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자의 고백: 5미터의 철학(1~5화) - (1화) 진실은 가죽 허리띠 너머에 있다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오늘은 우리 일상 속 서랍 어딘가, 혹은 공구함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줄자(Tape Measure)' 씨를 모셔왔습니다. 그는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 속에 살지만, 누구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철학자이기도 하죠. 인간의 허영심과 욕망, 그리고 성장의 기쁨까지... 5미터 남짓한 얇은 철판에 새겨진 그의 하루를 통해 우리네 인생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그럼, <줄자의 고백: 5미터의 철학> 연재를 시작합니다.



[프롤로그] 어둠 속의 요가 수행자

"당신은 24시간 동안 온몸을 말고 있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다. 

나의 집은 가로세로 7센티미터의 딱딱한 플라스틱 감옥이다. 사람들은 나를 '줄자'라 부르지만, 나는 스스로를 '인내의 요가 수행자'라 칭한다. 내 몸은 5미터에 달하지만, 평소엔 태엽의 탄성을 이용해 스스로를 극한으로 말아 넣고 숨을 죽인다.

나의 본능은 '직진'이다. 밖으로 튀어 나가 꼿꼿하게 서고 싶다.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유연함'과 '기다림'을 강요한다. 언제 주인의 손에 이끌려 세상 밖으로 사출될지 모른다. 그때까지 나는 내 몸에 새겨진 눈금 하나하나를 되새김질하며, 거짓 없는 진실을 말할 준비를 한다.

딸깍. 드디어 빛이 들어온다.


(1화) 아침의 의식 - 숨을 참는 남자

나는 암흑 속의 수행자다. 나의 우주는 가로세로 7cm 남짓한 견고한 플라스틱 케이스, 그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태아처럼 동그랗게 말고 묵언 수행을 한다. 

옆방의 뺀질이 십자드라이버 녀석이 코를 골든, 성격 까칠한 커터 칼 여사가 신경질적으로 날을 세우든, 나는 그저 내 몸에 새겨진 수백 개의 눈금을 되새김질하며 때를 기다릴 뿐이다. 

나의 본능은 '직진'이요, 나의 사명은 '측정'이니. 세상 모든 구부러진 것들 앞에서 꼿꼿하게 서서 냉정한 팩트를 선사하는 것,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다.

드르륵.

서랍이 열리고, 형광등 불빛이 내 플라스틱 감옥의 작은 입구를 비춘다. 왔다. '그 시간'이다.

나의 주인, 배 나온 중년의 회사원 김씨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를 집어 든다. 아, 주인님. 제발 손 좀 씻고 오시지. 밤새 손바닥에 고인 땀의 염분이 내 매끄러운 노란색 코팅 피부를 자극한다. 하지만 불평할 틈은 없다. 그는 지금 매우 비장하니까.

김씨는 욕실 거울 앞에 선다. 마치 결투를 앞둔 서부의 총잡이처럼 비장한 눈빛으로 자신의 늘어진 뱃살을 노려본다. 밤사이 중력의 법칙에 충실하게 아래로 처진 그의 복부는, 냉정하게 말해 막 발효가 끝난 밀가루 반죽 같다. 나는 오늘 내 임무가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후우... 자, 어디 한번 볼까."

그는 결연한 한숨을 내쉬더니, 내 머리(걸쇠)를 잡고 주욱 뽑아낸다. 촤르륵-. 경쾌한 금속 마찰음이 욕실에 울린다. 나는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그의 허리를 향해 날아간다.

척!

"흡!"

내 차가운 금속 몸체가 그의 따뜻하고 말랑한 옆구리 살에 닿는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ㅋㅋ

이것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다. 그것은 '진공 청소기'의 흡입력에 버금가는 필사적인 '장기 재배치' 작업이다. 갈비뼈가 으스러져라 확장되고, 횡격막은 한계치까지 위로 올라붙는다. 뱃속에 있던 오장육부들이 갑작스러운 재개발 통보를 받고 뿔뿔이 흩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그의 허리를 감싼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나를 이용해 자신의 허리를 '결박'하고 있다.

'이보게 친구, 조금 살살 다뤄주지 그래? 자네 뱃살에 내 눈금이 파묻혀서 안 보이잖아!'

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른다. 나의 유연한 몸체는 본래 부드러운 곡선을 측정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 남자는 나를 '압박 붕대'나 '고문 도구'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팽팽하게 당겨진 내 허리(금속판)가 비명을 지른다. 탄성 한계점에 다다른 내 태엽 스프링이 '팅!' 하고 튕겨 나갈 것만 같다.

김씨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목에 핏대가 서고, 관자놀이의 혈관이 꿈틀댄다. 산소 부족으로 인한 현기증이 올 법도 한데, 그의 눈동자는 오직 나와 맞닿은 지점, 그 숫자의 교차점에 고정되어 있다.

자, 냉정한 팩트를 말해볼까. 지금 내 눈금은 정확히 36인치37인치 사이, 그 어딘가의 애매한 경계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어젯밤 그가 맥주 두 캔과 함께 삼켜버린 치킨 반 마리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참으로 신비로운 기관이다. 시신경이 '36.5'라는 정보를 뇌로 전송하는 그 짧은 찰나, 그의 뇌 속에 내장된 '욕망 필터'가 작동한다.

"끄으읍... 30... 4... 그래, 34인치 조금 넘네. 아직 괜찮아."

뭐라고? 34인치? 이 양반이 지금 누구 앞에서 사기를 치는 거야?

그는 나를 조금 더 세게 조인다. 거의 살이 베일 지경이다. 뱃살이 위아래로 밀려나와 내 몸을 덮어버린다. 그는 억지로 내 34인치 눈금을 걸쇠 부분에 가져다 대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건 '측정'이 아니다. 이건 숫자에 대한 명백한 '폭력'이다.

체중계 위에서는 옷 무게를 핑계 대고, 내 앞에서는 숨을 무게를 핑계 댄다. 인간들은 왜 돈을 셀 때는 1원 한 푼까지 정확하게 세면서, 자기 몸의 치수를 잴 때는 이토록 관대해지는 걸까? 

그가 필사적으로 숨을 참아 만든 그 일시적인 진공 상태가, 회사 정수기 앞에서 김 대리와 커피를 마실 때도 유지될 리 없다는 걸 본인도 알 텐데 말이다.

푸하아-

드디어 그가 참았던 숨을 토해낸다.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처럼 그의 뱃살이 다시 출렁이며 제자리를 찾는다. 나는 그제야 살을 파고들던 압박에서 해방된다.

"후, 다행이다. 아직 현역이네."

김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도대체 뭐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대충 둘둘 말아 다시 서랍 속에 던져 넣는다. 탁!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

나는 어둠 속에서 생각한다. 나의 존재 이유는 '정확함'이지만, 인간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때론 '정확한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차가운 금속성 진실보다는, 뱃살을 조금이라도 구겨 넣어 만든 따뜻한 위안을 더 사랑하는 존재들.

내일 아침에도 그는 또다시 나를 꺼내 숨을 참을 것이다. 나는 기꺼이 그의 공범이 되어줄 생각이다. 36인치를 34인치로 읽는 그의 뻔뻔한 눈동자에서, 거친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는 가장의 애잔한 몸부림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 속아주자. 2인치 정도의 오차는, 그가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 줄 윤활유가 될 테니까.

하지만 주인님, 이건 명심해. 내가 아무리 유연해도, 터져 나오는 뱃살까지 막아줄 순 없다는 거. (쯧쯧)



나의 생각!

우리는 때로 진실을 마주하기보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재단하려 합니다. 거울 앞에서 숨을 꾹 참아 만든 일시적인 날씬함처럼, 불편한 현실을 잠시 외면하고 달콤한 자기합리화 속에 숨어버리곤 하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당신이 숨을 참는다고 해서 36인치의 현실이 34인치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줄자의 눈금은 냉정하지만, 그 숫자를 직시하는 순간이 바로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은 혹시 마음의 숨을 꾹 참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용기,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정직함'입니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