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오후 4시의 중력 투쟁 - 우리는 도시의 바닥을 지탱한다
"내 허리(프레임)가 비명을 지를 때, 저 앞에서 비상 깜빡이를 켠 채 길을 막고 있는 벤츠를 보았다. 그는 쌀 한 가마니의 무게를 알까?"
마의 오후 4시, 허리가 휘어진다.
인간으로 치면 당이 떨어져 손이 떨릴 시간이고, 기계인 나로 치면 윤활유가 말라 관절이 삐걱댈 시간이다.
내 주인 '김 씨' 아저씨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핸들바)에 닿았다. 오늘의 마지막 대형 배달이다. 시장 골목의 쌀집 앞에서 내 등 뒤의 짐칸에는 20kg짜리 쌀포대 다섯 개가 층층이 쌓였다. 도합 100kg.
‘으으윽... 주인 양반, 오늘은 좀 심하잖아!’
내 강철 프레임이 끙 소리를 내며 휘어졌다. 타이어는 비명을 지르며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하게 들러붙었다. 날렵한 로드 자전거나 전기로 가는 스쿠터 녀석들은 상상도 못 할 무게다. 그들은 바람을 가르지만, 나는 중력과 싸운다.
김 씨 아저씨가 안장에 앉지 못하고 서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나의 심장인 체인 링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끼릭, 끼기긱. 녹슨 체인이 힘겨운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한 몸이 되어 바닥을 밀어냈다.
우리가 실어 나르는 것은 단순한 쌀이 아니다. 누군가의 저녁 밥상, 식당의 매출, 이 도시를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다. 화려하진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무거운 책임감이 내 두 바퀴를 짓눌렀다.
시장 통을 빠져나와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우리 짐 자전거들에게 '통곡의 오르막'이라 불린다. 김 씨 아저씨의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나 역시 온몸의 나사를 조이며 버텼다.
그런데, 그 힘겨운 오르막 중간에 떡하니 길을 막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반짝이는 검은색 고급 세단. 벤츠였다. 녀석은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자전거 도로와 차도 절반을 걸치고 우아하게 정차해 있었다.
‘이봐, 비키라고! 지금 멈추면 다시 출발할 수가 없단 말이야!’
내 마음속 외침은 닿지 않았다. 운전석의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서 운전자는 에어컨 바람을 쐬며 통화 중이었다.
순간, 내 안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 매끈한 녀석은 태어나서 자기 몸무게 이상의 짐을 져본 적이 있을까? 흙탕물을 뒤집어쓰며 시장 바닥을 굴러본 적이 있을까? 그는 '편의'를 위해 멈췄지만, 우리는 '생존'을 위해 움직여야 했다. 도로 위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크고, 비싸고, 힘센 것들이 약하고 느린 것들의 길을 막는 건 예사다.
김 씨 아저씨는 욕설을 내뱉는 대신, 핸들을 틀어 아슬아슬하게 중앙선을 넘었다. 마주 오던 오토바이가 신경질적인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그 모든 위협과 곡예 운전은 온전히 아저씨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간신히 언덕을 넘어 배달지인 식당 후문에 도착했다. 쌀포대들이 쿵, 쿵 내려질 때마다 내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해방감과 함께 극심한 피로가 밀려왔다.
김 씨 아저씨가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아냈다.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 안장 위에 잠시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투박한 손으로 내 탑 튜브(몸통 프레임)를 툭툭 두드렸다.
"후우... 고생했다, 오늘도."
그 짧은 한 마디. 그리고 그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체온. 그 순간, 언덕길에서 느꼈던 분노와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벤츠의 주인은 결코 자기 차를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차는 소모품이나 과시용 액세서리겠지만, 김 씨 아저씨에게 나는 '동료'이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파트너'다.
내 몸 곳곳에 난 상처와 녹슨 자국들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났다. 그것은 부끄러운 흉터가 아니었다.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중력을 견뎌냈다는, 그 무엇보다 값진 '노동의 훈장'이었다.
나는 삐걱대던 몸을 잠시 쉬며 생각했다. 그래, 세상은 저 매끈한 세단들이 아니라, 나와 아저씨처럼 묵묵히 무거운 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는 존재들에 의해 굴러가는 거라고.
나의 생각!
여러분의 하루는 어떠셨나요? 혹시 감당하기 힘든 책임감의 무게 때문에 허리가 휘청이진 않으셨나요?
짐 자전거는 압니다. 무거운 것을 싣고 오르막을 오를 때, 멈추면 다시 출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페달을 밟아야만 합니다.
때로는 길을 막는 벤츠처럼, 타인의 무심함이 우리의 힘겨운 발걸음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화려한 삶을 사는 이들과 비교하며 초라함을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잊지 마세요. 도시를 지탱하는 가장 필수적인 것들은, 가장 낮고 투박한 곳에서 움직입니다. 오늘 당신이 흘린 땀방울과 당신의 마음에 난 생채기들은, 당신이 오늘 하루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가장 아름다운 훈장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늘 하루도 언덕을 넘어온 당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화 예고]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짐 자전거의 하루도 끝이 날까요? 천만에요. 김 씨 아저씨의 퇴근길, 텅 빈 짐칸에 실리는 의외의 '가벼운 승객'과 함께하는 밤거리 주행. (4화) <달빛 라이딩: 짐칸에 실린 가장 가벼운 행복>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