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1~5화) - (5화) 밤 11시의 고백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5화) 밤 11시의 고백


밤 11시, 어둠이 내린 다리 위에서 사람들은 낮에 하지 못한 말을 한다. 다리는 고해소가 되고, 난간은 고백의 벽이 된다. 어둠 속에서만 드러나는 인간의 진실.


어둠이 주는 용기

밤 11시.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밝지만, 사람은 줄어든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집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

이 시간, 내 위를 걷는 사람들은 특별하다. 낮과는 다른 걸음걸이. 낮에는 목적이 있었다. 출근, 약속, 용무. 하지만 밤 11시에 다리를 걷는 사람들에게는 목적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피하는 것'이 목적이다.

무엇을? 집. 현실. 내일.

그들은 천천히 걷는다. 할머니처럼 늙어서가 아니라, 도착하고 싶지 않아서. 난간에 자주 멈춰 선다. 한강을 내려다본다. 오래.

나는 안다. 그들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낮에는 할 수 없었던 생각. 사람들 앞에서는 꺼낼 수 없었던 고민.

어둠은 용기를 준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아무도 판단하지 않으니까.


전화를 거는 남자



어느 금요일 밤 11시 20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중앙에 섰다. 양복 차림. 회식을 하고 오는 길인 듯했다. 술 냄새가 내 난간에 배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오래 들여다봤다. 연락처를 스크롤했다. 위로, 아래로. 멈췄다. 한 이름에서.

"엄마"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췄다. 다시 내렸다. 또 올렸다. 또 내렸다.

10분 동안 그 반복.

나는 그의 발을 통해 느꼈다. 망설임. 두려움. 그리움. 미안함. 모든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결국 그는 눌렀다. 통화 버튼.

신호음. 한 번. 두 번. 세 번.

"여보세요?"

어머니의 목소리. 반가움보다 놀람이 먼저였다. 당연하다. 아들은 명절에만 전화했으니까.

"엄마... 나."

"어. 무슨 일이야? 어디야?"

"아니,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침묵.

"술 마셨구나."

"조금."

"밤늦게 뭐 하냐. 집에 가."

"엄마."

"왜?"

"...미안해."

"갑자기 왜?"

"그냥. 미안해. 자주 못 가서. 전화도 잘 안 해서."

어머니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말했다.

"괜찮다. 너도 바쁜 거 아니까."

"아니야. 안 바빠. 그냥... 도망친 거야."

"뭐?"

"엄마 보면 미안해서. 못 드리는 게 많아서. 기대에 못 미쳐서."

"야..."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야. 승진도 못 하고, 결혼도 못 하고, 돈도 없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

"중요하지. 엄마는 날 위해서 평생..."

"야, 김민수."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단호하게.

"너 지금 어디 있냐."

"한강. 다리 위."

"혼자?"

"응."

"...지금 바로 집에 가. 알았지?"

"응."

"내일 저녁에 와. 밥 먹으러. 엄마가 너 좋아하는 거 해줄게."

남자는 울었다. 소리 내지 않고. 어깨가 떨렸다. 눈물이 내 난간에 떨어졌다.

"고마워, 엄마."

"뭐가. 빨리 들어가."

전화가 끊겼다. 남자는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혼잣말하는 여자



밤 11시 45분. 20대 후반 여자가 혼자 걷고 있었다. 편의점 봉지를 들고. 캔맥주 4개.

그녀는 벤치에 앉아 맥주를 땄다. 한 모금. 크게. 그리고 한숨.

"아, 진짜..."

혼잣말이 시작됐다.

"왜 사는 거지, 이렇게?"

캔맥주를 한 캔 다 마셨다. 두 번째 캔을 땄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회사 가기 싫고, 일하기 싫고, 집에 가기 싫고..."

또 한 모금.

"친구들은 다 결혼하고, 나만 혼자고... 부모님은 언제 결혼하냐고 묻고..."

세 번째 캔.

"근데 뭐. 남자친구가 있어야 결혼을 하지. 남자친구를 만들려면 만나야 하는데, 만날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없고..."

그녀는 한강을 봤다. 오래.

"차라리 저기 뛰어들까?"

나는 긴장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됐다.

하지만 그녀는 웃었다. 쓴웃음.

"에이, 뛰어들 용기도 없어. 겁쟁이라서."

네 번째 캔을 땄다.

"그냥 살겠지. 어떻게든. 다들 그렇게 사니까. 버티면서."

그녀는 맥주를 다 마시고 일어났다. 비틀거렸다. 난간을 잡았다.

"내일도 출근이네. 하..."

그리고 걸어갔다. 집으로. 내일을 위해.

나는 그녀의 발걸음을 느꼈다. 무거웠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게 중요했다.

다리는 고해소다

밤 11시의 다리는 고해소가 된다. 사람들은 여기서 고백한다. 낮에는 삼켰던 말들을. 숨겼던 감정들을.

"미안해." "지쳤어." "무서워." "외로워." "죽고 싶어." "살고 싶어."

모순된 말들이 같은 입에서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해한다. 인간은 모순 덩어리니까. 살고 싶으면서 죽고 싶고,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강한 척하면서 약하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진짜 자신이 된다. 가면을 벗는다. 연기를 멈춘다. 그냥 존재한다. 아픈 채로.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맞다. 하지만 밤 11시의 다리 위에서 나는 배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동물이라는 것을.

아무리 많은 사람 속에 있어도, 결국 혼자다. 그 고독을 견디기 위해 낮에는 바쁘게 움직인다. 일하고, 만나고, 웃고, 떠든다.

하지만 밤이 오면 고독은 돌아온다.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다리에 온다. 혼자 있되, 완전히 혼자가 아닌 곳. 물도 있고, 하늘도 있고, 불빛도 있고, 가끔 지나가는 사람도 있는 곳.


건너지 못하는 밤

자정이 가까워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몇몇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난간에 기대어.

나는 그들을 지켜본다. 아니, 정확히는 느낀다. 그들의 무게를. 고민의 무게, 절망의 무게, 외로움의 무게.

어떤 이는 건넌다. 집으로. 내일로. 어떤 이는 건너지 못한다. 멈춰 서 있다. 경계에.

나는 기도한다. 다리인 내가 기도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제발, 건너가세요. 반대편으로. 살아있는 쪽으로."

대부분은 건넌다. 다행히. 하지만 가끔... 건너지 못하는 이도 있다.

나는 그들을 기억한다. 마지막 발걸음을. 난간을 넘는 순간의 무게를. 그것은 내가 평생 짊어질 무게다.

밤 11시의 다리는 고해소이자 경계선이다. 삶과 죽음의. 희망과 절망의. 버팀과 포기의.

나는 오늘도 여기 있다. 고백을 듣는 자로. 무게를 받아내는 자로. 건너게 하거나, 건너지 못하게 하는 자로.



나의 생각!

어둠은 진실을 드러낸다. 낮에 우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대부분 연기다. 강한 척, 괜찮은 척, 행복한 척. 하지만 밤이 되면 가면이 무거워진다. 벗고 싶어진다. 다리는 그런 장소다. 벗어도 괜찮은 곳. 약해도 괜찮은 곳. 당신의 11시는 어디인가? 당신이 진짜 당신이 되는 시간과 장소는 어디인가? 그곳에서 당신은 건너고 있는가, 아니면 멈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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