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인스타그램 속의 나라인, 그리고 곰팡이 핀 반지하
"당신이 '좋아요'를 누른 그 사진의 프레임 밖 1cm를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제 주인의 화려한 온라인 라이프 뒤에는, 컵라면 국물 자국과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저의 서식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밤 11시. 드디어 김철수 대리가 '스위트홈'에 도착했다.
그의 스위트홈은 서울의 언덕배기에 위태롭게 매달린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102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익숙한 냄새. 덜 마른 빨래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와 며칠 전 먹다 남긴 컵라면 국물 냄새가 오묘하게 섞인,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향기다.
김철수는 좀비처럼 걸어 들어가 침대(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매트리스 하나가 전부인) 위로 쓰러진다.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회사에서의 나는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았다. 주인의 가식적인 미소와 비굴한 자세에 맞춰 내 몸을 비틀고 억누르느라 온몸이 결렸다. 하지만 이곳, 빛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 방은 우리 그림자들에게 최적의 서식지다.
형광등을 켜지 않는 이상, 나는 이 방의 어둠과 하나가 되어 마음껏 퍼질러질 수 있다. 나는 매트리스 밑으로 스스륵 미끄러져 들어가 눅눅한 장판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아, 살 것 같다.
하지만 나의 휴식은 짧았다. 김철수의 오른손이 습관처럼 바지 주머니를 더듬거린다. 나왔다. 현대인의 마약, 스마트폰.
그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스마트폰 화면을 켠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파르스름한 블루라이트가 그의 얼굴을 유령처럼 비춘다. 이 인공적인 빛은 나를 아주 기분 나쁘게 자극한다. 자연스러운 태양 빛과 달리, 이 빛은 나를 날카롭게 베어내는 느낌이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나는 그의 발밑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의 파고를 읽어낸다.
[사진 1: 대학 동기 A의 몰디브 신혼여행. 에메랄드빛 바다와 모히또.] -> 김철수의 감정: 부러움 40%, 질투 30%,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자괴감 30%.
[사진 2: 입사 동기 B의 오마카세 스시 인증샷. '역시 스시는 OO셰프님! #맛스타그램 #Flex'] -> 김철수의 감정: 배고픔 50%, '저 XX는 돈이 어디서 나서 맨날 저런 걸 처먹지?' 하는 짜증 40%, 초라함 10%.
[사진 3: 전 여친 C의 명품백 언박싱 영상. 행복해 보이는 그녀의 미소.] -> 김철수의 감정: ERROR. 분석 불가.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김철수의 자존감이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내면에서 우울한 습기가 뿜어져 나와 내 몸을 축축하게 적신다. 반지하의 곰팡이보다 더 독한 마음의 곰팡이다.
그때, 김철수가 벌떡 일어난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비장한 눈빛이다. '나도 질 수 없지. 나도 잘 살고 있다고!'
그의 처절한 '보여주기 쇼'가 시작되었다. 그는 좁아터진 방구석을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책상 한 구석, 가로세로 딱 30cm 공간을 목표로 삼는다.
그는 그곳에 쌓여있던 공과금 고지서와 먹다 버린 나무젓가락을 옆으로 대충 밀어낸다. (밀려난 쓰레기 더미 위로 내가 덮인다. 아이고, 냄새야.)
그는 찬장에서 먼지 쌓인 와인잔 하나를 꺼낸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다이소에서 산 2천 원짜리 잔이다. 거기에 내용물은... 아, 냉장고에 먹다 남은 콜라를 따른다. 색깔만 보면 레드 와인 같다. 그리고 침대 옆에서 무드등(이것도 다이소산)을 가져와 각도를 조절한다.
"찰칵. 찰칵."
수십 번의 셔터 소리. 그는 프로 사진작가 못지않은 진지함으로 콜라가 담긴 싸구려 와인잔을 찍어댄다. 프레임 밖은 쓰레기장이지만, 스마트폰 화면 속 그 30cm 공간만큼은 뉴욕의 고급 바(Bar) 부럽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는 이 기막힌 사기극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지켜본다. 그의 발밑으로 길게 늘어진 나는, 이 연출된 상황이 역겨워 몸을 비틀었다.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더러운 빨래 더미와 컵라면 용기들이 내 몸을 누르고 있다.
사진 속의 '가짜 현실'과 내 몸이 짓눌리고 있는 '진짜 현실'의 괴리감. 그것은 물리적인 무게가 되어 나를 압박한다.
드디어 업로드 시간. 그는 신중하게 필터를 고르고, 영혼을 갈아 넣어 해시태그를 단다. [오늘 하루의 마무리는 나만의 홈바에서. 와인 한 잔의 여유. 🍷 #퇴근후일상 #소확행 #홈바 #와인스타그램 #나만의공간 #Chilling]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느꼈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공허함을. '보여지기 위한 나'를 만드느라 정작 '진짜 나'는 이 좁고 냄새나는 방구석에 방치되고 있었다.
잠시 후,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징- 징- 징-" [OO님이 회원님의 사진을 좋아합니다.] [XX님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우와 오빠 분위기 대박! 거기 어디야?"]
'좋아요' 알림이 올 때마다 김철수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도파민이 분비된다. 아까 느꼈던 자괴감과 우울함이 순식간에 마취된다. 그는 댓글에 답글을 단다. "하하, 그냥 집이야. 소소하게 한 잔 하는 중. ^^"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스마트폰 화면 속의 세상은 화려하게 빛나지만, 그 빛이 강해질수록 스마트폰 뒤편에 드리운 나의 어둠은 더욱 짙고 깊어진다.
'좋아요' 하트 하나하나가 납덩이가 되어 내 가슴을 짓누른다.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이 좁은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지만, 정작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와인잔 옆에 숨겨진 컵라면 용기를, 프레임 밖에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는 나, 그의 그림자를.
김철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침대에 눕는다.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쥔 채. 그는 꿈나라로 떠났지만, 나는 잠들 수 없다. 그의 머리맡에서 밤새도록 깜빡이는 스마트폰 알림 불빛이 나를 고문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인의 발밑에서 웅크린 채, 스마트폰 속의 가짜 세상이 뿜어내는 독한 빛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그는 또다시 저 빛나는 가면을 쓰고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한 채, 묵묵히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다.
아, 내일은 또 어떤 거짓말의 무게를 견뎌야 할까. 벌써부터 어깨가 무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