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와 황사의 '국경 없는 여행기'
- 먼지 씨의 유랑 일기
국경을 비웃으며 자유롭게 떠도는 미세먼지 '먼지 씨'의 시선으로 본 인간 세계. 보이지 않는 국경선 앞에서 무력한 인류의 모습을 위트와 풍자로 그려낸 환경 우화. 기후 위기 시대, 우리는 과연 하나의 지구에 살고 있는가?
프롤로그: 나는 먼지, 국경 없는 여행자
안녕하십니까. 아니, 사실 인사는 좀 우스운 일이다. 나는 당신의 폐 속에 이미 여러 번 들어갔다 나왔을 테니까. 내 이름은 먼지. 본명은 PM2.5, 직경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미세먼지 입자다.
인간들은 나를 공포스러운 대상으로 여긴다. 뉴스에서는 내가 오는 날이면 '비상저감조치'니 '마스크 착용'이니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저 바람 따라 떠도는 유랑자일 뿐이다. 내가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지, 그건 내 의지가 아니라 바람의 뜻이다.
오늘도 나는 서풍을 타고 여행 중이다. 고비사막의 모래바람과 함께 출발해, 베이징의 공장 굴뚝을 거쳐, 지금은 서해를 건너고 있다. 발밑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바다 어딘가에 '선'이 하나 그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들은 그 선을 '국경'이라고 부른다. 저쪽은 중국, 이쪽은 대한민국. 웃기지 않는가? 나는 그 선을 단 1초 만에 넘어버렸는데, 인간들은 그 선 때문에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받고, 세관을 통과한단다.
더 웃긴 건, 내가 국경을 넘어오면 인간들이 서로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다. "너희 나라 먼지가 우리나라로 넘어온다!" "우리는 피해자다!" 아니, 잠깐. 나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데? 나는 그냥 바람이 가라는 대로 갈 뿐인데?
이 여행기는 그런 내 이야기다. 국경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을 넘나들며, 인간 세상의 우스꽝스러움을 목격한 한 먼지 입자의 기록. 자, 출발해볼까.
1화: 고비사막 출발 - 나의 탄생 이야기
황량한 땅에서 태어나다
나는 고비사막에서 태어났다. 정확히는 '태어났다'기보다 '생성됐다'고 해야 맞겠다. 한때는 거대한 바위였던 내 조상들이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부서지고 부서져, 마침내 나 같은 미세한 입자가 되었다.
고비사막은 황량하다. 식물도 거의 없고, 물도 없다. 하지만 바람은 엄청나다. 봄이 되면 강한 서풍이 불어와 나를 포함한 수십억 개의 먼지 입자들을 하늘로 들어올린다. 그게 바로 인간들이 '황사'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야, 너 첫 여행이지?" 옆에서 떠다니던 선배 먼지 입자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이미 세 번째 여행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번엔 서울까지 갈 거야. 거기 가면 진짜 재미있어. 인간들이 난리를 치거든."
"왜요?"
"우리를 보고 '중국발 황사'라고 하면서 중국을 욕해. 근데 웃긴 게 뭔지 아냐? 우리 중에 진짜 중국에서 출발한 애들은 절반도 안 돼. 몽골 출신도 많고, 카자흐스탄에서 온 애들도 있거든. 근데 뭉뚱그려서 다 '중국 탓'으로 돌리더라고."
나는 의아했다. "그럼 정정해주면 되잖아요?"
선배는 크게 웃었다. "아이고, 순진하긴. 인간들한테 우리 목소리가 들릴 리가 있나. 게다가 뭐, 진짜로 중국 공장에서 배출된 애들도 많긴 해. 석탄 발전소, 자동차 매연, 공장 굴뚝… 거기서 합류한 친구들이 우리랑 섞이거든."
바람은 우리를 점점 더 높이 들어올렸다. 지상 3,000미터 상공. 이제 우리는 제트기류를 탈 준비가 된 것이다.
첫 번째 국경 통과 - 몽골에서 중국으로
우리는 몽골 상공을 지나 중국 내몽골 지역으로 진입했다. 그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국경이다! 국경 넘는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같은 초원, 같은 산, 같은 하늘이었다.
"국경이 어디 있어요? 안 보이는데요?"
"당연히 안 보이지. 그건 인간들 머릿속에만 있는 선이거든." 선배가 비웃었다. "지도에나 그어져 있는 거지, 실제로는 없어. 근데 인간들은 그걸 진짜인 것처럼 믿고 살아. 참 신기하지?"
우리는 계속 날아갔다. 내몽골을 지나 베이징 근교에 도착했을 때,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탁했다. 아니, 정확히는 '동료들이 엄청 많아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어서 와, 신입들!" 베이징 출신 먼지 입자들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도 합류할게. 같이 한국 가자!"
나는 놀랐다. "당신들도 한국에 가요?"
"당연하지. 우리는 석탄 발전소에서 배출된 먼지들이야. 중국 정부가 환경 규제를 강화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아직 멀었거든. 우리 같은 애들이 하루에도 몇 톤씩 배출돼."
"그럼 한국 사람들이 화낼 만도 하네요."
"뭐, 그렇긴 한데… 사실 한국도 예전엔 우리 많이 만들었어. 1970~80년대엔 서울이 진짜 대단했다니까?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화력발전소랑 자동차에서 우리 동료들 많이 나와. 그러니까 뭐, 서로 욕할 처지는 아닌 거지."
서해로, 그리고 한국으로
우리는 이제 거대한 무리가 되었다. 고비사막 출신, 내몽골 출신, 베이징 출신이 뒤섞인 '국제 연합 먼지단'이었다. 서풍은 우리를 서해 쪽으로 밀어냈다.
"저기 보여? 저게 바다야." 선배가 가리켰다.
푸르고 광활한 바다. 그 위를 날아가는 기분은 참으로 상쾌했다. 하지만 선배의 표정은 심각했다.
"저 바다 어딘가에 선이 있어. 중국과 한국을 가르는 배타적 경제수역 경계선. 인간들은 저 바닷물에도 선을 그어놓고 '여기는 우리 바다, 저기는 너희 바다'라고 싸워. 우스운 게 뭔지 아냐? 물고기들은 그 선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헤엄치거든. 우리처럼."
나는 웃음이 나왔다. "정말 우스운 생물들이네요, 인간들."
"그러게. 근데 더 우스운 건 이거야. 우리가 한국에 도착하면,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에게 항의할 거야. '당신네 먼지가 우리나라 공기를 더럽힌다'고. 그럼 중국 정부는 뭐라고 할까? '자연 현상이다',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 '너희도 예전엔 심했잖아'. 그렇게 몇 년을 똑같은 대화를 반복해. 그동안 우리는 계속 오고 가고."
서해를 절반쯤 건넜을 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넓은 바다 위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 그 선을 넘는 순간 나는 '중국 먼지'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중국 먼지'로 신분이 바뀐다는 것.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단지 바람을 따라 떠다녔을 뿐인데, 내 정체성은 인간들이 그어놓은 선에 의해 규정당한다.
"도착했다! 한국이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우리는 인천 앞바다에 도착했다. 이제 진짜 쇼가 시작될 시간이다.
2화: 서울 상륙 - 피해자 코스프레의 달인들
예보부터 시작되는 소동
우리가 서해를 건너는 동안, 한국의 기상청은 이미 우리를 포착했다. "내일 고농도 미세먼지 예보", "중국발 황사 영향으로 대기질 '매우 나쁨'", "마스크 착용 필수" 같은 뉴스 속보가 쏟아졌다.
"봤지? 우리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벌써 난리야." 선배가 씨익 웃었다. "인간들 참 신기해. 우리가 올 거라는 걸 미리 알면서도, 대책은 똑같아. '외출 자제', '마스크 착용', '공기청정기 가동'.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
서울 상공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건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와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이었다. 그리고 그 자동차들의 배기구에서 나오는 것은...
"어이, 신입! 우리도 미세먼지야!"
현지 출신 먼지 입자들이었다. 디젤 엔진에서 나온 질소산화물, 휘발유 차량의 탄화수소, 공사장에서 날린 시멘트 가루까지. 서울은 이미 먼지로 가득했다.
"잠깐, 그럼 여기 먼지가 다 우리 때문만은 아니잖아요?"
"당연하지!" 서울 토박이 먼지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전문가들 말로는 보통 날에는 국내 배출이 50~70% 정도 차지한다더라. 중국발은 30~50% 정도고. 근데 인간들은 그냥 싸잡아서 '중국 먼지'라고 해. 편하잖아, 남 탓하는 게."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거짓말이네요?"
"거짓말까진 아니고, '선택적 사실 강조'라고 해야지. 중국에서 온 게 맞긴 한데, 전부는 아니야. 근데 '우리 탓도 있다'고 하면 불편하잖아. 자기 차는 계속 타고 싶고, 공장은 계속 돌려야 하고, 발전소는 계속 가동해야 하니까. 그럼 남 탓하는 게 제일 편해."
피해자의 특권
그날 저녁, 서울 도심의 한 카페 앞을 지나가는데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아, 미세먼지 진짜 짜증 나. 다 중국 때문이야."
마스크를 쓴 20대 여성이 친구에게 투덜거렸다. 그런데 웃긴 건, 그녀 바로 옆에 SUV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고, 카페 안에서는 석유 난로가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거 봐." 서울 토박이 먼지가 속삭였다. "저 차 배기구에서 우리 동료들 나오는 거 보이지? 저 석유 난로에서도 먼지 나와. 근데 저 여자는 본인이 먼지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 그냥 '중국 탓'이라고만 생각하지."
"왜요?"
"피해자가 되는 게 편하니까. 피해자는 책임이 없거든. 다 가해자 탓이야. 그럼 자기는 아무것도 안 바꿔도 돼. 차도 그대로 타고,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고, 배달 음식도 일회용기로 받고. 그러면서 '미세먼지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투덜거려."
나는 점점 인간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는 안 되지만 패턴은 파악됐다'고 해야 할까.
국경 없는 공기, 벽 쌓는 인간들
다음 날 오전, 한국 환경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국과의 대기오염 공동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거의 동시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브리핑을 했다. "한국의 미세먼지 문제는 복합적 원인이 있으며, 중국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었다.
"매년 봄마다 저 쇼를 해." 선배가 지겹다는 듯 말했다. "한국은 '중국 탓'이라고 하고, 중국은 '우리 탓 아니다'라고 해. 그렇게 몇 년을 싸우다가, 결국 '공동 연구'니 '협력 체계'니 하는 걸로 마무리해. 근데 실질적으로 바뀌는 건 거의 없어."
"왜요?"
"서로 손해 보기 싫으니까. 중국은 공장 돌려야 경제 성장하고, 한국은 차 팔아야 먹고살고. 둘 다 석탄 발전 줄이면 전기 요금 오르잖아. 그럼 국민들이 화내고. 결국 아무도 진짜 해결책은 안 내놓고, 그냥 서로 욕만 해. 그게 제일 쉬우니까."
나는 서울 상공을 떠돌며 생각했다. 공기는 국경이 없다. 바람은 여권이 필요 없다. 우리 먼지는 비자를 받지 않아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내 나라'와 '네 나라'를 구분하고 싶어 한다. 책임도 마찬가지다. '내 책임'보다는 '네 탓'이 편하니까.
저녁 무렵, 나는 국회의사당 상공을 떠돌았다. 마침 환경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 건강 피해가 심각합니다. 정부는 중국에 강력히 항의해야 합니다!"
한 야당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 의원도 맞장구쳤다. "동감입니다. 이는 명백한 환경 침해입니다."
그런데 웃긴 건, 바로 그 순간 국회 주차장에는 대형 SUV들이 빼곡했고, 국회 건물 자체도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것 봐." 선배가 비웃었다. "저 사람들, 자기들은 다 전기차 타고 친환경 생활한다고 생각할걸? 근데 그 전기는 어디서 나올까? 화력발전소에서지. 결국 똑같아. 그냥 배출 장소만 바뀐 거야."
"그럼 해결책은 뭐예요?"
"해결책? 진짜 해결책은 불편해. 차를 덜 타거나, 전기를 덜 쓰거나, 소비를 줄이거나. 근데 그건 아무도 안 하고 싶어 해. 그러니까 '중국 탓'이 완벽한 거야. 남 탓하면서 내 삶은 안 바꿔도 되니까."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국경이라는 선은 단지 영토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책임도 나눈다. '이쪽 책임'과 '저쪽 책임'으로. 그렇게 나누면, 각자 자기 책임은 회피할 수 있다.
3화: 일본 횡단 -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는 마법
동해를 건너다
서울에서 사흘을 보낸 후,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동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어? 이건 일본 가는 바람인데?" 선배가 놀랐다. "오케이, 이번엔 반대편 쇼를 볼 차례구나."
우리는 동해를 건너 일본 열도로 향했다. 고비사막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갔던 우리는, 이제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것이다.
"잠깐, 그럼 우리가 지금..." 나는 깨달았다. "한국 먼지도 섞여 있는 거잖아요?"
"정확해!" 선배가 박수를 쳤다. "우리 몸에는 이제 고비사막 모래, 중국 공장 먼지, 한국 자동차 매연이 다 섞여 있어. 근데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뭐라고 할까?"
"중국발 황사?"
"정답! 한국 거친 건 신경도 안 써. 그냥 '대륙에서 온 오염물질'로 뭉뚱그려. 재미있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도쿄 상공에 도착했을 때, 일본 기상청도 예보를 내보냈다. "대陸로부터의 오염물질 유입 예상", "PM2.5 농도 상승 우려".
그런데 재미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도쿄의 한 카페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마스크를 쓰며 말했다. "에휴, 일본까지 와서도 미세먼지네. 다 중국 때문이야."
바로 옆 테이블 일본인이 친구에게 속삭였다. "大陸の黄砂だ... 中国と韓国のせいで空気が悪い." (대륙의 황사야... 중국과 한국 때문에 공기가 나빠.)
"들었어?" 선배가 웃었다. "한국 사람은 자기는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일본 사람은 한국도 가해자라고 생각해. 둘 다 맞는 말이야. 한국은 중국 먼지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일본에게는 가해자거든."
"그럼 일본은?"
"일본도 마찬가지야. 일본 공장에서도 먼지 나와. 근데 일본은 편서풍 지역이라 자기네 먼지는 태평양으로 날아가. 그러니까 자기들끼리는 별 문제 안 느끼는 거지. 대신 가끔 북풍 불면 일본 먼지가 한국으로 역류하기도 해. 근데 그건 뉴스 안 나오지. 양이 적으니까."
상대성의 원리
오사카에서 만난 일본 토박이 먼지 입자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줬다.
"너희 알아? 1960~70년대 일본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때는 우리가 진짜 공해의 천국이었어. 미나마타병, 이타이이타이병, 요카이치 천식... 다 우리 선배들이 만든 역사지. 공장 폐수는 바다로 흘러보내고, 매연은 하늘로 뿜어대고."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많이 줄었지. 환경 규제 강화하고, 공장도 해외로 많이 옮기고. 그런데 웃긴 거 알아? 그 공장들 어디로 갔을까? 중국이야. 일본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 차려서 거기서 만들어. 그럼 오염은 중국에서 발생하는 거잖아? 그리고 그 먼지가 일본으로 날아오면 '중국 탓'이라고 해. 자기네가 만든 공장인데도."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럼 결국 자기 먼지가 돌고 돌아서 자기한테 온 거네요?"
"정확해. 근데 그 사실은 아무도 얘기 안 해. 국경을 넘으면 '남의 먼지'가 되니까. 참 편리한 시스템이지?"
순환하는 책임
그날 밤, 나는 후쿠오카 상공에서 생각에 잠겼다.
중국은 한국에게 가해자고, 한국은 일본에게 가해자다. 그런데 일본 기업은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어놓고, 그 공장에서 나온 먼지가 자기네로 날아오면 중국을 비난한다.
그리고 모두가 '우리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들도 "우리는 선진국 제품을 만들어주는 거다, 사용하는 건 너희인데 왜 우리한테만 책임을 묻냐"고 항변한다.
"누가 맞는 거예요?" 나는 선배에게 물었다.
"다 맞아. 그리고 동시에 다 틀려. 그게 국경의 마법이야. 국경선을 그어놓으면, 책임을 나눌 수 있어. '여기는 네 책임, 저기는 내 책임'. 그렇게 나누면 모두가 자기는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지."
"그럼 해답은요?"
"해답? 간단해. 국경 같은 거 없애면 돼. 공기는 하나니까. 지구는 하나니까. 근데 그게 제일 어려운 거야. 인간들은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걸 너무 좋아하거든."
4화: 북극을 향해 - 먼지가 본 기후 위기의 진실
제트기류를 타고
일본에서 며칠을 보낸 후, 나는 예상치 못한 여행을 하게 됐다. 강력한 북풍이 우리를 북쪽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어? 이건... 북극 가는 바람인데?" 선배도 놀랐다. "운이 좋네. 진짜 큰 그림을 보여줄게."
우리는 점점 더 북쪽으로, 더 높이 올라갔다. 시베리아 상공을 지나 북극해로 향했다. 기온이 점점 떨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검게 물든 백색의 대륙
북극의 얼음은 예전만큼 하얗지 않았다. 곳곳에 검은 얼룩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였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의 선배들이었다.
"블랙 카본(Black Carbon)이라고 들어봤어?" 거기서 만난 오래된 먼지 입자가 말했다. "석탄, 디젤, 나무를 태울 때 나오는 검은 탄소 입자들이야. 우리는 여기까지 날아와서 얼음 위에 쌓여. 그럼 뭐가 일어날까?"
"잘 모르겠는데요."
"얼음은 햇빛을 반사해. 그게 지구를 시원하게 유지하는 원리야. 근데 우리 같은 검은 먼지가 얼음 위에 쌓이면? 햇빛을 흡수하지. 그럼 얼음이 더 빨리 녹아. 얼음이 녹으면 더 많은 햇빛이 흡수되고, 그럼 또 빨리 녹고... 악순환이야."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로 얼음이 빠르게 녹고 있었다. 거대한 빙하가 갈라지고, 바다로 떨어져 나갔다.
"이거... 심각한데요."
"심각하지. 근데 더 웃긴 게 뭔지 아냐? 인간들은 여기서도 국경을 따져. '북극 영유권' 논쟁. 러시아, 캐나다, 미국, 덴마크, 노르웨이가 서로 자기네 땅이라고 싸워. 얼음이 녹아서 자원 개발이 가능해지니까 더 치열해졌지."
누구의 책임인가
북극에서 만난 한 과학자 팀이 빙하 샘플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얼음 속에 갇힌 먼지를 분석했다.
"흠, 이 블랙 카본은... 러시아산으로 보이는데."
"이건 중국 석탄 발전소에서 온 것 같고."
"이 입자들은 북미 대륙에서 온 거네."
과학자들은 열심히 출처를 추적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몸에는 이미 수십 개국의 오염물질이 섞여 있었다.
"저 사람들 진짜 웃겨." 선배가 비웃었다. "출처를 따지면 뭐해. 결과는 똑같은데. 북극 빙하는 누가 녹였든 간에 그냥 녹고 있어. 해수면은 누가 올렸든 간에 계속 올라가. 근데 인간들은 '누구 책임인지' 따지는 데만 몇십 년을 써."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전부 책임져야지. 근데 모두가 '나는 아니야'라고 해. 중국은 '우린 개도국이야, 선진국들이 먼저 줄여야지'라고 하고, 미국은 '중국이 제일 많이 배출하잖아'라고 해. 유럽은 '우린 많이 줄였어'라고 자랑하지만, 정작 생산은 중국에서 하고. 한국은 '우린 작은 나라야'라고 변명하고."
국경 없는 위기
그날 밤, 나는 북극광 아래에서 생각했다.
기후 위기는 국경이 없다. 북극 빙하가 녹으면 뉴욕도 잠기고 방콕도 잠긴다.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이 녹아서 메탄가스가 나오면 전 세계 기온이 올라간다.
그런데 대응은 국경별로 한다. 각 나라가 따로따로 목표를 세우고, 따로따로 정책을 만들고, 서로를 감시하고 비난한다. COP 회의를 열어봤자 결국 '각자도생'이다.
"알아?" 선배가 말했다. "인간들은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며 감동받아 해. '우리는 하나의 행성에 산다', '국경은 보이지 않는다'... 근데 땅에 내려오면 바로 잊어버려. 그리고 다시 선을 긋지. '우리'와 '너희'.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왜 그럴까요?"
"책임지기 싫으니까. 하나라는 걸 인정하면, 모두가 책임져야 하잖아. 근데 나누면 '나는 아니야'라고 할 수 있어. 그게 편해."
귀환
북극에서 몇 주를 보낸 후, 시베리아를 거쳐 나는 다시 고비사막으로 돌아왔다. 바람이 나를 원래 출발점으로 데려온 것이다. 거대한 순환 여행의 끝이자,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었다.
"돌아왔구나, 신입." 나를 처음 맞이했던 선배가 반갑게 인사했다. "어때, 인간 세상 구경 재미있었어?"
"재미있기보다는... 답답했어요."
"하하, 다들 그래. 처음 세계 일주 하고 나면 인간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우리한텐 너무 명백한 사실인데, 인간들은 애써 외면하니까."
나는 고비사막의 모래 위에 잠시 내려앉았다. 여기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다시 바람을 타고, 다시 국경을 넘고, 다시 인간들의 비난을 받으면서.
변하지 않는 것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사막이 더 넓어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초원이었던 곳이 모래로 변해 있었다.
"왜 이래요? 사막이 더 커진 것 같은데."
"사막화야." 늙은 먼지 입자가 말했다. "과도한 방목, 기후변화, 지하수 고갈... 여러 이유가 있지. 근데 결과는 하나야. 사막이 넓어지면 우리 같은 먼지가 더 많이 생겨. 그럼 인간들은 더 화내고, 더 서로 욕하고, 더 국경을 탓하지."
"해결은 안 되나요?"
"해결? 중국은 '녹색 만리장성' 프로젝트라고 나무 심기를 하고 있어. 수십억 그루를 심었대. 근데 많은 나무가 물 부족으로 죽어. 몽골은 돈이 없어서 대규모 사업을 못 해. 한국은 중국에 돈 대줘서 나무 심기를 지원하기도 했는데,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어. 아무튼 느려. 너무 느려."
"왜 이렇게 느릴까요?"
"국경 때문이지, 뭐. 사막화는 한 나라 문제가 아니야.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러시아... 여러 나라에 걸쳐 있어. 근데 다 같이 협력해야 하는데, 각자 자기 이익만 생각해. 몽골은 광산 개발로 돈 벌고 싶고, 중국은 영토 문제 때문에 민감하고. 결국 제대로 된 협력은 안 돼."
젊은 먼지들의 탄생
그날 오후, 강한 바람이 불었다. 새로운 먼지 입자들이 태어났다. 수백만, 수천만 개의 작은 입자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선배! 저 첫 여행이에요!" 한 어린 먼지가 신나서 소리쳤다.
"그래? 축하해. 어디로 갈 것 같은데?"
"서울이요! 서울 가면 한강도 보고, 남산타워도 보고 싶어요!"
나는 그 어린 먼지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저 녀석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인간들이 우리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우리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틀고, 서로를 비난하는지.
"저 녀석한테 미리 말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는 선배에게 물었다.
"뭘?"
"진실을요. 인간들이 우리를 싫어한다는 것. 우리 때문에 국가 간 갈등이 생긴다는 것."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어차피 경험하면 알게 돼. 그리고 사실, 인간들이 우리를 싫어하는 건 당연해. 우리가 실제로 피해를 주니까.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제예요?"
"해결 방법을 모른다는 게 아니라, 하기 싫어한다는 거지. 화석연료를 줄이면 돼. 공장 배출 기준을 강화하면 돼. 차량을 줄이면 돼. 사막화를 막기 위해 협력하면 돼. 다 방법은 있어. 근데 안 해. 왜? 불편하고, 돈 들고, 다른 나라 눈치 보기 싫으니까."
끝나지 않는 여행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이번엔 남동풍이었다.
"가야겠다." 나는 선배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이번엔 어디로 갈까요?"
"바람이 가라는 대로. 우리는 선택권이 없잖아."
나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 몸에는 이제 수십 개국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고비사막의 모래, 베이징의 석탄재, 서울의 자동차 매연, 도쿄의 공장 먼지, 북극의 얼음 파편까지.
나는 그 무엇도 아니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이었다. 국경은 나를 정의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바람을 따라 떠도는 입자일 뿐이었다.
"다음 세대도 똑같은 여행을 하겠지?" 옆에서 함께 날아가던 동료가 물었다.
"아마도. 인간들이 바뀌지 않는 한."
"그럼 영원히?"
"영원히."
우리는 침묵 속에서 날아갔다. 발밑으로 보이지 않는 국경선들을 수없이 넘으면서.
에필로그: 먼지의 철학 - 선 없는 세계를 꿈꾸며
나는 여전히 떠돈다.
고비사막에서 베이징으로, 베이징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도쿄로, 도쿄에서 태평양으로, 그리고 다시 아시아 대륙으로. 끝없는 순환. 나는 이 여행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했다. 그리고 매번 똑같은 풍경을 목격한다.
인간들은 여전히 선을 긋는다. 여전히 '우리'와 '그들'을 나눈다. 여전히 '피해자'와 '가해자'로 세상을 이분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공기는 하나라는 것을. 바람은 여권이 필요 없다는 것을. 오염은 국적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선택적 무지의 시대
인간들은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들도 안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경고했다. "대기오염은 초국경적 문제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협력이 필요하다", "누구도 홀로 안전할 수 없다".
그런데도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진짜 해결책은 불편하다. 차를 덜 타야 한다. 에너지를 덜 써야 한다. 소비를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내 탓'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국경을 이용하면 이 불편함을 회피할 수 있다. "우리는 피해자다, 문제는 저쪽 나라에 있다." 이렇게 말하면 내 삶은 바꾸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국경의 진짜 기능이다. 영토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모두
내가 여행하며 배운 가장 중요한 진실은 이것이다.
모두가 피해자이고, 동시에 모두가 가해자다.
중국은 한국에게 가해자지만,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공장을 떠맡은 피해자이기도 하다. 한국은 중국 먼지의 피해자지만, 일본에게는 가해자이고, 동시에 자국 국민에게도 가해자다. 일본은 대륙 오염의 피해자를 자처하지만, 과거 공해 수출국이었고, 현재도 화석연료를 사용한다.
미국은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역사적으로 배출했지만 '중국이 더 많이 배출한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유럽은 친환경을 자랑하지만 생산은 아시아에서 한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먼저 오염시켰으니 우리도 개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선진국들은 "지금 당장 줄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렇게 서로를 가리키며 비난하는 동안, 북극 빙하는 녹고, 해수면은 올라가고, 사막은 확장되고, 나 같은 먼지는 증가한다.
보이지 않는 선의 폭력
인간들이 그어놓은 국경선. 지도 위의 그 가느다란 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 선이, 가장 강력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 선은 연대를 막는다. "저기는 다른 나라야, 우리 문제가 아니야."
그 선은 책임을 회피하게 한다. "그건 저 나라 탓이야, 우리 잘못이 아니야."
그 선은 미래를 저당 잡는다. "우리 세대에 해결 못 해도 돼, 다음 세대가 어떻게든 하겠지."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그 선을 가장 쉽게 넘나드는 것이 바로 환경 문제라는 사실이다. 먼지, 온실가스, 플라스틱, 방사능, 바이러스... 인간이 만든 모든 위험은 국경을 비웃으며 지나간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그 선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굵게, 더 높게 만든다. 장벽을 쌓고, 규제를 만들고, 사증을 요구한다.
사람의 이동은 막으면서, 먼지의 이동은 막지 못한다는 모순.
먼지가 꿈꾸는 세계
가끔 나는 상상해본다.
만약 인간들이 정말로 하나의 종족으로 행동한다면 어떨까?
"중국발 먼지"가 아니라 "인류가 배출한 먼지"라고 말한다면? "우리나라 공기"가 아니라 "우리 행성의 공기"라고 생각한다면?
상상해보라. 베이징의 공장이 멈춰도 서울 시민들이 기뻐하는 세상을. "이제 우리 공기가 깨끗해진다"가 아니라 "베이징 사람들이 희생하고 있구나, 우리도 동참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세상을.
서울의 자동차가 줄어들면 도쿄 사람들이 감사해하는 세상을. 도쿄의 발전소가 줄어들면 베이징 사람들이 박수치는 세상을.
북극 빙하를 모두의 자산으로 여기고, 사막화를 모두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미세먼지를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는 세상.
불가능한 꿈일까? 아마도.
하지만 그 꿈을 꾸지 않으면, 인류는 각자도생의 늪에서 함께 침몰할 것이다.
마지막 질문
나는 지금 어느 나라 상공에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그리고 중요하지도 않다.
나는 지구 상공에 있다. 단 하나뿐인 행성, 70억 인간이 공유하는 대기권 안에.
인간들이여, 묻고 싶다.
당신들이 그어놓은 선이, 정말 당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가? 중국 먼지를 막는 장벽을 만들 수 있는가? 기후변화를 국경에서 저지할 수 있는가? 해수면 상승을 비자로 통제할 수 있는가?
당신들은 하나의 별에 산다. 하나의 대기를 공유한다. 하나의 미래를 나눈다.
언제쯤 깨달을 것인가?
국경은 당신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진짜 방어벽은 협력이라는 것을.
진짜 안보는 상생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떠돈다. 바람이 가라는 대로.
그리고 기다린다. 인간들이 선을 지우는 날을.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계속 국경을 넘을 것이다.
초대받지 않은 여행자로서. 인간들이 외면하는 진실의 메신저로서.
나의 생각!
이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그 안의 진실은 논픽션이다.
미세먼지는 정말로 국경을 넘는다. 기후변화는 정말로 전 지구적이다. 그리고 인류는 정말로 책임을 나누기보다 비난을 나누는 데 익숙하다.
'먼지 씨'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누구인가? 국경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떠도는 먼지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선에 갇혀 서로를 비난하는 인간인가?
답은 명백하다. 하지만 인정하기는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중국발 미세먼지'를 탓하며, 내일도 자동차를 몰고, 에어컨을 틀고, 배달 음식을 시킬 것이다.
먼지 씨는 그런 우리를 비웃으며, 오늘도 국경을 넘을 것이다.
"국경은 당신들이 그은 선. 하지만 공기는, 하늘은, 지구는 하나다."
이것이 먼지 씨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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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참여 질문:
- 당신은 오늘 얼마나 많은 먼지를 만들어냈나요?
- 미세먼지 심한 날, 누구를 탓하시나요?
- 국경 없는 환경 문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