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302호 침대의 독백 (1~2화) - (1화) 김삼순 할머니의 1,247일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프롤로그) 나는 302호실의 침대다


요양병원 302호실 창가 침대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연작 소설. 인간의 고독과 잊혀짐을 침대의 시선으로 풍자하는 5부작 이야기의 프롤로그.



나는 침대다.

요양병원 302호실, 창가 왼쪽에 위치한, 시리얼 넘버 HCB-2019-0302번 철제 침대. 제조일자 2017년 3월 2일. 내구연한 10년. 하중 제한 150킬로그램.

보라, 이렇게나 정확하게 나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런 스펙이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중요한 건 '누가 나를 사용했는가'다.

인간들은 자기소개를 할 때 이름과 나이, 직업을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을 정의하는 건 그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받았으며, 어떤 순간들을 살아냈는가 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HCB-2017-0302번이 아니다. 나는 김일순 할머니의 마지막 3년을, 김이순 할머니의 투병 2년을, 그리고 김삼순 할머니의 1,247일을 함께한 침대다.


창가 자리의 의미

302호실은 4인실이다.

침대가 네 개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인간 세상처럼, 침대 세계에도 위계가 있다.

문 옆 침대는 간호사들이 자주 지나가는 탓에 시끄럽다. 가운데 두 침대는 창문도 멀고, 문도 멀고, 어정쩡하다. 하지만 창가 자리, 그것도 왼쪽은 특별하다.

햇빛이 제일 먼저 들어온다. 은행나무가 보인다. 사계절이 보인다.

인간들도 안다. 창가 자리가 '좋은 자리'라는 걸. 그래서 요양병원에 새로 입주하는 가족들은 은근슬쩍 묻는다.

"혹시... 창가 자리 비었나요?"

비었다는 건, 누군가 떠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대신 "운이 좋네요"라고 말한다.

운?

누군가의 죽음을 '운'이라고 부르는 세상. 나는 이 아이러니를 302호실에서 수없이 목격했다.


나는 목격자다

나는 말을 하지 못한다. 움직이지도 못한다. 하지만 나는 본다. 듣는다. 기억한다.

새벽 2시, 할머니가 작은 신음을 내며 뒤척이는 소리. 오후 3시, 간호사가 전자체온계를 귀에 끼우며 "조금만 참으세요" 하는 목소리. 일요일 오후, 손주가 와서 "할머니 나 왔어!" 하고 외치지만, 할머니는 손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 순간의 침묵.

나는 안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건, 결국 무수한 순간들의 축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들은 대부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빈 침대의 철학

오늘, 나는 다시 '빈 침대'가 됐다.

김삼순 할머니가 떠났다. 사흘 전이다. 장례는 끝났고, 유품은 정리됐고, 침구는 교체됐다. 소독약 냄새가 아직도 코를 찌른다.

내일 모레, 새로운 주인이 온다고 했다. 85세 남성. 치매. 장기요양 2등급. 가족들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단다.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 처음엔.

나는 기다린다. 또다시.

새로운 무게를. 새로운 체온을. 새로운 신음 소리를. 새로운 이별을.

이게 나의 운명이다. 끊임없이 채워지고, 끊임없이 비워지는 것.

인간들은 '영원'을 꿈꾼다. 하지만 침대는 안다. 영원한 건 없다. 있다면, 이 '반복'뿐이다.


왜 나는 이 이야기를 하는가

나는 침대다. 하지만 오늘, 나는 말하기로 했다.

침묵 속에서 목격한 것들을,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순간들을, 빠르게 잊혀지는 존재들에 대해.

이것은 김삼순 할머니의 이야기이자, 모든 '302호실 주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인간들은 묻는다. "죽음 이후엔 무엇이 있나?"

나는 답한다. "기억하는 자가 있다면,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기억한다. 1,247일을. 39킬로그램의 마지막 무게를. "고맙다"는 마지막 속삭임을.



(1화) 김삼순 할머니의 1,247일

요양병원 302호실 침대가 기억하는 김삼순 할머니의 1,247일. 처음 입주한 날의 어색함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한 인간의 고독한 말년을 침대의 시선으로 슬프지만 위트 있게 풍자합니다.



첫날: 58킬로그램의 등장


2022년 10월 7일. 김삼순 할머니가 내게 처음 앉았다.

58킬로그램. 나는 스프링의 압력으로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분은 조심스럽게, 마치 남의 집 소파에 앉듯 가장자리에만 엉덩이를 걸쳤다.

"여기서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거래?"

할머니가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대답하지 않고 짐을 풀었다. 옷가지 몇 벌, 낡은 손거울, 옛날 사진첩.

"엄마, 여긴 좋은 데야. 창문도 있고, 밥도 맛있대."

할머니는 창밖을 봤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집은... 어떡하고?"

"팔았어. 엄마 혼자 살기엔 너무 컸잖아."

그 순간, 할머니의 무게가 조금 무거워진 것 같았다. 실제론 똑같이 58킬로그램이었지만, 뭔가 다른 무게가 추가된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게 '체념'의 무게였다는 것을.


100일: 적응이라는 이름의 포기

할머니는 빠르게 적응했다. 아니, '적응한 척'했다.

아침 7시 기상, 8시 아침식사, 오전 운동, 점심, 낮잠, 간식, 저녁, 취침. 매일 똑같은 루틴. 나는 할머니가 이 반복 속에서 조금씩 흐려지는 걸 느꼈다.

처음엔 매일 화장을 했다. 아들이 올까 봐. 하지만 아들은 한 달에 한 번 왔다. 그것도 30분.

"엄마, 잘 지내지? 나 바빠서 빨리 가야 해."

할머니는 웃으며 "그래, 가라" 했다. 하지만 아들이 떠나고 나면, 할머니는 나에게 누워 천장을 한참 봤다.

나는 알았다. 그게 울음을 참는 자세라는 걸.


300일: 체중 감량의 진실

할머니의 몸무게가 줄기 시작했다.

56킬로그램, 54킬로그램, 52킬로그램. 간호사들은 "식사 잘 하셔야죠"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입맛이 없어"라고만 했다.

입맛이 없는 게 아니었다. 먹을 이유가 없었던 거다.

어느 날, 룸메이트 할머니에게 말했다.

"나 여기서 죽는 건가 봐."

"무슨 소리야. 우리 다 여기서 죽는 거지 뭐."

두 할머니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슬펐다.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의 웃음이었다.


500일: 방문 횟수의 통계학

나는 계산했다.

할머니의 아들은 처음 석 달간 총 4번 왔다. 그다음 석 달은 2번. 1년이 지나자 명절에만 왔다. 손주는 딱 한 번 왔다. 입주 첫날.

할머니는 캘린더에 동그라미를 쳤다. 가족이 온 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그라미를 치지 않았다. 캘린더 자체를 보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고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나는 인간의 생존 전략이 이렇게나 슬플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다.


700일: 이름을 잊는 사람들

치매가 왔다.

처음엔 간호사 이름을 헷갈려 했다. 그다음엔 요일을. 그다음엔 자기 나이를.

어느 날, 아들이 왔을 때였다.

"엄마, 나 준혁이야."

할머니는 아들을 한참 쳐다봤다.

"...누구?"

아들의 얼굴이 굳었다. 할머니는 당황해서 웃었다.

"장난이야, 장난. 우리 아들 알지."

하지만 나는 알았다.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아들도 알았다. 그래서 더 빨리 떠났다. 15분 만에.


900일: "집에 가고 싶어"에서 "여기가 편해"까지

할머니는 자주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말하는 '집'은 이미 없었다. 팔렸으니까. 새 주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간호사가 물었다.

"할머니, 집에 가면 뭐 하실 건데요?"

할머니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모르겠네. 그냥 가고 싶어."

그 후로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점점 덜 했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여기 침대가 제일 편해."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뻤어야 했다. 하지만 가슴이 아팠다. 내가 가슴이 있다면 말이다.

편하다는 게 좋은 게 아니었다. 그건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1,000일: 몸무게 45킬로그램

할머니는 점점 가벼워졌다.

45킬로그램. 앙상한 팔, 튀어나온 광대뼈, 깊이 패인 눈. 나는 할머니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상한 건, 할머니는 더 많이 웃었다.

"나 이제 곧 가나 봐."

"어디요?"

"저 위로."

할머니는 천장을 가리켰다. 간호사는 "무슨 소리 하세요" 했지만, 할머니는 확신하는 듯 보였다.

"괜찮아. 무섭지 않아. 여기보다는 나을 거야."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인간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탈출구'일 수도 있다고.


1,200일: 마지막 대화

1,200일째 되던 날, 아들이 왔다.

오랜만이었다. 6개월 만이었다. 아들은 할머니 손을 잡고 울었다.

"엄마, 미안해. 바빠서..."

할머니는 아들의 손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너 바쁜 거 알아."

"엄마, 나 좀 더 자주 올게."

"아니야. 안 와도 돼. 너 일해야지."

할머니는 웃었다. 하지만 눈물이 났다.

"엄마가 짐이지?"

"무슨 소리야, 엄마."

"괜찮아. 나도 알아. 늙은이는 짐이야."

아들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할머니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이 그들의 마지막 대화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1,247일: 39킬로그램의 마지막

마지막 날, 할머니는 39킬로그램이었다.

새벽 4시. 할머니는 나를 쓰다듬었다. 차가운 손으로.


"고마웠어. 편했어."

나는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침대는 말을 할 수 없다.

할머니의 호흡이 얕아졌다. 그리고 멈췄다.

체온은 36.1도에서 천천히 식어갔다.

나는 할머니가 떠나는 걸 느꼈다. 무게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알람이 울렸다. 간호사들이 뛰어왔다. 의사가 왔다. 사망 확인.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다.

하지만 나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체온을 기억하며.


그리고 나는 '빈 침대'가 됐다

장례식장 연락, 유품 정리, 침구 교체.

모든 게 매뉴얼대로 진행됐다. 김삼순 할머니는 '302호실 전 입주자'가 됐다.

누구도 그분의 1,247일을 기록하지 않았다. 입주일과 사망일만 서류에 적혔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58킬로그램에서 39킬로그램까지. "집에 가고 싶어"에서 "여기가 편해"까지. 한 달에 한 번에서 6개월에 한 번까지.

나는 기억한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한 인간의 마지막 날들을.



나의 생각!

우리는 숫자로 기록된다. 생년월일, 사망일, 키, 몸무게. 하지만 진짜 삶은 그 사이에 있다.

김삼순 할머니의 1,247일은 통계가 아니다. 한 사람이 조금씩 사라지고, 조금씩 잊혀지고, 마침내 '전 입주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당신의 부모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언제인가?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는 누군가를 조금씩 지우고 있다.



다음 화 예고

2화 "빈 침대가 되는 날"에서는 김삼순 할머니가 떠난 직후 3일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장례 절차, 유품 정리, 새 입주자 모집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빨리 '교체'되는지를 냉소적으로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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