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꼬맹이 셋과 죽음의 다운힐
"이보쇼 주인 양반! 내 브레이크는 장식이 아니라고! 제발 좀 살살 갑시다!" 오늘은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날, '움직이는 시한폭탄'들을 태우는 날이다.
주인 양반이 아침부터 걸레를 들고 내 몸 구석구석을 닦아대기 시작했다.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양반이 이럴 땐 딱 두 가지 이유다.
로또라도 맞았거나, 아니면 온 식구를 태우고 '자가용 놀이'를 하려거나. 불행히도 오늘은 후자다. 읍내 장날이란다.
나는 오늘 '짐 자전거'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가족 수송용 리무진'으로 둔갑해야 한다.
탑승객은 운전사 주인 양반, 그리고 그 밑에 딸린 꼬맹이 셋. 도합 네 명이다.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냐고? 7~80년대 대한민국 가장들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았다.
자, 인간 테트리스가 시작된다.
먼저 덩치 큰 첫째 놈이 내 넓은 짐받이 맨 뒤에 자리를 잡는다. 그 앞에 둘째 놈이 첫째 놈 허리춤을 부여잡고 찰싹 달라붙는다. 푹신한 안장도 아니고 딱딱한 쇠창살 위에 엉덩이를 구겨 넣고도 좋다고 낄낄대는 꼴이라니.
문제는 막내 녀석이다. 이 녀석의 지정석은 내 몸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부위, 바로 주인 양반의 사타구니 사이이자 내 목덜미와 안장을 잇는 '탑튜브(Top Tube)'라 불리는 쇠 파이프 위다.
"아이고, 주인 양반! 거긴 내 급소... 아니, 척추라고요! 애 엉덩이 배기는 건 둘째 치고, 내 허리가 휜다, 휘어!"
내 무언의 외침은 무시당한 채 탑승 완료. 주인 양반이 비장한 표정으로 페달에 발을 올린다.
"출발한다! 꽉 안 잡으면 굴러떨어져서 엿 바꿔 먹을 줄 알아라!"
주인 양반의 우렁찬 엄포와 함께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가용 나갑니다!" 신호탄이 울렸다. 내 무쇠 바퀴가 육중한 무게를 이기고 힘겹게 구르기 시작했다.
비포장 신작로에 들어서자마자 지옥이 시작됐다. 자갈이라도 하나 밟는 날엔 그 충격이 내 프레임을 타고 꼬맹이들의 엉덩이로 직행한다.
"아이고 엉덩이야!", "아빠, 똥꼬 아파!" 뒤에서 합창이 터져 나온다. 그럴 때마다 주인 양반은 "사내놈들이 엄살은!" 하며 되려 페달을 더 힘껏 밟아댄다. 주인 양반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 팽팽해지는 게 내 안장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래, 이게 가장의 무게를 견디는 엔진의 힘이지.
하지만 진짜 공포는 오르막이 아니라 내리막에 있었다. 동네 어귀를 지나면 나타나는, 일명 '깔딱 고개' 너머의 급경사 다운힐.
평소엔 짐을 싣고도 곧잘 내려가던 길이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인간 넷의 몸무게에 가속도까지 붙으면 이건 자전거가 아니라 폭주하는 기관차나 다름없다.
"야호! 신난다!" 철없는 막내 녀석이 내 목덜미를 잡고 환호성을 질렀다. 주인 양반도 신이 났는지 페달질을 멈추고 중력에 몸을 맡겼다.
'이, 이 무식한 양반아! 속도 줄여! 브레이크 잡으라고!'
내 속도 모르고 자전거는 점점 빨라졌다. 노면의 요철이 그대로 전해져 우리는 통통 튀어 올랐다. 뒤에 탄 녀석들의 웃음소리가 비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리막 끝 급커브가 눈앞에 다가왔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주인 양반이 다급하게 브레이크 레버를 움켜쥐었다. 나는 있는 힘껏 낡아빠진 브레이크 고무 패드를 바퀴 림에 밀착시켰다.
"끼이이익- 끼긱! 끽! 꾸에엑!"
내 단말마 같은 비명이 온 동네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엄청난 관성 때문에 바퀴는 쉽게 멈추지 않고 흙바닥을 주욱 미끄러져 나갔다. 꼬맹이들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앞사람의 허리춤을 생명줄처럼 파고들었다. 막내 녀석은 내 쇠 파이프를 너무 세게 잡아서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제발... 제발 멈춰! 이러다 논두렁에 다 처박힌다고!'
나는 마지막 남은 타이어의 마찰력까지 영혼을 끌어모아 바닥을 움켜쥐었다. 식은땀... 아니, 윤활유가 줄줄 흐르는 것 같았다.
천만다행으로, 자전거는 논두렁을 불과 몇 센티미터 남겨두고 멈춰 섰다. 뽀얀 흙먼지가 우리를 뒤덮었다.
정적.
잠시 후, 짐받이에서 "와... 살았다..." 하는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주인 양반도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거봐라! 아버지가 운전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한다니까!"
기가 막히기는 개뿔! 내 브레이크 수명이 오늘부로 3년은 줄어든 것 같다. 이 무모한 가장 덕분에 내 뼈마디가 남아나질 않는다. 그래도 뭐, 자전거에서 내려 흙먼지를 뒤집어쓴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깔깔대는 저 꼬맹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에휴, 그래. 오늘 고생한 보람은 있네. 다음엔 제발 걸어가소, 주인 양반!
나의 생각!
"그 시절의 행복은 참 무겁고도 위태로웠습니다. 푹신한 시트도, 안전벨트도 없는 쇳덩이 위에서 우리가 믿을 것이라곤 서로를 꽉 끌어안은 두 팔의 힘뿐이었으니까요. 조금은 위험하고 불편했지만,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던 그 시절의 온기가 가끔은 그립지 않으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