냈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저 낡은 구두처럼 주름지고 상처 날지라도, 그만큼 깊이 있고 단단해지고 있음을 잊지 마세요.


세상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고약한 일을 사명처럼묵묵히 해내고 있는 이런 신발같은(쓰고 보니 묘하게 욕 같은 느낌ㅎㅎ의도 한 건 아녀요^^;;) 존재들이 참 많아요! 내년엔 그런 그들이 더 많이 웃고 행복할 수 있는 밝은 세상이 만들어지길 기도하며, 모두 Happy new year! 입니다용~♡
모카가 좋아요님! 안녕하세요? 저 오래 살듯! ㅋㅋ 욕을 먹어서~(이런 신발~ ㅎㅎ) , 새해 건강하시고 행운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