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공사장의 르포 - 거친 세상 속으로
"서랍 속의 깨끗한 줄자는 명예롭지 않다. 닳고 찢어진 상처야말로 현역의 증거다."
주말 아침, 나는 김씨의 작업복 주머니에 처박힌 채 어디론가 실려 갔다. 도착한 곳은 공기부터 달랐다. 매캐한 먼지 냄새, 윙윙대는 전기톱 소리, 그리고 걸쭉한 아저씨들의 농담이 오가는 곳. 바로 '공사판'이다.
이곳에서 나는 더 이상 '민준이 키 재는 장난감'이나 '김씨 뱃살 위로 도구'가 아니다. 나는 '전장의 마초', '현장의 스나이퍼'로 다시 태어난다. 내 몸속의 태엽이 전투 모드로 팽팽하게 감긴다.
"어이, 김 씨! 거기 투바이포(2x4 목재) 3미터 60으로 두 개만 잘라줘!"
반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김씨가 허둥지둥 나를 꺼낸다. 초보 조수 김씨의 손길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탁! 촤르륵-
그는 내 머리(걸쇠)를 거친 목재 끝부분에 아무렇게나 걸고는 뒤로 질질 끌고 간다. 아야! 거친 나뭇결이 내 노란색 배를 긁고 지나간다. 하지만 아파할 틈은 없다. 지금은 속도전이다.
3미터... 3미터 50... 3미터 60!
나는 목재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한다. 야외라 그런지 바람이 분다. 3미터 넘게 뽑혀 나온 내 허리가 바람에 휘청거리며 '낭창낭창' 춤을 춘다. 이 느낌, 짜릿하다. 집안에서 고작 1~2미터 깔짝대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해방감이다. 나는 마치 거친 파도를 가르는 노란색 아나콘다가 된 기분이다.
"3600(mm) 맞지? 자른다!"
위이잉- 툭.
톱날이 지나가고 나무가 잘려 나간다. 이곳의 측정은 집안일과는 다르다. 1~2mm의 오차가 생기면 비싼 자재가 쓰레기가 되고, 건물의 수평이 틀어진다. 아침의 뱃살 2인치(약 5cm) 사기극 따위는 이곳에선 '중범죄'에 해당한다.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 가장 정확한 눈금을 김씨의 눈앞에 들이민다.
하지만 공사판의 생리는 또 다르다. 너무 정밀하게 굴면 '샌님' 취급을 받는다.
옆에서 일하던 베테랑 목수 아저씨가 내 주인을 보며 혀를 찬다. "어이, 김 씨. 뭘 그렇게 돋보기 대고 보듯 재? 대충 재고 빨리빨리 잘라야지, 해 다 지겠네!"
그렇다. 이곳은 '정확성'과 '신속성'이 치열하게 줄다리기하는 모순의 공간이다. 완벽한 설계도는 사무실 에어컨 바람 밑에서나 존재한다.
현장에서는 "이 정도면 됐어(야매)"와 "반드시 맞춰야 해(정석)" 사이에서 끊임없이 타협해야 한다. 나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중심에 서 있다.
오후가 되자 내 몰골은 말이 아니다.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써서 노란색이 회색으로 변했고, 날카로운 철근 모서리에 긁혀 'cm' 글씨가 지워질 뻔했다. 내 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머리(걸쇠)는 하도 여기저기 걸고 당겨대는 통에 유격이 생겨 달그락거린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측정 후 복귀할 때다. 초보 김씨는 나를 놓을 때 요령이 없다.
"다 쟀다!" 그가 손을 놓는 순간, 나는 통제 불능의 속도로 감겨 들어간다.
슈슈슈슉-!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케이스 입구를 향해 돌진한다. 이때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내 날카로운 모서리가 주인의 손가락을 베어버릴 수도 있다(일종의 산재다). 나는 태엽의 탄성을 조절하며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건다.
철컥!
간신히 손가락 절단 사고는 면했지만, 너무 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뇌진탕이 올 지경이다. 아, 오늘 하루 수명 단축 제대로 하는구나.
해가 저물고 작업이 끝났다. 김씨는 땀범벅이 된 채 나를 툭툭 털어 공구함에 던져 넣는다. 나는 다른 연장들 틈에 끼여 가쁜 숨을 몰아쉰다. 옆에 있던 낡은 망치가 씩 웃으며 말을 건다.
"신입, 오늘 좀 굴렀네? 때깔이 좀 난다?"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본다. 여기저기 긁히고, 페인트가 벗겨져 은색 금속 속살이 번쩍인다. 쓰라리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뿌듯하다.
서랍 속에 모셔진 관상용 줄자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땀 냄새, 흙냄새 맡으며 현장에서 구르는 이 야성의 희열을. 이 상처들이야말로 내가 오늘 하루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였다는 가장 확실한 이력서 아니겠는가.
나는 덜컹거리는 트럭 짐칸에서 오늘 생긴 영광의 상처들을 훈장처럼 쓰다듬으며 잠을 청한다. 내일은 또 어떤 거친 세상이 나를 기다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