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302호 침대의 독백 (1~2화) - (2화) "빈 침대가 되는 날"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2화) "빈 침대가 되는 날" - 침대의 고백


김삼순 할머니가 떠난 뒤 단 3일 만에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된 요양병원 침대의 독백. 장례, 유품 정리, 입주자 모집이라는 인간 교체 시스템을 침대의 시선으로 냉소적이면서도 슬프게 풀어낸 의인화 소설.



첫 번째 아침 - 텅 빈 무게

새벽 여섯 시, 간호사의 발소리가 복도를 채우기 시작할 때, 나는 알아차렸다. 

김삼순 할머니가 더 이상 내 위에 없다는 것을. 39킬로그램. 그게 그분이 내게 남긴 마지막 무게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58킬로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가벼워지더니, 결국 어제 새벽 두 시, 완전히 사라졌다.

간호사들이 황급히 커튼을 쳤다. 의사가 와서 몇 마디 중얼거렸다. 그리고 스트레처가 왔다. 김삼순 할머니는 하얀 천으로 덮인 채 복도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그렇게, 1,247일을 함께한 우리의 관계는 끝났다. 아무도 내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나는 침대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사람들이 떠날 때, 침대는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곧, 새로운 누군가가 온다는 것을.

침대 시트는 벗겨졌고, 매트리스 위의 땀 자국이 드러났다. 삼순 할머니의1,247일이 남긴 흔적. 오른쪽 엉덩이 부분이 미세하게 움푹 패여 있었다. 그분은 늘 왼쪽으로 누워 창밖을 바라봤으니까. 청소부 아주머니가 소독약을 뿌리며 말했다.

"에구, 또 비었네. 310호도 어제 갔고, 이번 주만 벌써 네 명째야."

그렇다. 이곳에서 '간다'는 말은 퇴원을 뜻하지 않는다. 죽음을 뜻한다.


두 번째 날 - 유품이라는 이름의 잔해들


오전 열 시쯤, 삼순 할머니의 딸이 왔다. 사십대 중반쯤 보이는 여자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은 채 병실 문을 열었다.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 알 수 없는 얼굴. 간호사가 검은 비닐봉지를 건넸다.

"어머님 옷가지랑 세면도구 여기 있고요, 귀중품은 따로 없으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여자는 봉지를 받아들고는 나를 잠깐 쳐다봤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내 위의 '비어 있음'을 보는 눈빛이었다. 그 눈에는 슬픔보다는 안도가, 그리움보다는 피곤함이 더 많이 섞여 있었다.

"원장님이 정산 서류 작성하시래요. 사무실로 오시래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게 전부였다. 3년 넘게 이곳에 누워 있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는 자리치고는 너무 짧고, 너무 건조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인간에게 '작별'이란 대개 요식행위일 뿐이라는 것을. 진짜 이별은 훨씬 전에, 말없이 이미 끝나 있었다는 것을.

오후에는 청소가 시작됐다. 소독약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침대 프레임 사이사이에 낀 먼지까지 닦아냈다. 침대 밑에 굴러다니던 동전 두 개, 사탕 껍질 한 개, 그리고 까맣게 바랜 손거울 하나. 청소부 아주머니는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삼순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흔적들도 그렇게 사라졌다.


세 번째 날 - 새로운 무게를 기다리며


점심때쯤,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302호 비었죠? 오늘 오후에 새 환자 들어옵니다."

간호사는 체크리스트를 들고 와서 내 상태를 점검했다. 리모컨 작동 여부, 난간 고정 상태, 바퀴 잠금 장치. 모든 게 '정상'이었다. 나는 언제든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후 세 시, 문이 열렸다. 휠체어가 먼저 들어왔다. 그 위에는 85세 치매, 장기요양2등급 이신  남자가 앉아 있었다. 반쯤 기울어진 몸, 축 늘어진 왼쪽 팔의  환자였다. 보호자는 아들로 보이는 남자였다.

"여기가 302호구나. 괜찮네."

간호사가 남자를 조심스레 내 위로 옮겼다. 68킬로그램. 삼순 할머니보다 훨씬 무거운 무게가 내 매트리스를 눌렀다. 남자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입을 벙긋거렸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제가 주말마다 올게요. 여기 간호사분들이 잘 돌봐주신대요."

아들은 몇 마디 더 건네고는 서둘러 나갔다. 창밖에서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주인은 여전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을 받치며 생각했다.

또 시작이구나.

또 누군가의 3년이, 혹은 6개월이, 혹은 몇 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남자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 올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여기 그대로 있을 것이다. 비워지고,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면서.


밤 - 침대의 냉소

자정이 지나자 병실은 고요해졌다. 새 주인은 코를 골며 잠들었다. 나는 그의 무게를 느끼면서도, 삼순 할머니의 39킬로그램을 떠올렸다. 얼마나 빨리 잊히는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람들은 말한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 "유일무이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배웠다. 인간은 너무나 쉽게 교체된다는 것을. 

침대는 비워지고, 청소되고, 소독되고, 다시 채워진다.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한 사람이 떠나고 사흘 만에, 그 자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메워진다.

유품 정리에 걸린 시간은 십 분. 청소에 걸린 시간은 이십 분. 새 입주자를 맞이하는 데 걸린 시간은 오 분. 총합 삼십오 분. 1,247일의 삶이 35분 만에 지워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냉소했다. 인간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존엄'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약한지. 죽음 앞에서, 시스템 앞에서, 그들은 그저 '번호'일 뿐이었다. 302호 침대의 이전 사용자, 그리고 현재 사용자.

하지만 동시에, 나는 슬펐다. 삼순 할머니가 마지막 밤 내게 남긴 체온이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분이 창밖을 보며 흘린 한숨 소리가 아직 병실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교체 가능하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무게는 그렇지 않다.

새 주인이 뒤척였다. 나는 그의 몸을 받쳐주며, 또다시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볼 준비를 했다. 그것이 침대인 나의 숙명이니까.



(에필로그) 빈 침대는 없다

아침이 밝았다. 간호사가 들어와 새 주인의 활력징후를 체크했다. 혈압, 맥박, 체온. 모두 기록되고, 차트에 입력되었다. 이 남자 역시 언젠가는 숫자가 될 것이다. 보고서 속 한 줄, 통계 속 한 명.

하지만 나는 안다. 이곳에는 진짜 '빈 침대'란 없다는 것을. 침대는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 숨, 누군가의 외로움, 누군가의 포기와 체념. 그리고 아주 가끔, 누군가의 평온.

삼순 할머니는 떠났지만, 그분의 오른쪽 엉덩이가 남긴 움푹한 자국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새 주인이 그 위에 누워도, 나는 느낀다. 이전의 무게를, 이전의 온기를, 이전의 숨소리를.

인간은 빨리 교체되지만, 침대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것이 나의 저주이자, 나의 사명이다.



나의 생각! 

우리는 모두 언젠가 '빈자리'를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그 자리는 너무나 빠르게 다른 누군가로 채워진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병실에서.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어떤 무게를 남길 것인가?" 교체 가능한 존재로 살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매트리스에 움푹한 자국을 남길 만큼 깊이 존재할 것인가. 침대는 알고 있다. 진짜 존재의 증거는 크기가 아니라 깊이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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