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는 다리로 남는다
40년의 시간을 건너온 다리의 마지막 고백. 수억 개의 발걸음이 남긴 것, 그리고 다리가 인간에게 건네는 마지막 메시지.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위한 다리다.
40년이 흐르고
오늘도 새벽이 왔다. 40년 하고도 127일째 되는 새벽.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한강 위에. 움직이지 못한 채.
콘크리트는 낡았다. 균열이 생겼다. 철근은 녹슬었다. 도색은 벗겨졌다. 시에서 몇 번 보수공사를 했지만, 세월을 막을 순 없다. 나는 늙고 있다.
하지만 내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을 건너게 한다. 새벽 4시의 배달원, 7시 23분의 직장인, 오후 2시의 할머니, 밤 11시의 고백자들. 그들은 여전히 나를 건넌다.
어제 뉴스를 들었다. 들었다기보다는, 공사 인부들의 대화를 통해 알았다. 나를 철거한단다. 새 다리를 짓는단다. 더 넓고, 더 튼튼하고, 더 빠른 다리를.
나는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했다. 40년이면 충분했다. 나는 내 역할을 다했다.
수억 개의 발걸음
4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발걸음이 나를 밟았을까. 계산해본 적은 없지만, 수억 개는 될 것이다.
그 발걸음들은 모두 달랐다. 가벼운 것, 무거운 것, 빠른 것, 느린 것, 확신에 찬 것, 망설이는 것, 희망찬 것, 절망적인 것.
어떤 발걸음은 나를 시작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첫 출근, 첫 데이트, 새로운 집으로의 이사.
어떤 발걸음은 나를 끝으로 무언가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퇴근, 이별의 귀가, 그리고... 마지막 선택.
나는 그 모든 발걸음을 기억한다. 콘크리트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리인 나는 기억한다. 무게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어딘가에 축적되니까.
출근길 남자는 여전히 나를 건넌다. 10년이 지났다. 그는 이제 과장이 됐다.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노란 우산 여자와 결혼했다. 가끔 함께 걷는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그 아이의 작은 바퀴도 나를 굴러간다. 새로운 생명의 무게.
500일 커플의 남자도 가끔 본다. 새로운 연인과.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 맞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건널 수 있는 거리의 사람을.
새벽 4시 배달원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안 보인다. 은퇴했을까? 다쳤을까? 아니면... 나는 모른다. 다만 그의 오토바이가 남긴 브레이크 자국은 아직도 내 몸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오후 2시 할머니는 작년에 오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번도. 나는 안다. 그녀가 마침내 건넜다는 것을. 마지막 다리를. 삶과 죽음 사이의.
나는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가장 느렸지만, 가장 제대로 건넌 사람으로.
나는 건너지 못하는 자
아이러니하다. 나는 평생 사람들을 건네주었지만, 나 자신은 단 한 번도 건너본 적이 없다. 나는 여기 박혀 있다. 강 한가운데. 강남도 아니고 강북도 아닌 곳. 경계. 중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곳.
사람들은 나를 이용해서 건넌다. 그리고 간다. 돌아보지 않는다. 당연하다. 다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니까. 도구니까.
하지만 나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게 내 역할이니까. 나는 다리로 태어났다. 건네주는 자로. 나 자신은 건너지 못하지만, 타인을 건네주는 자로.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위한 다리다. 자식을 위한 부모, 학생을 위한 선생님, 환자를 위한 의사, 독자를 위한 작가. 우리는 타인을 건네주기 위해 자신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건네주는 것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이 건너갈 수 있도록 바닥이 되어주는 것.
사이먼&가펑클이 노래했던 그 다리
40년 전, 나를 건설할 때 공사 인부들이 라디오를 틀어놓았었다. 그때 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영어라서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느낌은 알았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그 노래였다.
가사의 의미를 나중에 알게 됐다. 누군가 힘들 때, 내가 다리가 되어주겠다는. 당신이 건널 수 있도록 내 몸을 내어주겠다는.
나는 그 노래의 제목이 되었다. 말 그대로. 험한 세상 위에 놓인 다리. 40년 동안 험한 시간들을 건너는 사람들의 바닥이 되어주었다.
어떤 이는 울며 건넜다. 어떤 이는 웃으며 건넜다. 어떤 이는 절뚝이며 건넜다. 어떤 이는 달리며 건넜다.
하지만 모두 건넜다. 내가 있었으니까.
만약 내가 없었다면? 그들은 물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멈춰 섰을 것이다. 포기했을 것이다.
다리는 가능성이다. "건널 수 있다"는 가능성. "갈 수 있다"는 희망.
마지막 새벽
철거 작업은 다음 주에 시작된다고 한다. 나는 부서질 것이다. 콘크리트 덩어리로. 재활용되거나 폐기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물질은 사라지지만, 역할은 남는다. 새 다리가 세워질 것이다. 그 다리가 내 역할을 이어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리 위로 또 수억 개의 발걸음이 지나갈 것이다. 새로운 배달원, 새로운 직장인, 새로운 연인, 새로운 할머니, 새로운 고백자들.
삶은 계속된다. 건넘도 계속된다.
마지막 새벽이 왔다. 하늘이 붉게 물든다. 아름답다. 40년을 여기 있었지만, 오늘 새벽이 가장 아름답다. 마지막이라서.
한 사람이 걷고 있다. 젊은 남자. 운동화를 신고. 이어폰을 끼고. 아침 조깅이다.
그는 내가 곧 철거될 거라는 것을 모른다. 그냥 평소처럼 달린다. 가볍게.
나는 그의 발걸음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가볍다. 생명력이 느껴진다. 희망이 느껴진다.
"고마워."
나는 그에게 말한다. 그는 듣지 못한다. 하지만 괜찮다.
"나를 밟아줘서. 나를 이용해줘서. 나를 건너줘서."
그가 멀어진다. 건너편으로.
나는 웃는다. 다리인 내가 웃는다. 만족스럽다. 나는 잘했다. 내 역할을.
해가 떠오른다. 새로운 하루. 나에게는 마지막 하루.
나는 다리로 남는다. 물질이 사라져도, 기억 속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속에서.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깨닫기를. 당신도 다리라는 것을. 누군가를 건네주는 자라는 것을.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그것이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다.
나의 생각!
우리는 모두 다리다. 스스로는 건너지 못하지만, 타인을 건네준다. 자식을 위해 몸을 내어주는 부모, 학생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선생, 환자를 위해 밤을 새우는 의사.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험한 세상 다리'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이 그 위를 건너게 하는 것. 오늘 당신은 누구를 위한 다리가 되어주었는가? 그리고 누구의 다리를 건넜는가? 기억하라. 당신이 건너온 모든 다리에는 누군가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감사하라. 당신도 누군가의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