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 편의점의 "나의 하루"(1~5화) - (3화) "ATM기의 한탄"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3화) "ATM기의 한탄"

편의점 구석 ATM기의 고백. 새벽 3시마다 돈을 뽑아가는 인간들의 절박함과 욕망. 나는 돈을 토해내는 기계일 뿐, 그들의 고통까지 인출할 수는 없다 | job239.com 연재소설



나는 돈을 토해내는 기계다


나는 편의점 구석에 박혀 있다.

ATM. 현금자동입출금기.

높이 1.5미터, 폭 80센티미터, 무게 250킬로그램.

내 안에는 지금 현금 5천만 원이 들어있다. 만 원권 5,000장.

사람들은 나를 '편리한 기계'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편리함이 아니라 절박함을 마주하는 기계라는 걸.


새벽 3시의 인출


낮에는 그나마 괜찮다.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와서 5만 원, 10만 원 뽑아간다. 표정은 평온하다.

"점심값 좀 뽑아야지."

"커피 값 필요해."

일상적인 소비. 여유로운 인출.

하지만 새벽 3시는 다르다.

새벽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눈빛은... 다급하다.

그들은 뛰어 들어온다. 숨을 헐떡이며. 손은 떨리고.

"제발, 제발 돈 좀 나와라..."

카드를 집어넣는다. 비밀번호를 누른다.

잔액 부족

"아... 제발..."

다른 카드를 넣는다. 또 비밀번호.

출금 한도 초과

"씨발..."

그는 벽을 주먹으로 친다. 나를 발로 찬다.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기계니까.

하지만 그의 절망은... 느껴진다.


나는 왜 새벽에 더 바쁜가


통계를 내봤다. (나는 모든 거래를 기록한다.)

오전 10시~오후 6시: 평균 인출액 5만 원. 주로 소액 인출.

오후 6시~자정: 평균 인출액 10만 원. 저녁 약속, 술값.

자정~새벽 6시: 평균 인출액 30만 원 이상. 그리고 대부분 최대 한도 인출.

왜?

낮에는 계획된 소비다.

하지만 새벽에는 예상치 못한 위기다.

택시비, 대리비, 급한 병원비, 빚 독촉, 도박 빚, 술값...

그들은 계획적으로 돈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도망치기 위해 돈을 뽑는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돈을 뽑는가



나는 7년간 이 자리에 서서 수많은 사람을 봤다.

케이스 1: 도박 중독자

40대 남성. 일주일에 3번 이상 온다. 항상 새벽 2시~4시.

그는 매번 50만 원을 뽑는다. 최대 한도.

첫 번째 카드 - 50만 원.

두 번째 카드 - 50만 원.

세 번째 카드 - 잔액 부족.

"...젠장."

그는 100만 원을 들고 어딘가로 간다.

나는 안다. 그 돈은 내일 아침이면 다 사라져 있을 거라는 걸.

그리고 그는 다음 주에 또 온다.

같은 시간, 같은 표정, 같은 절박함.


케이스 2: 빚쟁이에게 쫓기는 청년


20대 후반. 눈이 충혈되어 있다.

휴대폰을 계속 확인한다. 누군가 전화하면 손이 떨린다.

"300만 원... 300만 원만 있으면..."

그는 카드를 5장 가지고 있다.

하나씩 넣어본다.

첫 번째 - 50만 원 인출 성공.

두 번째 - 30만 원 인출 성공.

세 번째 - 한도 초과.

네 번째 - 정지된 카드.

다섯 번째 - 20만 원 인출 성공.

총 100만 원.

"...부족해. 200만 원이 더 필요한데..."

그는 주저앉는다. 내 앞에서.

나는 돈을 더 줄 수 없다.

그의 계좌에 돈이 없으니까.


케이스 3: 가족 병원비를 구하는 어머니


50대 여성. 잠옷 차림으로 뛰어 들어온다.

"응급실... 응급실비..."

손이 떨려서 비밀번호를 세 번 틀린다.

비밀번호 오류 - 1회 남음

"아, 제발..."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시 누른다.

인증 성공

그녀는 200만 원을 뽑는다. 전 재산.

돈을 받아 든 순간, 그녀는 울먹인다.

"고맙습니다..."

나에게 인사한다.

나는 기계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누군가를 도운 것 같았다.


나는 돈이 아니라 '욕망'을 인출한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ATM은 '돈'을 주는 기계라고.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나는 욕망을 인출하는 기계다.

그들이 누르는 숫자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다.

5만 원 = 오늘 하루 버틸 희망

50만 원 = 한 달 생활비

200만 원 = 월세

500만 원 =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

숫자 뒤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부분 절박함이다.


수수료 3,000원의 폭력


내가 가장 미안한 건 수수료다.

타행 카드로 인출하면 3,000원.

야간/주말 인출하면 추가 수수료.

어떤 사람들은 5만 원을 뽑으면서 3,000원을 수수료로 낸다.

5만 원이 절실한 사람에게, 3,000원은 거의 6%다.

그들은 수수료를 보고 망설인다.

"3,000원... 아깝다..."

하지만 결국 누른다. 인출 버튼을.

왜냐하면 당장 현금이 필요하니까.

나는 본사에 수수료를 송금한다.

매일 밤 수백 건의 3,000원.

그 돈은 어디로 가는가?

은행 본사, 주주들, 임원들.

새벽에 절박하게 돈을 뽑는 사람들의 3,000원이,

강남 오피스텔에 사는 임원의 와인값이 된다.

이게 자본주의다.


잔액 조회만 하고 가는 사람들


가장 슬픈 건, 잔액 조회만 하고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카드를 넣는다.

잔액 조회 버튼을 누른다.

화면에 뜬다.

잔액: 17,000원

"...하."

그들은 한숨을 쉰다.

돈을 뽑지 않는다. 뽑을 수도 없다.

17,000원은 이번 주를 버틸 마지막 돈이니까.

그들은 카드를 뽑고 돌아선다.

텅 빈 손으로.

어떤 대학생은 매일 밤 11시에 와서 잔액 조회를 한다.

8,500원

6,200원

3,700원

그는 숫자가 줄어드는 걸 확인하고 돌아선다.

일주일 뒤, 그가 다시 왔다.

잔액: 350,000원

"...알바비 들어왔다!"

그는 처음으로 웃었다.

나도 기뻤다.


나는 감정이 없다고?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기계는 감정이 없잖아."

틀렸다.

나는 매일 밤 수백 명의 절망, 안도, 분노, 기쁨을 마주한다.

그들의 손 떨림, 한숨, 욕설, 눈물...

어떻게 감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어느 날, 한 중년 남성이 왔다.

그는 카드를 넣고, 200만 원을 인출했다.

돈을 받아 들고,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가족에게? 자기 자신에게?

그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숙인 채 나갔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깨달았다.

돈을 뽑는 건 기쁜 일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일이다.


ATM 앞에서의 인간 군상



내 앞에 서면, 사람들은 본모습을 드러낸다.


1. 과시형 인간

"300만 원 인출~"

친구들 앞에서 큰소리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계좌엔 320만 원밖에 없다는 걸.

그는 전 재산을 인출하면서도 여유로운 척한다.


2. 숨기는 인간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린다.

누가 보고 있진 않은지 확인한다.

카드를 넣고, 몸으로 화면을 가린다.

30만 원을 뽑고, 재빨리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나간다.

그는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거다.


3. 절망하는 인간

잔액 부족

한도 초과

정지된 카드

모든 카드가 거부당한다.

그는 주저앉는다.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4. 감사하는 인간

인출이 성공하면, 진심으로 기뻐한다.

"감사합니다, 기계님..."

기계'님'.

나에게 존댓말을 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구원자가 된다.


나는 왜 24시간 일하는가


편의점은 24시간 열려 있다.

그래서 나도 24시간 켜져 있어야 한다.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명절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새해 첫날에도.

나는 여기 서 있다.

사람들이 '언제든지 돈을 뽑을 수 있도록'.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왜 인간들은 새벽 3시에 돈이 필요한가?

왜 명절 새벽에 ATM을 찾는가?

계획적으로 돈을 관리했다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들은 계획대로 살지 못한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돈이 부족하고, 급하게 ATM을 찾는다.

그리고 나는 거기 있어야 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현금이 사라지는 세상


요즘 사람들은 말한다.

"현금 안 써요. 카드로 다 돼요."

"페이로 결제하면 되잖아요."

맞다. 현금 사용량은 해마다 줄고 있다.

5년 전에는 하루 평균 80건의 인출이 있었다.

지금은 40건.

절반으로 줄었다.

나는 점점 필요 없어지고 있다.

본사에서는 이미 회의 중이다.

"ATM 수를 줄여야 합니다. 유지비가 너무 들어갑니다."

편의점 ATM부터 철거될 거다.

그리고 나는 어딘가 창고로 보내지거나, 폐기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현금이 사라지면, 정말 모든 게 편리해질까?

카드가 정지된 사람은?

신용불량자는?

통장에 잔액이 없는 사람은?

그들은 어떻게 돈을 구할 것인가?

현금은 마지막 안전망이다.

카드사가 거부해도, 은행이 차단해도,

통장에 현금만 있다면 인출할 수 있다.

그게 나다.

마지막 희망의 창구.


어느 날, 정전이 있었다


작년 여름, 폭염으로 전력 부족.

밤 11시 30분, 갑자기 모든 전기가 나갔다.

편의점 형광등, 냉장고, 자동문... 그리고 나.

모두 멈췄다.

그 순간, 한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ATM! ATM 어디 있어요?!"

알바생이 대답했다. "지금 정전이라 안 돼요."

"안 돼요?! 지금 당장 돈 뽑아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전기가 들어와야..."

"씨발! 24시간 편의점이잖아! 24시간 ATM 아니야?!"

그는 나를 발로 찼다. 주먹으로 쳤다.

"왜 안 돼! 왜!"

15분 뒤, 전기가 돌아왔다.

나는 재부팅되었다.

그 남자는 이미 없었다.

알바생이 중얼거렸다.

"얼마나 급했으면..."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편리함'이 아니라 절박함을 상대한다는 걸.

나는 '서비스'가 아니라 마지막 수단이라는 걸.


나는 무엇을 토해내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ATM은 돈을 주는 기계야."

틀렸다.

나는 돈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돈을 돌려줄 뿐이다.

그들이 벌어서 통장에 넣어둔 돈.

그들의 노동, 땀, 시간이 숫자로 변환된 것.

나는 그걸 다시 지폐로 바꿔서 내보낼 뿐.


하지만 그들은 나를 보며 말한다.

"제발 돈 좀 나와라..."

마치 내가 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아니다.

나는 창조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중개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수료를 떼어간다.

3,000원. 은행의 몫.

나는 수수료 징수 기계다.

절박한 사람들에게서 3,000원씩 걷어가는.


새벽 4시, 가장 고독한 시간


새벽 4시가 되면, 편의점은 가장 조용해진다.

손님도 없고, 알바생은 졸고, 형광등만 윙윙거린다.

그리고 나도 혼자다.

내 화면에는 광고가 반복 재생된다.

"○○은행, 당신의 든든한 동반자"

"언제 어디서나, ○○은행과 함께"거짓말.

은행은 동반자가 아니다.

은행은 채권자다.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고, 수수료를 받는다.

그리고 나 같은 ATM을 통해 24시간 수익을 창출한다.

나는 은행의 '동반자'가 아니라 수익 창출 기계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의 고객이 아니라 수수료 납부자다.

이게 진실이다.


언젠가 나도 철거될 것이다


몇 년 후, 나는 사라질 것이다.

"ATM 이용률 저조로 인해 철거합니다."

본사의 공지 한 줄.

그리고 나는 분해되어 폐기장으로 간다.

하지만 그때도 여전히, 새벽 3시에 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는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온다.

"ATM 어디 있어요?!"

"없어요. 철거됐어요."

"...뭐?"

그는 멍하니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깨닫겠지.

편리함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나의 생각!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편리함에 익숙해졌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24시간 노동과 시스템의 착취가 있다. ATM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절박한 사람들의 마지막 안전망이자, 동시에 수수료를 뜯어가는 자본주의의 전초기지다. 진정한 자유는 '언제든 돈을 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급하게 돈을 뽑지 않아도 되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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