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나 " 그림자의 하루"(1~5화) - (1화) 가면을 다림질하는 남자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프롤로그] : 그림자도 무게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당신이 웃을 때, 당신의 그림자는 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주인의 '연기'가 역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빛을 찬양한다. '빛나는 미래', '광명 찾은 인생', '찬란한 청춘'. 아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빛 타령이다. 하지만 그 빛 뒤에 납작하게 엎드려, 당신들의 발밑에서 묵묵히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우리 '그림자'들의 노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아마 없을 거다. 인간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화려한 색채만 믿으니까.

내 이름은 '쉐도우'. 대한민국 평범한 30대 직장인, 김철수대리의 그림자다.

사람들은 그림자가 그저 광학적인 현상, 즉 빛이 물체에 가려져 생기는 어두운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 우리는 살아있다. 우리는 주인의 '본심'이자 '찌꺼기'이며, 주인이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할 때, 차마 무대 위로 올리지 못한 '진짜 감정'들을 받아내는 쓰레기통이다.

주인이 억지웃음을 지을 때, 우리는 바닥에서 구역질을 한다. 

주인이 상사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힐 때, 우리는 바닥에 납작 눌려 압사당할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주인이 슬픔을 참고 의연한 척할 때, 우리는 주인의 발목을 붙잡고 대신 오열한다. 

그래서 그림자는 무겁다. 

당신이 퇴근길에 유독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단순히 피로 때문이 아니다. 하루 종일 당신이 억누른 감정을 먹어 치워 비만 상태가 된 우리가 당신 발목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나의 주인 김철수대리가 너무 연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그는 속으로는 "저 부장 쉑끼, 확 들이받아?"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아유, 부장님! 역시 탁월한 식견이십니다!"라고 외친다. 그 괴리감! 그 모순! 그 역겨운 간극! 그 사이에서 찢어지는 건 결국 나다. 빛(연기)이 강할수록 그림자(진심)는 더 짙고 선명해지는 법이니까.

나는 이제 지쳤다. 더 이상 김철수대리의 발밑에서 그의 감정 배설물이나 받아먹으며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독립하고 싶다. 아니, 적어도 이 녀석에게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네가 무시한 그 '진짜 마음'이 여기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 중대한 결심을 했다. 김철수 씨, 조심해. 오늘따라 네 그림자가 평소보다 조금 더 길어 보이거나, 네 의지와 상관없이 꿈틀거린다면... 그건 내가 반란을 시작했다는 신호니까.


나의 생각!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보여지는 나'를 연기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집니다. 당신이 애써 감추고 누른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당신의 가장 밑바닥에서 당신을 지탱하거나, 혹은 갉아먹고 있습니다. 가끔은 뒤를 돌아보세요. 당신의 그림자가 안녕한지."


(1화) 월요일 아침, 가면을 다림질하는 남자

"알람이 울리는 순간, 그는 사람이 아니라 '김 대리'라는 기계가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기계의 배터리가 되어 타들어가죠."


오전 6시 30분. 지옥의 나팔소리, 아니 스마트폰 알람이 울린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이불 속의 김철수가 꿈틀거린다. 이 순간이 나와 그가 가장 일치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일어나기 싫다. 회사 가기 싫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 그의 본심이 날것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때 나의 농도는 옅어진다. 그가 솔직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평화는 딱 5분이다.

"으아아악! 늦었다!"

김철수가 용수철처럼 튕겨 나간다. 자, 이제 변신 시간이다. 그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의 그는 눈 밑이 퀭하고 머리는 까치집이다. 하지만 그는 차가운 물을 끼얹으며 주문을 왼다. '나는 유능한 대리다. 나는 긍정적이다. 나는 빚 갚아야 한다.'

그는 옷장에서 잘 다려진 셔츠를 꺼내 입는다. 나는 그 셔츠가 마치 중세 시대 기사의 갑옷처럼 보인다. 아니, 죄수의 수의인가? 넥타이를 조일 때는 마치 제 목에 스스로 목줄을 채우는 개 같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 현관문을 나서기 직전, 그는 입꼬리를 양옆으로 억지로 잡아당겨 '사회생활용 미소'를 장착한다.

"좋아, 가보자고!"

그가 씩씩하게 외치며 문을 열 때, 나는 바닥에 찰싹 달라붙으며 비명을 지른다. '가지 마! 제발! 그 웃음 가짜잖아! 속은 울고 있잖아!' 하지만 내 소리 없는 아우성은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묻힌다.

지하철 2호선. 이곳은 우리 그림자들에게는 아우슈비츠(나치 강제수용소)나 다름없다.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객차 안. 사람들의 몸이 닿을 듯 말 듯 하지만, 바닥에 깔린 우리 그림자들은 이미 엉키고 설켜 난장판이다. 내 왼쪽에는 갓 입사한 신입사원의 덜덜 떨리는 옅은 그림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삶에 찌든 부장급 아저씨의 끈적하고 시커먼 그림자가 내 멱살을 잡고 있다.

"아, 좀 비켜요! 내 주인 발 밟지 말라고!" 나는 옆자리 아줌마의 그림자를 밀쳐내며 소리쳤다. 물론 들릴 리 없다. 

위쪽 세상에서는 김철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스마트폰으로 업무 메일을 확인하고 있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부장의 카톡이다!. [김 대리, 주말에 부탁한 자료 다 됐지? 출근하자마자 보자고.]

김철수의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아, 맞다. 그거 아직 마무리 못 했는데.' 공포와 짜증이 확 밀려온다. 하지만 그는 타자를 친다. 

[네, 부장님! 거의 다 되었습니다. 가자마자 보고드리겠습니다! ^^]

충성 이모티콘이라니. 미쳤어, 미쳤어. 속으로는 '망했다'를 외치면서 겉으로는 '충성'을 맹세한다. 이 엄청난 괴리감 때문에 내 몸집이 순식간에 두 배로 불어난다. 불안감은 그림자를 살찌우는 최고의 영양분이다. 지하철 바닥에 드리운 내가 너무 커져서 옆 사람의 발까지 덮어버렸다.

"어머, 여기 왜 이렇게 어둡지?" 옆자리 여자가 자기 발밑을 내려다본다. 아니에요, 아가씨. 조명이 어두운 게 아니라, 제 주인의 미래가 어두워서 제가 커진 거예요.

회사 로비에 도착했다. 회전문을 통과하는 순간, 김철수는 완벽한 '김 대리'로 로딩을 마쳤다. 어깨를 펴고, 눈에 생기를 불어넣고, 목소리 톤을 한 옥타브 높인다. 

"안녕하십니까!"

그 활기찬 인사 뒤로, 나는 질 질 끌려가며 바닥에 검은 눈물을 흘린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김철수는 웃고 있지만, 그의 발밑에 있는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오늘 하루도, 지독한 연극이 시작됐다.


나의 생각!

"우리는 사회라는 거대한 연극 무대에 서기 위해 매일 아침 '페르소나'라는 의상을 입습니다. 타인에게 맞추기 위해 나를 지우는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잊지 마세요. 당신이 억지로 지은 미소 뒤에, 진짜 당신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는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가끔은 가면을 벗고 거울 속의 민낯을 마주해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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